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반 붕괴 위기, 일자리가 방파제”

박은하 기자

코로나19 노동 충격 해법

이병희·정태인 대담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왼쪽)과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이 지난 3일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의 위기와 대응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왼쪽)과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이 지난 3일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의 위기와 대응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한국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일단 해고부터 하고 희생을 가장 낮은 곳으로 떠넘기며 위기를 극복해왔다. 코로나 국면에서 이를 반복해선 안된다” “정부가 아직 위기의식이 없다. 일자리 유지를 위해 좀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60)과 대표적인 국내 노동경제 연구자로 손꼽히는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54)이 지난 3일 경향신문에서 벌인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두 달가량 이어지면서 자영업자와 일용직 노동자, 문화예술인 등은 수입이 끊기며 생계난에 빠지는 등 전체 노동자 가운데 44%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위기의 규모에 비해 정부가 노동시장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고용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가장 빠르게 반등하며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지난 2월 물리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하면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소득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며 “일용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등의 실업은 지표로 포착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나아가 세계경제 위기로 제조업에도 고용위기가 번질 상황인데 정부가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에도 매우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정 전 소장은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며 “정부가 위기의식이 부족하고 비판받는 것을 두려워해 매우 소극적 대응만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소장은 “과거에는 위기가 발생하면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출에 유리해져 위기에서 탈출하는 방식이 가능했지만 코로나19로 선진국 주요 경제가 멈춘 국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며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경제위기가 오히려 사회위기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희생시키며 피해를 최소로 유지한 셈인데, 코로나19 국면이 길어지면서 사회는 가장 낮은 곳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경고다.

두 사람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사회 원리를 다시 설계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 본부장은 “고용안정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하고 비공식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우리가 그동안 보호하지 못했던 계층을 어떻게 책임질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소장은 “아직까지 한국은 방역과 경제 양 측면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고 통제 가능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아무리 많은 돈을 부어도 패닉이 발생한 상황 이후에 붓는 것보다는 경제적이다. 지금은 고용유지와 방역, 사회안전망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일자리 잃고 대책선 소외…고용안정 사회적 대타협, 지금이 기회”

[‘코로나19’ 노동 충격,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대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가 가장 큰 곳이 노동시장이다. 일거리 부족이나 매출 감소를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무급’으로 일을 쉬고 있다. 정부는 각종 안정대책을 내놨으나 특수고용노동자나 재하청 노동자 등은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는 등 한계가 적지 않다.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적경제연구소장과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지난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대담에서 “지금이야말로 고용 안정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기회”라고 밝혔다.

사회 = 코로나19 이후 두 달, 사회와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정태인(이하 정) =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바이러스로 인한 보건위기와 경제위기가 상호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가 적나라하다. 확진자가 늘면서 실업이 늘고, 구직을 위해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다시 감염도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위기가 위기를 서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병희(이하 이) = 국내에서는 2월 하순부터 ‘물리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면서 노동시장에도 영향이 나타났다. 아예 이동을 금지시키는 강력한 봉쇄정책은 아니라서 실업급여 신청이 미국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소득 감소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 수수료로 생활하는 특수 형태 근로자, 하청업체 등에 간접고용된 노동자나 파견용역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는 실업으로 포착되기 쉽지 않다. 특고와 일용직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매일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상태라 실업지표에 포함되기 쉽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향후 6개월의 고용대책이 필요하다.

정 = 한국은 감염병과 경제 상황 모두 불안하지만 ‘패닉’으로는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잡혀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의 상황을 보면 세계경제의 빠른 회복은 쉽지 않다. 향후 경제회복에 기댈 것은 내수밖에 없다. 여기서 실업이 더 발생하면 내수가 흔들린다.

