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체육관

(8) 황보람 선수를 첫 ‘엄마 국대’로 만든 말은 “아기 낳고 다시 와서 축구해!”

김보미·배동미 기자
화천KSPO 19번 수비수 황보람 선수. 출산 후 한국 여자축구국가대표가 된 첫 ‘엄마 국대’다. 아이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1년이 넘게 운동을 쉬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그를 축구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은 “아기 낳고 다시 와!”라고 말해준 여자 선배의 응원이었다. 배동미 기자

화천KSPO 19번 수비수 황보람 선수. 출산 후 한국 여자축구국가대표가 된 첫 ‘엄마 국대’다. 아이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1년이 넘게 운동을 쉬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그를 축구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은 “아기 낳고 다시 와!”라고 말해준 여자 선배의 응원이었다. 배동미 기자

“‘아기 낳고 (다시) 들어와서 해.’ 그 말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저를 믿어주고 다시 받아줄 의사가 있다는 것이니까.”

황보람 선수(화천 KSPO·33)는 딸 봄이를 갖고 고민이 많았던 때, 코치가 해준 ‘다시 축구장으로 오라’는 한 마디가 가장 위로가 됐다고 했다. 당시 출산으로 운동을 쉬게 된 황 선수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여자축구국가대표팀 선배이자 아이를 낳은 후에도 지도자로서 축구를 놓지 않고 있는 송주희 한수원 감독(전 화천KSPO 코치)이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황보람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 육상을 했고, 중학교에 가서는 축구부 선생님의 제안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도 축구부가 있는 곳을 다녔고, 졸업 후에 실업팀에 들어가 지금까지 공을 찬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월드컵에 출전한 첫 ‘엄마 국가대표’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한국 여자축구국가대표팀에 출산을 경험하고 월드컵에 나갔던 사람은 황 선수 이전에는 한 명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기 낳기 전에도 그 후에도 여전히 운동은 그의 삶이다. 지난해 12월24일, 훈련 휴식기를 하루 앞둔 황보람 선수를 인천 국민체육진흥공단 경정훈련원에서 만났다.

-평생 운동을 했습니다. 황 선수에게 축구는 어떤 매력이 있는 운동인가요.

“이겼을 때 성취감이 너무 좋아요. 어렸을 때는 단순히 달리기만 했는데, 축구는 전신 운동이에요. 달리고, 볼도 차고, 몸싸움도 하는데 그 부분이 저에게 잘 맞아요. 몸싸움도 볼 차는 것도 재밌어요. 뛰는 것도 재밌어요. 힘들긴 하지만, 운동하고 나서 땀 흘리는 것까지 전부 좋아요.”

-운동 선수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운동을 하다 보면 자기 시간이 부족해요. 어릴 때는 놀고 싶기도 했죠. 대학에 가서도 못 하는 것이 많았으니까 (다른 학생들이) 부럽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도 운동하고 있는 지금은 부럽지 않아요.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축구를 하는 저에겐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출산 후 복귀한 뒤 프랑스 여자월드컵 국가대표에 선발이 됐습니다. 기분이 어땠나요.

“말로 못 할 만큼 너무 기뻤어요. 아기 낳고 온 지도 얼마 안 됐고, (팀에) 복귀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욕심을 냈던 것도 있었는데, 막상 진짜 (국가대표 선발이)됐다고 하니까 말로 못 할 감정이 밀려왔어요”

지난해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열린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 여자 A대표팀 출정식에서 황보람 선수가 딸 봄이를 안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난해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열린 ‘2019 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 여자 A대표팀 출정식에서 황보람 선수가 딸 봄이를 안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복귀 전에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운동하는 몸으로 다시 만드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고요.

“운동을 1년 반 넘게, 거의 2년을 쉬었어요. 출산 전에 몸 상태가 좋았거든요. ‘다시 운동하면 그때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고민도 됐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회복했어요.”

-출산 후 안 되는 동작이 있나요.

