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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용실 대표는 왜 직원들을 학대했나

류인하 기자
A헤어 분점이 입점해 있는 주상복합건물 전경. / 네이버 지도 화면 캡쳐

A헤어 분점이 입점해 있는 주상복합건물 전경. / 네이버 지도 화면 캡쳐

A헤어 대표 김모씨(37)는 경기도 일대에 총 4개의 미용실을 소유하고 있다. A헤어는 현재 한 곳을 추가로 개점할 예정으로, 이 지역에서는 잘나가는 ‘지역 산업체’로 분류된다. 영업실적도 좋다. 김씨는 매매가 11억5000만원짜리(KB·2019년 4월 25일 기준) 261㎡(79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차량만 롤스로이스 레이스, 페라리, 아우디 등 3대에 달한다. 그는 이 정보를 자신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만큼 소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미용실 스태프들에 대한 착취가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스태프들은 월 120만~130만원에 불과한 임금에서 매달 20만~30만원을 교육비 및 식비 명목으로 대표에게 돌려줬다. 결국 스태프들이 한 달 꼬박 근무해 받은 월급은 100만원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고급 외제승용차 3대 SNS에 자랑
A헤어에 근무했던 스태프 및 디자이너 16명은 결국 지난해와 올해 초 세 차례에 걸쳐 대표 김씨를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을 지급하고,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돌려받았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주간·야간조로 나눠 오전 9시30분~오후 8시, 오전 11시50분~오후 10시까지 근무했다. 주말은 오전 9시20분부터 오후 9시30분(일요일은 오후 8시30분)까지 일했다. 2018년 최저임금 기준(주 5일 근무×하루 8시간)으로 최소 월 157만3770원이 지급됐어야 한다.

2017년 1월부터 근무한 ㄱ씨가 2017년 3월 받은 월급은 116만원이다. ㄱ씨는 월급을 받은 날 대표에게 20만원을 송금했다. 진정을 넣은 전 직원들의 통장 거래내역을 살펴보면 일정한 패턴이 확인된다. A헤어로부터 월급이 입금되면 당일 또는 그 다음날 20만원을 송금하는 방식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때 20만원의 돈을 돌려받는 계좌 주인이 매번 달라진다는 점이다. 거래내역을 살펴보면 ‘교육비·식비’ 20만원이 A헤어 대표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되는 것이 아니라 각 호점(1~4호점)의 원장 또는 부원장, 디자이너, 오래 근무한 스태프 등 계좌 주인이 매번 바뀌고 있었다.

같은 기간 입사한 전 직원 ㄴ씨의 거래내역을 보면 2017년 3월에는 1호점 원장 고모씨, 2017년 6월에는 2호점 부원장 이모씨, 2017년 9월에는 2호점 지배인 임모씨, 2018년 1월에는 2호점 디자이너 최모씨, 2018년 4월에는 2호점 점장 차모씨 등 계좌 주인이 계속 달라졌다. 김종보 변호사는 “직원들로부터 돌려받은 ‘교육비·식비’에 대한 비용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지만 사업주의 법인계좌가 아닌 현금으로 매달 직원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탈세를 목적으로 했을 가능성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가 정한 ‘교육비·식비’에 대한 명확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법적 근거도 없다.

A헤어는 매주 토요일 영업시간 이전에 A헤어 소속 디자이너가 사내교육을 실시했다. 외부교육은 ‘B재료회사’에서 금요일마다 비정기적으로 실시했다. B사는 A헤어에 염색약을 납품하는 업체다. B사 홈페이지에 명시된 외부교육 강사비는 교육받는 직원 1인당 5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이 경우 A헤어가 직원들의 교육비를 B사에 지급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B사는 A헤어 직원이 교육비 문의를 하자 “B사 약품을 쓰는 제휴 미용실의 경우에는 외부교육이 무료로 진행된다”고 답했다. B사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A헤어 직원에게 무료로 진행했다고 말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직원의 착오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사 관리는 본사에서 해도 교육료 부분은 각 납품 대리점과 미용실 간의 계약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A헤어 교육을 유료 또는 무료로 진행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용 가발비나 염색약 등을 제외한 기타 재료비는 스태프들이 자비로 부담했다.

결국 순수하게 교육비와 식비로 매달 20만원이 지출됐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식비와 교육비에 각각 책정된 금액이 얼마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전 직원 ㄱ씨는 “대표가 처음 20만원을 달라고 했을 때 식비 10만원, 교육비 1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스태프는 식비가 10만원이고, 디자이너는 5만원이라길래 ‘우리가 밥을 더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식비가 다르냐. 그냥 10만원을 우리에게 주면 우리가 나가서 사먹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표가 ‘그냥 식비는 명목상이었고, 교육비가 20만원이다’라며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근로계약서상에는 식비 또는 교육비 항목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근로계약서에는 임금란에 ‘월 120만원’이라 기재된 것 외에 상여금 없음·기타급여(제수당 등) 없음이라 기록된 것이 전부다.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근로계약서에는 없는 교육비·식비
그러자 대표 김씨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대학 취업설명회 당시 교육비 공제를 설명했다는 내용의 확인서였다. 해당 확인서는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C대학 교수가 작성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4월 23일 확인서를 작성해준 교수에게 관련사실을 문의했다. 교수의 얘기다. “취업설명회 당시 교육비가 있다는 설명을 했다는 정도의 짧은 확인일 뿐 교육비가 근로계약서상에 명시된 월급과 별도로 직원이 대표에게 돌려줘야 한다거나, 금액이 얼마라는 내용의 설명을 했다는 확인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A헤어가) 취업설명회에서 그런 구체적인 설명을 한 적도 없다.” 그는 이어 “A헤어가 졸업생들을 상대로 근로기준법 위반을 한 사실을 학교 차원에서도 확인했다. 대학이 A헤어와 함께 추진하려 했던 사업에서도 해당 업체를 제외시켰다”고 덧붙였다.