이 =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국내 실업자 수는 100만명을 넘지 않았다. 96만명에서 정점을 찍고 감소했다. 실업지표에 안 잡히는 숨겨진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고용형태가 더 다양해졌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숨겨진 노동자들이 2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정부가 2조5000억원을 들여서 희망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감염 위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다. 지금 다른 나라들도 유별나게 재정을 확대하며 실업대책을 쏟아내는 이유는 단기적 고용쇼크를 줄여야만 하고, 실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 = 공연 등이 취소되면서 문화예술인도 소득 ‘0원’이 된 경우가 많다. 공공근로 방식으로 지원하지 못하더라도 당장의 소득과 고용 감소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 = 지금은 숨겨진 노동자와 무급휴직자 등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소득 지원을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다. 나아가서는 코로나19 장기화와 세계경제 침체로 수출이 줄어들면서 고용위기가 제조업으로 번졌을 때를 염두에 둔 포괄적 후속대책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정책적 준비를 하고 기업이 해고와 무급휴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행법으로도 당사자 동의 없는 무급휴직은 위법이다.

■ 정부, 위기의식 없다

바이러스·경제위기 증폭
새로운 위기 펼쳐지고 있어
정책목표는 ‘지금, 생존’인데
재난지원금은 세세하고 복잡
정부, ‘위기의식’ 없이 내놔
시기 놓치고 비판 받을 수도
해고 않는 기업 생존 돕는 등
지원 원칙을 세워야 할 시기

사회 = 정부가 100조원 규모의 금융지원과 업종별 대책, 긴급재난지원금 등을 포함한 다양한 대책을 내놨는데.

정 = 바이러스 대책이든 경제정책이든 지금의 목표는 생존이다. 생존에 필요한 조치를 아주 쉽게 간단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들은 아주 세세하고 정교해서 위기상황과 맞지 않다. 정부가 위기의식이 없다. 동시에 비판받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재난지원금만 하더라도 정부는 처음에는 주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다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니 소득하위 70%선에서 끊고, 재산도 고려해서 5월에 준다고 한다. 당장의 소득 감소를 보전하기에 너무 늦다. 먼저 지급하고 정부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상위계층에게는 추후 정산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 정부의 방안대로라면 어떤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비판만 받고 시기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이 =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6월에 회복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경제위기는 아무리 빨리 회복되더라도 올해 4분기까지 진행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실업과 소득 감소를 보전하기 매우 부족하다. 일자리 유지에 대한 보다 강력한 원칙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31일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입구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31일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입구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동자 44% 고용보험 ‘사각’

취약계층 중심 소득 감소
거리 두기 본격화로 광범위
일용직·간접·파견 노동자
정부 각종 안정대책에도
지원 못 받고 통계 포착 안돼
향후 6개월 고용대책 필요
실업급여보다 일자리 유지가
코로나 후 빠른 회복에 필수

사회 = 정부의 고용유지대책, 어떻게 보나.

이 =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늘리고, 무급휴직자나 프리랜서 등 고용안전망이 없는 계층에 대해 100만원씩 지원하는 조치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용지원금은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의 정규직 중심으로 지급되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처럼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은 무급휴직뿐 아니라 계약 해지 형식으로 회사 바깥으로 몰려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실업급여를 주는 것보다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코로나19 감염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빠른 회복이 가능하려면 노동자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다.

정 = 정부가 기업의 생존을 지원하되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기업에 지원해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를 비롯해 그간 위기를 맞으면 일단 노동자부터 해고하는 게 한국 사회의 대처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량해고가 벌어진다면 한국 사회 전반에 너무나 위험하다. 그동안은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원화가치가 떨어져서 수출에 이득을 보는 방식으로 위기 극복이 가능했다. 지금은 원화가치가 떨어져도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 글로벌 공급망이 파괴되고 감염 우려로 우리 수출시장의 경제활동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회복을 염두에 두더라도 내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고용유지가 첫번째 정책이 돼야 한다.

이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보더라도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빠른 경제회복의 지름길이었다. 당시 독일은 일자리 나누기로 빠르게 위기를 빠져나온 반면, 프랑스나 영국 등 실업률 10% 이상을 기록하는 등 대량실업을 겪었던 나라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 번 고용안전망 바깥으로 밀려나면 재취업도 어렵고 전반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 나라들이 고용유지를 지원하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금융위기 때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의 고용유지정책을 세세하게 보면 ‘파견노동자 등에게 확대 적용하라’는 내용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캐나다는 자영업자도 포함한 실업부조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인천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도록 고용유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두번째로 실업지원을 하더라도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 고용보험의 포괄 범위가 공무원과 교원을 포함해도 56%이고 전체 노동자의 44%가 사각지대에 있다. 재난이 왔을 때 대응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지방자치단체들이 재난지원금 마련을 비롯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실업자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처럼 긴급 실업수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장 재정 투입해 위기 막아야 경제회복 때 사회적 비용 줄여”

