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협조시 강제 구조조정” 현대중공업 ‘대규모 하도급 갑질’ 고발·과징금 208억···조직적 증거인멸까지

박광연 기자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지난해 8월 공정위 현장조사를 앞두고 컴퓨터 등을 조직적으로 은닉하는 모습을 담은 CCTV 화면.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지난해 8월 공정위 현장조사를 앞두고 컴퓨터 등을 조직적으로 은닉하는 모습을 담은 CCTV 화면.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하도급업체들에 “협조 안하면 강제 구조조정한다”며 대금 100억원 가까이를 후려치고 계약서를 공사시작 후 400일 뒤에 지급한 현대중공업이 검찰에 고발되고 수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선업계의 ‘갑질’ 하도급거래 관행에 강력한 제재를 내린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수백대의 컴퓨터와 저장장치를 교체·은닉하는 등 조직적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2014~2018년 수백여개 하도급업체들에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며 하도금 대금을 부당 감면하고 계약서를 지연 발급한 현대중공업에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한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6월 기업분할 과정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가 된 한국조선해양의 법인은 검찰에 고발된다. 공정위 현장조사를 방해한 한국조선해양 법인과 소속 임직원 2명은 각각 과태료 1억원과 2500만원을 부과 받는다.

공정위 조사 결과 현대중공업의 하도급업체 상대 갑질은 수년간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뤄졌다. 현대중공업은 2015~2018년 사외·사내 하도급업체들을 상대로 총 97억원의 하도급대금을 후려쳐 지급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12월 선박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 하도급업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이후 업체들과 계약을 갱신하며 단가를 일률적으로 10% 인하했다. 이로 인해 48개 하도급업체는 현대중공업에서 위탁받은 9만여건의 사업에서 총 51억원의 하도급대금을 받지 못했다.

공정위는 “48개 하도급업체는 밸브·파이프·엔진블록 등 납품 품목과 거래규모, 경영상황 등이 각각 달랐다”며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할만한 정당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심의 과정에서 “2015년 경영상황이 어려워 2016년 상반기에 한해 일률적으로 단가를 인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경영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단가인하 행위의 부당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은 2016~2018년 사내 하도급업체에 1785건의 추가공사 작업을 위탁하며 일방적으로 하도급대금을 제조원가보다 낮게 책정해 46억원 상당의 대금을 후려쳤다. 사내 하도급업체에 줘야할 대금은 작업물량을 노동시간으로 변환한 ‘공수’에 ‘계약단가’를 곱해 산정된다. 현대중공업 예산부서는 생산부서가 요청한 공수 규모(84만6655공수)의 75%(63만2223공수)를 부당하게 삭감하는 방식으로 하도급대금을 깎았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대금을 받을 사내 하도급업체와의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강윤중 기자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강윤중 기자

현대중공업은 2014~2018년 사내 하도급업체 207곳에 4만8529건의 선박·해양플랜트 제조 작업을 위탁하며 하도급 서면계약서를 공사 시작 이후에 발급한 혐의도 있다. 하도급법은 하도급업체가 위탁받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서면계약서를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길게는 416일 뒤에 하도급업체에 계약서를 지급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평균 지연발급일은 9.43일이었다. 공정위는 “이는 조선업계의 대표적인 ‘선시공 후계약’ 관행”이라며 “하도급업체는 대금을 알지 못한채 작업을 진행하고 한국조선해양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진행된 공정위 현장조사를 두달여 앞두고 하도급법 위반 혐의 관련 자료가 담긴 101개 컴퓨터를 교체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조사대상 부서의 저장장치(HDD) 273개도 교체하고 중요 자료를 사내 인터넷망의 공유 폴더와 외부 저장장치에 은닉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 사내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바탕으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의 해당 자료제출 요청을 거부했다. 공정위는 “조사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를 두고 “장기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조선업계의 관행적인 불공정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윤수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하도급대금을 제조원가보다 일방적으로 낮게 결정한 행위를 최초로 제재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하도급대금을 후려치는 등 유사한 혐의를 받는 대우조선해양 법인을 고발하고 과징금 108억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입장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조선업의 특수성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며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회사와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이른바 ‘갑질’ 행위로 하도급업체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현대중공업 사내 하도급업체 협의회 조선 부문 회장인 정모씨가 지난 10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2015년 12월 하도급업체 대표 ㄱ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한편 공정위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관련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사 갑질피해 하도급업체들은 “인수·합병시 하도급 관계에서 수요독점이 발생해 갑질이 더욱 횡행할 것”이라며 기업결합을 허가하지 말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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