A헤어 대표 김씨가 직원들에게 거짓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는 내용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내용. 직원들은 대표의 강요에 못 이겨 확인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는 증명을 남겼다. / 전 A헤어 직원 제공

A헤어 대표 김씨가 직원들에게 거짓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는 내용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내용. 직원들은 대표의 강요에 못 이겨 확인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는 증명을 남겼다. / 전 A헤어 직원 제공

보장 못 받은 휴게시간, 식사는 20분 내로
A헤어 스태프들은 법으로 정한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4시간을 근무했을 경우 30분의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스태프들은 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했다. 이들에게 보장된 ‘휴게시간’은 하루 전체 통틀어 20분에 불과했다. 실제 각 미용실마다 부착돼 있었던 ‘STAFF 지켜야 할 사항’에는 ‘식사시간 20분 이내(설거지, 2번(화장실), 3번(흡연) 포함) 해결하기’라고 적혀 있다. 전 직원 ㄷ씨는 “점심 먹는 것부터 설거지, 화장실까지 모두 합쳐 20분 안에 해결하라고 했다. 점심을 오후 3~4시에 먹기 때문에 저녁 식사시간은 별도로 부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표 김씨는 진정 이후 현재 A헤어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을 상대로 ‘2시간씩 쉬고 있다’는 내용의 가짜 확인서를 받았다. 확인서에 서명한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확인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의 자필서류를 진정인들에게 제공한 상태다. 사건 담당 근로감독관은 “만약 합의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협박이 있었다면 이는 형사사건으로 처리해야 할 부분”이라며 “현재는 양 당사자 간 합의기간을 준 상태지만 이후 법 위반사항이 명백히 드러날 경우 검찰에 고발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진정을 낸 16명의 직원이 최저임금 기준에 따라 산정한 체불액은 3억3700여만원에 달한다.

<경향신문>은 김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4월 23~25일 10여차례에 걸쳐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김씨는 첫 통화에서 “아침부터 전화해서 나에게 따지느냐”며 일방적으로 끊은 뒤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사건을 맡은 남규승 노무사는 “이 사건은 도제식 교육이 실시되는 미용업계의 특수성을 악용해 사회에 갓 진출해 노동법을 잘 모르는 청년들의 임금과 노동력을 착취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고용노동부의 엄중한 조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학대에 가까운 미용실 대표의 갑질

대표의 갑질은 학대에 가까웠다. 직원들의 주량과 관계없이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는가 하면 미용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근무일 새벽에 강제 산행을 시키기도 했다.

A헤어를 퇴사한 ㄱ씨(24)는 “처음 스태프로 들어오고 난 후 술자리에서 강제로 ‘신입주’를 마시게 했다”며 “주는 양만큼 다 마시지 않으면 마실 때까지 강요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확인한 동영상에는 한 남성이 철제 냉면그릇에 담긴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남성이 그릇에 담긴 술을 다 마시지 못하고 버티자 대표가 식당 의자 위로 올라가 이 남성의 그릇에 소주 한 병을 쏟아붓는다. 영상을 제보한 전 직원은 “영상에 등장하는 분은 신입 디자이너”라며 “디자이너가 술을 못마시고 힘들어 하는 와중에 대표가 술을 더 부으려 하자 ‘까치발’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대표가 괘씸하다며 의자 위로 올라가 소주를 저렇게 부어 마시게 했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이 다수의 전직 직원들에게 문의한 결과 실제 A헤어 소속 직원들은 신입으로 입사했거나 승급했을 때 ‘신입주’, ‘승급주’ 명목으로 대표가 주는 술을 강제로 마셔온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는 “내가 신입주를 받았을 때는 대표가 소주 1병에 콩나물 등 테이블에 올라온 반찬을 넣어 강제로 먹게 했었다”면서 “나는 그 술을 다 마시고 곧바로 기절했다”고 말했다.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또 다른 전 직원 ㄴ씨는 “여자들도 똑같이 다량의 폭탄주를 강제로 먹였다”면서 “술을 끝까지 마신 직원들은 화장실 가서 토하거나 기절했다”고 말했다.

대표는 또 미용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자신이 모바일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말을 걸어 직원들이 즉각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강제 산행을 시키기도 했다. 전 직원 ㄷ씨는 “내가 근무할 당시 우리 호점에서 강제 산행은 한 번 있었다”면서 “대표가 단톡방에서 직원 2명에게 뭔가를 지시했는데 단톡방에 속한 직원 전원이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행을 했다”고 말했다. 대표는 또 미용실 내에 전선 코드가 전부 뽑혀 있지 않거나, 전자기기를 제대로 끄지 않았을 경우, 불을 켜놓고 퇴근했을 경우 다음날 해당 호점 전직원 등산을 지시했다. 산행은 통상 새벽 4시30분~5시30분에 이뤄졌다. ㄴ씨는 “반석산에 새벽 5시까지 모여 산꼭대기까지 갔다가 내려오게 했다”면서 “오전 출근반은 하산한 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출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행 대신 찜질방에 소집한 후 한증막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근무시간에 스태프를 백화점 명품관에 데려가 쇼핑 보조를 하게 하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명품 사용을 강제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대표를 따라 백화점 명품관을 갔던 전 직원은 “명품관에서 벨트와 신발을 구매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또 각종 행사시 직원들이 단체로 춤을 추도록 강요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다수의 직원들은 “한 달 전부터 춤 연습을 했고, 어설프게 춤을 추면 싫은 내색을 보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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