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계급의 격리구역에 환멸 느낀 욕망, 취향 만족을 위해 옮겨가는 통로

손아람 작가

영동대교

서울 광진구 자양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연결하는 영동대교. ‘영동’이란 단어에는 새로운 땅, 기회의 도시, 물질적 풍요의 의미가 은연중에 담겨 있다. 영동대교 남과 북은 강남 개발 이후 강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서울 광진구 자양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연결하는 영동대교. ‘영동’이란 단어에는 새로운 땅, 기회의 도시, 물질적 풍요의 의미가 은연중에 담겨 있다. 영동대교 남과 북은 강남 개발 이후 강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데뷔곡 ‘비 내리는 영동교’와 대표곡 ‘신사동 그사람’에서 주현미는 강남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노랫말 안에는 강남 어딘가에서 만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여성이 있지만, 남성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은 없다. 1980년대 후반 강남의 밤거리를 불러내는 것만으로 이 남성의 사회적 형상은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 내리는 영동교’의 여성 화자는 밤비 내리는 영동대교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걷는다. 애인과 헤어진 뒤 강남을 등지고 강 건너 북쪽으로 무력하게 되돌아가는 상황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영동대교는 강남구와 성동구를 지리적으로 잇는 다리지만 경제적으로는 장벽과 같은 상징을 가진 건축물이었다. 영동대교 착공 직전인 1969년에 쓴 글에서 법정 스님은 강남과 마주한 뚝섬나루 일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슨무슨 동임에는 틀림없는데, 거기는 전기도 전화도 수도시설도 없는 태고의 성역이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오로지 나룻배가 있을 뿐. … 같은 서울이면서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렇듯 문명의 혜택은 고르지 않다.”(<너무 일찍 나왔군>, 법정)

노랫말 속 비 내리던 그 다리
애인과 헤어져 눈물을 흘리며
강남서 강북으로 돌아오는 여인
애인은 아마 강남 남자였으리라

주현미가 가상의 여성 화자를 세워 겨눈 과녁은 강남의 남성, 아마도 그보다는 강남의 남성이 되길 간절하게 열망했던 남성들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주현미의 노래를 흥얼거렸던 직장 남성들은 노랫말 속 여성의 자리에 젊고 아름다운 주현미를 쉽게 대입해 넣을 수 있었다. 더불어 묘연한 ‘강남 남자’의 자리에 가까운 미래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으면서. 낙관적인 희망은 영동대교를 타고 경제적 신대륙인 강남으로 내려온 부가 가능태였던 1980년대까지는 그럭저럭 작동했다.

정작 강남의 전성기가 열린 1990년대부터 주현미의 지역 레퍼토리는 강남을 떠나 애수 어린 지방 대도시로 복귀했다. 트로트의 문화적 영향력이 젊은 세대에 미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부의 이동이 완성된 강남이 타깃 대중의 낭만 가득한 환상을 넘어서는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강남을 흠모하다 강남에 좌절했던 이들 모두가 주현미의 노래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의 처지가 된 셈이다. 2010년대에 이르면 대중문화 창작자는 농담이나 냉소를 거치지 않고는 강남을 그려낼 수가 없게 된다. 자기희화화를 무기로 사용하며 “오빤 강남 스타일!”을 외치던 싸이와, 누구나 강남 이야기라 여기지만 지명을 언급하지 않았던 드라마 <SKY 캐슬>을 떠올려보라.

영동대교를 남쪽으로 건너 내려가면, 명품 매장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청담동 거리가 나온다. 귀금속 브랜드 카르티에 매장은 건물 외벽까지 도금한 금속 구조물로 치장했고, 샤넬 매장의 쇼룸 안에는 마네킹마저 황금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있다. 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기아차 영업본부는 유별난 이웃들에게 기죽지 않으려는 듯 최근 수천개의 입체 블록을 붙여 건물을 화려하게 새 단장했다. 도산공원 쪽으로 더 나아가면 부의 흔적은 덜 노골적이지만 더 극단적인 형태로 바뀐다. 이곳의 작은 부티크 서점에서는 여행가방에 책을 담아 판매하고 있다. 질 좋은 가죽 가방은 100권의 책(짐)이 빽빽하게 수납된 순간 그 가치가 훌쩍 뛴다. 가격표에 적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긴 수열은 이 상품이 3580만원이라고 가까이 다가오는 방문객들에게 경고한다.

