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다음은 AR글래스라는데···한국, 하드웨어 경쟁력 떨어져

주영재 기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4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페이스북 개발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증강현실(AR) 카메라 플랫폼을 설명하고 있다./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4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페이스북 개발자회의 기조연설에서 증강현실(AR) 카메라 플랫폼을 설명하고 있다./페이스북

1월 23일 증강현실(AR) 렌즈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레티널’의 연구소를 찾았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 융합교육관 8층에 자리한 연구실 한쪽에는 이 회사가 만든 AR 글래스 시제품이 있었다.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전시회 ‘CES’에 출품한 작품이다.

렌즈 중심부에는 바늘 구멍처럼 보이는 작은 거울 50개가 4열 횡대로 들어 있다. 렌즈 위에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 나온 영상이 거울에 반사돼 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이 영상은 렌즈 정면에서 보이는 실제의 이미지와 합쳐져(증강) 보인다.

증강현실은 현실세계에 가상의 디지털 이미지를 입히는 방식이다. 눈으로 실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을 가린 채 그래픽 영상만 보여주는 가상현실(VR)과는 다르다. 실내에서만 쓸 수 있는 VR 기기와 달리 AR 글래스는 안경처럼 걸어다니면서 쓸 수 있어 쓰임새가 훨씬 다양하다.

“직접 보시죠”라는 김재혁 대표(29)의 말에 조심스럽게 렌즈에 눈을 대니 가상의 우주공간에 떠 있는 작은 바위가 나타났다.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같다. 손을 뻗으니 어디선가 동그란 드론이 날아와 손끝에 붙었고, 이리저리 손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녔다. 드론을 던져 물체를 맞히는 게임인가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이 회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월 25일(현지시간) 열리는 ‘세계이동통신박람회(MWC)’에서 공개한다는 AR 글래스는 무게나 형태가 기존 안경과 흡사했다. 개발단계에서는 가공하기 쉬운 유리로 렌즈를 만들지만 양산 단계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바꿔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이 회사의 최경온 이사는 자사 렌즈의 핵심 기술이 ‘핀홀 효과’를 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구멍으로 빛을 투과시키면 상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효과로, 레티널의 렌즈에서 구멍 역할을 하는 거울인 ‘핀미러’ 하나는 12~15도의 시야각을 제공한다. 시야각은 눈이 볼 수 있는 영역이다. 거울을 렌즈에 아래위로 여러 개 배열하면 더 큰 가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

가상의 이미지와 현실을 합쳐 보여줘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AR 글래스가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플랫폼 기기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지난해 4월 증강현실 시장이 2020년부터 가상현실 시장을 추월해 2022년에는 1000억 달러(약 113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 이사는 “VR 기기와 달리 AR 기기는 실외로 가지고 갈 수 있어 휴대폰과 같은 이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양손을 자유롭게 하는 장점이 있어 원격 항공정비 등 산업용으로도 활용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포화상태가 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애플과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은 AR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은 2016년 “가상현실보다 증강현실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증강현실은 인공지능과 더불어 애플의 미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애플은 2020년 말까지 AR 글래스를 내놓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내부적으로 전용 반도체, 디스플레이,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 7~8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2월 MWC에서 비공개 행사를 열고 AR 글래스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AR월드’를 상표 등록했는데 올해 MWC 행사에서는 더 진보된 형태의 AR 글래스를 선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행사에서 AR 글래스 ‘홀로렌즈2’를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AR 글래스를 상용화하기 위한 핵심 기술은 대략 6가지 정도다. 전용 칩셋, 배터리, 디스플레이 모듈, 센서, 광학계, 응용프로그램이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해상도를 높이고 머리를 돌렸을 때 20밀리초(1000분의 20초) 이내의 지연시간 안에 영상과 시선을 일치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센서와 통신기술, 인공지능 처리기술이 필요하다.

광학계는 가볍고 넓은 시야각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AR 글래스의 시야각은 최대 40도 정도다. 최초의 AR 글래스인 구글 글래스가 채택한 하프미러 방식으로 시야각 50도를 만들려면 렌즈의 두께가 2.5~3인치가 되기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AR 글래스 ‘홀로렌즈’는 빛의 빨강, 초록, 파랑의 파장에 따라 반사하는 필름을 각기 따로 두는 방식이라 렌즈 두께를 줄일 수는 있으나 필름을 픽셀 단위로 붙여야 해 양산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 하드웨어 경쟁력 떨어져

레티널이 만든 핀미러 방식 렌즈는 거울의 수에 따라 시야각을 조정할 수 있다. 복잡한 부품 없이 렌즈와 디스플레이 모듈만으로 광학계를 만들어 가볍고, 전력 소비를 줄인 것이 장점이다. 광학계의 난점을 크게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레티널의 기술만으로는 한국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AR에서 재현하기엔 충분치 않다.

레티널의 AR 글래스에는 가로세로 약 5㎜ 정도의 디스플레이 모듈이 들어간다. 소니 제품으로 반도체 위에 OLED를 심어 놓아 해상도와 화질을 월등히 높인 차세대 기술 ‘올레도스(OLEDoS)’가 적용됐다. 이전 세대 AR 디스플레이 기술인 엘코스(LCOS)의 경우, 한국의 라온텍이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지만 올레도스 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없다는 게 최 이사의 설명이다.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렌즈를 포함한 홀로그램 광학소자 기술은 우리가 세계와 맞먹지만 디스플레이 기술은 뒤진 편”이라면서 “국내 회사들이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나 대형 TV용 패널 개발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AR 글래스에 최적화된 디스플레이 개발에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11월 넓은 시야각을 제공하는 경량 AR 렌즈 기술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배터리 기술 개발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사용이 편하려면 배터리를 안경 안에 내장해야 하지만 지금의 충전식 배터리는 부피가 크고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기 어렵다. 대안으로 전고체 배터리가 거론된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고체화한 배터리로 집적도가 기존 배터리의 20배 정도다. 스마트폰에 적용하면 한 번 충전해 한 달을 쓸 수 있다. 부풀어 오르거나 액이 흐를 염려도 없어 안전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전기차 시대를 이끌 ‘게임체인저’ 기술로 부상했다.

한국의 2차전지 기술이 세계 정상급이라고 하지만 아직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한 곳은 없다. 오히려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중국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발표했다. 삼성SDI가 지난 1월 14일 개막한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전고체 배터리 기술 로드맵을 발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중국에 한 발 뒤진 상황이다. 최 이사는 “한국이 공간인지나 움직임을 인지하는 기술, AR 응용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기술에선 세계적인 수준에 있지만 관건은 하드웨어 기술”이라며 “하드웨어 기술개발과 산업 육성을 소홀히 하면 AR 글래스 시대가 될 때 한국이 스마트폰처럼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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