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급 보상에 곳곳 구멍…‘산재 사각’ 라이더

김한솔 기자

49일 동안 단 하루만 쉬고 일하다 죽어도 책임은 라이더 몫

“특고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고 산재인정 기준 넓혀야” 목청

최하급 보상에 곳곳 구멍…‘산재 사각’ 라이더

“배차 그만해줘요ㅠㅠ 이것까지만 할게요ㅠㅠ ㅎ” “직권 한 개만 배(빼)주세요 급해서 사고날 것 같네요ㅜ”

지난달 24일 오후 7시50분쯤 경남 진주시 정촌면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음식 배달원 ㄱ씨(19)의 125㏄ 오토바이가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배달을 마치고 친구에게 늦은 저녁을 먹자고 연락한 직후였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동네 배달대행업체 소속 ‘라이더’였던 그는 배달 일을 시작한 후 지난 49일 동안 단 하루만 쉬었다. 사고가 날 것 같으니 배달을 하나만 줄여달라 했던 그는 결국 우려하던 사고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산업재해 보상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쉬는 날부터 식사시간까지 업체의 지휘를 받은 ‘노동자’였지만, 계약상으로는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 배차 빼달라고 부탁하고, 밥 먹을 때도 허락받고

라이더유니온이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한 ㄱ씨의 고용 형태는 복잡했다. ㄱ씨는 동네 배달대행업체 ㄴ사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계약을 맺었다. ㄴ사가 배달대행 플랫폼인 ㄷ사와 다시 위탁계약을 맺으면서, ㄱ씨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는 ㄷ사의 일을 해야 했다. 사고가 난 ㄱ씨의 오토바이는 무보험, 무등록인 상태였지만 ㄴ사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라이더유니온이 유족들과 함께 확인한 ㄱ씨의 업무 기록을 보면, ㄱ씨는 9월6일부터 사고 당일인 10월24일까지 단 하루만 쉬었다. ㄱ씨의 신분은 사업자였지만, 근무 시간 조정에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ㄴ사는 라이더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한 뒤, 배달을 마친 라이더에게 다음 업무를 자동 할당했다.

배달대행업체 관리자들과 소속 라이더 22명이 들어가 있는 단체 카카오톡(카톡) 방에서 ㄱ씨는 업체 측에 “배차 그만해줘요ㅠㅠ 이것까지만 할게요ㅠㅠㅎ” “직권(으로) 한 개만 배(빼)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배달을 할지 말지 결정할 권한은 ‘개인사업자’인 ㄱ씨가 아닌 업체에 있었다.

ㄱ씨는 식사시간과 화장실 이용까지 카톡으로 보고했다. ㄱ씨가 “ㅠㅠ 저 밥 좀 먹고 오면 안될까요”라고 하자, 업체 측은 “알겠다. 그거만 하고 밥 먹어”라고 식사를 ‘허락’한다. 다른 라이더가 “저 잡은 거 치고(배달 들어온 거 마치고) 빠르게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라고 업체에 양해를 구하고, ㄱ씨가 “(화)장실요, 배가 아프네영”이라며 자신이 화장실에 있음을 보고하는 대화도 나온다.

퇴근시간이나 쉬는 날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었다. 업체 측이 퇴근한 라이더들에게 “어플 끄지 마세요” “다들 돌아오세요”라고 지시한 대목도 있다. ㄱ씨가 “저 내일 쉽니당ㅎㅎ”라고 하자, “응. 내일은 푹 쉬고 웬만하면 일요일 말고 다른 날 정해서 쉬자”라는 답장이 왔다. ‘원하는 시간에만, 일하고 싶을 때만, 소풍 가듯’ 일을 하라며 배달원을 모집하는 대형 배달 플랫폼 업체들의 광고는 ㄱ씨의 현실과 너무도 달랐다.

<b>“열악한 노동현실…라이더들이 위험하다”</b> 26일 서울 마포구 이주노동자 합정쉼터에서 열린 ‘도로 위에 지는 삶 라이더가 위험하다’ 기자간담회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배달 독촉으로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산재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라이더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열악한 노동현실…라이더들이 위험하다” 26일 서울 마포구 이주노동자 합정쉼터에서 열린 ‘도로 위에 지는 삶 라이더가 위험하다’ 기자간담회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배달 독촉으로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산재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라이더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사고 나도 ‘가장 낮은 급’의 보상받는 라이더들

ㄱ씨는 여느 노동자들과 똑같이 업무 지시·감독을 받으며 일하다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ㄱ씨 유족에게 ‘(개인사업자인) ㄱ씨는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특고)에 해당하니, 그에 해당하는 산재 신청을 하라’고 안내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노동자로 산재 승인을 받으면 실제 월수입의 평균 70%가 보험료로 지급되지만, 특고일 경우 무조건 최저임금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특고의 산재 보험급여는 직종별 ‘평균임금’에 따라 산정되는데, 라이더에게 해당되는 ‘퀵서비스’ 평균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기 때문이다.

배민(배달의 민족) 같은 대형업체 라이더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은 지난 8월부터 부업으로 ‘배민 커넥트’ 라이더로 일하며 매주 3200~3500원의 산재 보험료를 납부했다. 당연히 사고 시 산재 보상이 될 줄 알았지만, 최근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 전속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산재 적용이 안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구 팀장은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월수입의 50% 이상을 배민 커넥트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그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산재 제도 곳곳에 난 구멍을 막으려면, “사업주와 플랫폼 기업이 연대해 산재보험료를 부담하고, ‘전속성’의 기준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장진희 한국노총 연구위원과 손정순 한국비정규직연구센터 연구위원이 음식배달 노동자 300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배달 노동자는 평일에는 일평균 39.2건, 주말에는 47.3건의 배달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건당 평균 수수료는 3005원이었으며, 배달대행업체는 이 중 약 10%(291원)를 중개수수료로 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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