빅토르 위고나 오노레 드 발자크의 프랑스어 초판본을 기대하면서 가방 틈을 엿본 고서적 수집가라면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안을 채운 것은 ‘평범한’ 명품 패션 브랜드의 브로셔북들이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배치된 앤디 워홀의 도감은 변호인 자격으로 소환된 것만 같다. 워홀이 “산화 회화”라 명명한 ‘캔버스에 싼 오줌’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2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진지한 표정으로 상품을 응시하는 동안 조용히 다가온 직원이 격식을 갖춘 말투로 묻는다. “반갑습니다. 이곳을 어떻게 찾아오셨나요?” 보물지도에 표시된 전설의 동굴을 찾아낸 탐험가를 천오백년쯤 기다려온 문지기가 던질 법한 인사말이다.

서점을 나오니 출판의 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초현실적인 사치품을 목격한 뒤 그것을 소유하게 될 부유층의 이미지를 덧칠하는 과정을 거쳐 사람들은 청담동의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문짝을 독수리의 날개처럼 펼쳐올린 차에서 내리는 으스대는 표정의 운전자, 값비싼 토트백을 팔에 걸친 채 도도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여성 같은 것들. 물론 이런 인상은 적대적 상상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빈민가 주민에 대한 편견과 유사해지기 쉽다. 우리는 모든 개인을 익히 아는 범주에 우겨넣은 뒤 일말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곤 한다.

2010년대 강남은 냉소의 대상
다리 건너 청담동의 명품 매장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들에겐
문화적 경험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지역과 장소는 복잡한 의미망 안에서 한 사회의 특성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위압적인 것은 위압적인 대로, 경멸스러운 것은 경멸스러운 대로. 왕가의 부귀영화를 증거하는 베르사유 궁전, 테크 억만장자들이 스쳐지나가는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의 길거리, 대신들이 무한한 권력 앞에 고개를 조아렸던 경복궁 근정전을 관광객의 마음가짐으로 거닐 수 있다면, 청담동 역시 마찬가지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담동은 영 발길이 향하지 않는 곳이다. 이곳의 부는 역사적 맥락이 빠진 채로 급하게 조형되었기 때문이다. 자폐적인 쇼룸에 갇힌 황금 마네킹과 여행가방 안에 곱게 담겨 있을 때만 제 가격을 하는 책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관찰자에게 아무런 문화적 경험치를 남기지 않는다. 생명력이 없어서 경외감이나 질투심조차 느끼기 어렵다.

강북에서 바라본 영동대교. 강 건너 남쪽의 높은 건물들과 북쪽의 연립주택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영민 기자

강북에서 바라본 영동대교. 강 건너 남쪽의 높은 건물들과 북쪽의 연립주택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영민 기자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일대 상권은 소수자리 금리 인상과 주가지수에 따른 자산가치 변동에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는 손님들을 모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아는 한 부자들은 바로 그런 셈을 구구단처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지성 덕분에 부자가 될 수 있었기에 이런 문제에 매우 예민하다. 다양한 우대할인 혜택을 골고루 받기 위해 열 장 넘는 신용카드를 가방에 집어넣고 다니며 사용실적을 관리하는 괴팍하게 합리적인 기질이 내가 아는 그들의 모습이다(내 관찰이 자본주의의 자본적 본질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남겨둔다). 그래서인지 10여년 전부터 주민조차 기피한다는 이 일대 상권은 주말에도 한산해 보인다. 한때 동네를 호령했던 명성 높은 ‘오렌지족’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계급의 성을 쌓다 문화의 섬이 되어버린 격리구역에 환멸을 느끼고 비 내리는 영동교를 되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단엔 갤러리형 상업시설 형성
외제차 탄 젊은 부자들 몰린다
그 옆엔 공임 1000원 인상 위해
전쟁을 치르는 제화공들이 있다

