남아공 “식민지화는 해학 아냐”…광고당국, ‘흑인의 유럽정복’ 패스트푸드 광고 금지

최민지 기자

“안녕 백인들. 난 여기가 마음에 들어. 앞으로 이곳을 ‘유럽’이라 부르겠어.”

17세기 아프리카의 왕자 ‘빅 존’은 1년의 항해 끝에 네덜란드의 한 항구에 도착한다. 네덜란드가 마음에 쏙 든 왕자는 그곳을 ‘유럽’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창을 부두에 내리찍어 그 땅을 정복했음을 알린다. 450여년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왕자의 이름을 딴 버거가 출시된다. 이름하여 ‘빅 존 버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패스트푸드 체인 ‘치킨리킨’이 만든 광고의 한 장면. 긴 항해 끝에 네덜란드에 도착한 아프리카 왕자가 “이곳이 마음에 든다. 이곳을 유럽이라 부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광고 영상 갈무리

남아프리카공화국 패스트푸드 체인 ‘치킨리킨’이 만든 광고의 한 장면. 긴 항해 끝에 네덜란드에 도착한 아프리카 왕자가 “이곳이 마음에 든다. 이곳을 유럽이라 부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광고 영상 갈무리

식민지배 역사는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흑인이 유럽을 발견 및 정복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남아공 패스트푸드 광고가 논란 끝에 송출 금지 명령을 받았다. 남아공 광고규제위원회는 18일(현지시간) 이 광고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했다고 현지 아이위트니스뉴스가 보도했다.

논란이 된 광고는 남아공 체인 ‘치킨리킨’의 TV광고다. 지난달 말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개척자 얀 반 리베크가 1652년 남아공 케이프해안에 도착하며 본격화한 남아공의 식민지화 역사를 뒤집은 것이다. 남아공은 1910년 독립 때까지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광고가 나오자 항의가 잇따랐다. 한 시민은 이 광고가 “식민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투쟁과 그들이 네덜란드인에게 받은 고통을 조롱한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위원회는 심사를 시작했다.

치킨리킨 측은 “이 광고의 근본 목적은 남아공인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높이는 것”이라며 “식민지 투쟁과 그것이 아프리카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광고의 의도가 “남아공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고 또 아프리카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위원회는 그러나 식민지배의 역사가 유머로 활용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는 이날 성명에서 “세계 정복의 가능성은 식민지배가 아닌 긍정적인 방식으로 묘사돼야 한다”며 “광고가 터무니없고 과장됐다는 사실이 잠재적 범죄를 무효화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당시 많은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팔려나간 사실을 언급하며 “아프리카인들이 식민시대에 겪은 악행은 잘 기록돼있고 그 유산은 지금도 존재한다. 이 경험은 결코 다르게 쓰여질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경시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결정에도 광고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BBC방송은 “트위터 사용자 상당수는 치킨리킨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영상] 남아공 패스트푸드 체인 치킨리킨의 광고‘레전드 오브 빅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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