미국, 2조달러 경기부양책
실업급여 신청 급증에 ‘무색’
금융위기 실업 못 막은 유럽
위기 벗어나는 데 걸림돌

정 =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해고하면 안된다. 지금 돈을 아끼면 대규모 고용위기나 집에서 쫓겨나는 등의 위기로 경제위기가 사회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이미 대처가 늦어서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다. 정책을 과감하게 쓰는 것이 미래의 사회위기를 막는 방법이다.

이 =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에 하는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유일한데, 1일 인건비 지원 한도조차 6만6000원(대기업 기준)에 불과하다. 유동성 제약이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 노동비용은 인건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보험료, 임대료, 대출이자 등 모든 고정비용의 압력을 고려해 해고를 택한다. 인건비뿐만 아니라 부수적 비용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번 코로나19 대책을 보면 독일은 임금뿐 아니라 사회보험료도 100% 지원한다. 미국의 2조달러 경기부양 패키지를 보면 중소기업에 인건비, 임대료, 모기지 등 특정 용도의 고정적 대출을 해주고 올해 6월 말까지 고용을 유지하면 부채를 탕감하겠다는 정책도 들어가 있다. 고용유지를 전제로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업급여 신청건수가 2주 만에 1000만명에 달하게 급증하는 것은 이 조치가 늦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기업의 고용유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강하게 줄 필요가 있다.

■ 고용유지 지원을 늘려라

사회 = 추가로 필요한 대책은 무엇인가.

정 = 임대료에 대한 정책이 빠져 있다. 지금 자영업자에게 1000만원가량의 긴급수당을 줘도 임대료로 빠져나갈 수 있다. 임대료는 동결하고 임대계약은 자동 연장해야 한다. 임대료 동결 여력이 없는 영세 임대업자도 분명 있는데 이 경우 금융지원이 필요하다. 임대료 정책은 방역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임대료 낼 여력이 없어서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사회부 장관은 “집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필수적인 참호”라고 말했다. 아예 정부 소유 건물에서는 임대료를 안 받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정책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해고와 더불어 기업의 자사주 매입도 금지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면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띄우는 일이 항상 벌어지곤 했다. 지금 지켜야 할 것은 주가가 아니라 생계와 일자리다.

이 = 기업들의 고용유지에 대한 지원을 더 강력하게 해야 한다. 지금의 코로나19 경제 충격이 3~4분기에 빠르게 회복되지 않으면 제조업을 비롯해 전 산업의 유동성 문제로 이어진다. 해고를 막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비롯해 더 관대하게 지원해야 한다. 실업급여도 현재는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는데 노동시장이 어려워 구인공고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교육을 받는 것도 구직활동으로 인정한다거나 문턱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과 별개로 취약성이 드러난 고용보험체계를 전면 개선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

정 = 긴급대책에 공공의료 정책이 부족하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코로나19의 경제위기 측면을 주로 얘기했는데 바이러스 위기의 불씨 역시 살아있다. 바이러스 위기의 핵심은 의료체계 붕괴다. 유럽도 긴축재정을 오래하다보니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 등 첨단의료기기가 부족해서 의료자원이 한계에 봉착하다보니 지금의 위기가 벌어졌다. 한국도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 수가 급증했을 때 아슬아슬했다. 바이러스 출현은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의료자원에 대한 추가 지원을 아껴서는 안된다.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왼쪽)과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이 지난 3일 서울 정동의 한 공원에서 노동시장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 전 소장은 정부에 재정을 아낌없이 쓰는 과감한 지원을, 이 본부장은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확대 및 노동취약계층 보호 대책 마련을 각각 주문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왼쪽)과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이 지난 3일 서울 정동의 한 공원에서 노동시장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 전 소장은 정부에 재정을 아낌없이 쓰는 과감한 지원을, 이 본부장은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확대 및 노동취약계층 보호 대책 마련을 각각 주문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재정적자 두려워해선 안된다

사회 = 결국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정 = 정부는 재정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국가채무비율을 40%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준이다. 재정상태가 상당히 건전한데, 다른 나라들은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의 예산을 이번 위기 대응에 쓰는 반면 한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 재정건전성을 지켜왔던 이유는 위기 때 쓰라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 위기다. 재정건전성에 집착한다는 것이야말로 현 정부에 위기의식이 없다는 방증이다.