“많아요.(웃음) 예전에 비해 둔해진 것도 느끼고요. 동작들이 느려진 것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경기에 방해가 되는) 좋지 않은 동작이 나오지 않게 미리 생각해서 움직여요. 저는 수비수니까 돌아서 뛰거나 멘트를 잡는 부분에서 (안 좋은 동작이)많이 나타나요. 돌아 뛰는 동작이 나오지 않게 미리 커트를 하거나, 미리 몸싸움을 해서 파울을 하는 식으로 피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부상 후 복귀와 출산 후 복귀는 많이 달랐나요.

“운동을 하다 다치면 잠깐 쉬고 몸을 만들지만, 아이를 낳고서는 1년을 꼬박 쉬고 나서 몸을 만들잖아요. 특히 아기를 안고 있다 보니까 어깨랑 팔이 많이 아팠어요. 이 부분을 덜 쓰면서 상·하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다리는 괜찮았는데 상체는 팔굽혀 펴기나 웨이트 동작을 해야 만들 수 있으니 문제가 좀 있었죠.”

-출산하면서 앞서 은퇴했던 선배 선수들이 많이 생각났을 것 같아요.

“임신하면서 운동을 쉬었는데 그때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쉬게 될 줄은 생각 못 했으니까요. 아기 때문이었지만 많이 힘들어요. (다시 운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때문인가요.) 그렇죠. 길게 쉬는 것도 처음이었고요. ‘아이 낳고 다시 와’라고 해주신 코치팀과 트레이너 선생님들의 말이 위로가 됐죠. 복귀한 뒤 들어와서 독하게 운동했어요.

화천KSPO 19번 수비수 황보람 선수. 출산 후 한국 여자축구국가대표가 된 첫 ‘엄마 국대’다. 아이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1년이 넘게 운동을 쉬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그를 축구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은 “아기 낳고 다시 와!”라고 말해준 여자 선배의 응원이었다. 배동미 기자

화천KSPO 19번 수비수 황보람 선수. 출산 후 한국 여자축구국가대표가 된 첫 ‘엄마 국대’다. 아이를 가지면서 처음으로 1년이 넘게 운동을 쉬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그를 축구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은 “아기 낳고 다시 와!”라고 말해준 여자 선배의 응원이었다. 배동미 기자

-여자축구 선수에게 결혼과 출산은 큰 도전일 거 같아요. 축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욕심도 많지만 여기서 (축구를) 놓게 되면 주부로만 살아야 하잖아요. ‘엄마’나 ‘아내’로만 살아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저의 삶이 있잖아요. 일을 가지고 싶어서 선택했던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조건 놓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됩니다. 도전해봤으면 해요. 엄마와 아내로만 살기는 아까운 것 같아요.”

-출산 후 월드컵에 진출한 첫 여자 축구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 않은가요.

“아기를 낳고 대표팀 선수가 된 것이 제가 처음이잖아요.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도 영광스럽고 부담스러운데, (출산 후 선발)첫 케이스였고 제가 팀에서 맏언니여서 책임감이 크게도 했어요.”

-외국엔 출산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지소연 선수가 있는 첼시에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경기가 있는 날에도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 위해 빠지기도 한다고 해요. 듣고 많이 놀랐어요.” (우리도 경기 있는 날 그렇게 빠질 수 있을까요.) “여행 짐이 아니라 집에 갈 짐을 싸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요.

“지금 뛰고 있는 필드 선수 중에서 서른여섯인 언니가 있는데 예전엔 목표가 그 언니의 나이였어요. 딸이 엄마가 축구 선수인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까지 선수를 하고 싶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복귀하고 1년 뛰고 나니, 그렇게는 말을 못 할 것 같습니다.(웃음)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오래 하면 좋겠지만 후배들을 위해서 제가 물러나 주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2019년)동아시안 컵에 출전을 못 했어요. 앞으로 올림픽 예선과 올림픽이 있는데, 예선은 가고 싶어서 목표로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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