영동대교 북쪽으로 이어진 성수동의 공장지대에는 갤러리형 상업시설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최근에는 청담동보다 훨씬 활기차다. 공장이나 창고로 쓰던 낡은 건물을 섬세하게 수리한 갤러리 공간은 대충 이런 모습이다. 층고 높은 천장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벽체에는 콘크리트, 벽돌, 무너진 회벽 등 빈티지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이 다양한 조합으로 동원된다. 그 위로 뱅크시의 도둑 같은 방문을 자극할 법한 현대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고목재로 짜맞춘 바닥 위에는 곤충이 긁어먹은 흠까지 그대로인 낡은 가구들이 놓여 있는데, 물론 원래보다 더 자연스럽게 낡아보이도록 목수의 사포질을 거친 뒤다. 전시된 오브제와 사용 중인 가구의 경계는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위험을 감수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물건 앞에는 수줍게 작은 글씨로 ‘눈으로만 보세요’라고 적혀 있다. 전력 효율이 10배 높은 LED 전구 대신 두 세기 전에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가 실내를 감미롭게 밝히고, 재즈나 클래식으로 분위기를 잡기보다는 듣기 편한 팝음악을 틀어두는 게 보통이다. 음식의 맛은 섬세하지만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이다. 지갑의 두께보다 취향과 안목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 부자들이 이런 공간에 더 끌린다는 사실은, 희귀한 유럽산 자동차들이 점령한 주차장에서만 드러난다. 어쩔 수 없이 비감한 풍경이다. 이런 갤러리 사이사이에는 망하자마자 새로운 갤러리로 탈바꿈할 운명인 허름한 제화공장들이 아직 남아 있고, 패션 브랜드에 납품하는 신발의 공임비 1000원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제화공들이 지금도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과거의 부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런 목소리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내적인 불안을 드러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세대는 때로는 이웃을 연민하고 때로는 주장에 수긍하면서, 혹은 내가 고용주라면 저렇게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조용히 고백하면서, 하지만 정체성을 역설에 빠뜨리는 도덕적 만용을 부리지 않고 현명한 침묵을 지킨다. 이들은 화려한 성 안에 틀어박히는 대신 생활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공간으로 거리낌 없이 섞여든다. 그렇게 문화를 공유하는 기분을 맛본 뜨내기들까지 매혹시킨다. 진흙탕을 벗어나 사다리를 오른 부모 세대는 타인과의 구분짓기에 매달렸지만, 현격하게 벌어진 차이를 어려서부터 경험한 자식 세대는 더 이상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 시대의 부자상은 증오하기에는 너무 관대하고, 경멸하기에는 꽤 품위 있다. 그래서 낡고 약한 것들은 더 이상 힘으로 정복되지 않는다. 흡수당한 뒤에 재활용된다.

하지만 이 공존은 소비자의 주제를 잊고 선을 넘으려는 시도까지 포용할 만큼 관대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 개봉을 자축하는 파티를 열기 위해 성수동의 창고형 갤러리를 통째로 빌리려 했던 영화배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우의 전화를 받은 갤러리 매니저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여기는 해외 명품 브랜드나 자동차 회사가 대관하는 곳이라서 영화인들이 빌려 쓰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자존심이 상한 배우는 자기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혹시 내가 누구인지 모르냐고 물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통화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누구신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렵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은 동영상으로도 선보입니다.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작가의 이야기와 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밀도 있게 영상 속에 그려집니다. 경향신문의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www.youtube.com/thekyunghyangtv)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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