■ 전례 없는 위기, 전례 집착 말라

전쟁 때 경제원칙은 배급
마스크처럼 정부가 계획을
기업에도 ‘고용유지 지원’에
더 강력한 인센티브를 줘야

사회 = 코로나19의 확산을 계기로 사회체제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 = 미국과 유럽 언론에서는 현 상태를 전시경제라고 표현하는데, 실제 방역은 전쟁과 상당히 유사하다. 전쟁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최소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스페인 독감 때문에 스웨덴의 복지국가가 만들어졌고,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경제가 피폐해졌을 때 영국 복지제도의 근간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왔다. 전쟁 때의 경제원칙은 배급이다. 시장의 장점은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실험을 해서 가장 괜찮은 것을 선택하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쟁은 시행착오를 겪으면 안된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들이 방역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도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국가가 대응을 주도하는 모델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나 시장에 경제원칙을 맡기면 우왕좌왕한다. 마스크 배급이 단적인 예였다. 결국 배급 형태로 해결했다. 앞으로 식량 등 생활필수품 문제는 없을지, 세계적인 공급쇼크가 일어날 때 어떻게 생활필수품을 확보할지 정부의 계획이 돼 있어야 한다. 또 코로나19 감염이 지나가더라도 기업들이 세계경제 침체와 공급망 붕괴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기후나 에너지 등 ‘그린뉴딜’에 투자할 적기다. 공급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내수 투자로 제조업을 살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례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말은 ‘전례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했는데, 현재 기획재정부에 맡겨놓으니 모두 전례가 있는 정책만을 만들고 있다.

주변부 노동시장 희생으로
한국, 위기마다 극복했지만
‘과거 모델’ 적절한지 의문
안전망에서 누락된 사람들
어떻게 책임질지 지혜 모아야

이 = 우리가 과거 위기를 극복한 과정을 돌아보면 주변부 노동시장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그러다보니 국가적으로는 위기를 극복해도 양극화, 저성장 등은 심해졌다. 재택근무만 보더라도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실험들을 하고 있지만, 반면 배달이나 청소노동자 등은 위험에 노출돼 있고 그런 분들에게 또한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노동시장 지위에 따라 위기의 영향이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사회적 약자들이 위기에 취약하다는 현실이 ‘감염’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가 됐다는 점이 매우 다르다. 결국 과거의 위기 극복 모델이 적절한지 검토하고 다음 사회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우선 고용안정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또 다양한 사람들을 안전망에서 누락시키는 우리의 복지국가 한계를 직시하면서 비공식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우리가 그동안 보호하지 못했던 계층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지 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 = 지금 우리나라는 다행히 바이러스든 경제위기든 패닉이 있지 않은 범위 내에 있다. 이걸 벗어나지 않도록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패닉에 든 다음에 들어가는 돈보단 적다. 돈을 아껴서 패닉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재정 걱정하지 말고 정책을 아낌없이 과감하게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패닉으로 간다. 감당할 수 없는 위기다. 또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 사회에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잘 넘기면 방역은 이미 모범국가가 됐고 경제도 그렇게 패닉으로 발전하지 않고 잘 수습된다면 경제에서도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가 있다. 그 길로 가는 핵심은 해고하지 않는다, 고용을 유지하고 고용안전망 밖에 있는 사람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정태인 전 소장, 이병희 본부장

정태인 전 소장, 이병희 본부장


▶정태인 독립연구자 = 1960년생.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진보성향 경제학자.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고, 민간 연구기관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원장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 1966년생.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1997년부터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불평등과 사회안전망 설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00년대 소득불평등의 증가요인 분석>(2014) 등의 저서가 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