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던 권진규 조각품과 자료…서울시립미술관 기증으로 상설전 등 추진

도재기 선임기자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인 권진규의 작품과 관련 자료 700여 점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된다. 사진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테라코타에 채색, 47.5×38×20㎝, 1970년대 초). 고려대박물관 소장.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인 권진규의 작품과 관련 자료 700여 점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된다. 사진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테라코타에 채색, 47.5×38×20㎝, 1970년대 초). 고려대박물관 소장.

한국 현대조각의 거장인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과 관련 기록물 700여 점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된다.

권진규의 작품은 한국 조각사·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으나 작가 사후 제대로 된 자리를 찾지 못해 표류해 왔고, 특히 지난 해에는 한 대부업체의 담보로 잡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미술계의 안타까움을 불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7일 “권진규기념사업회(대표이사 허경회)가 작품과 기록물 700여 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로 최근 합의했다”며 “관련된 구체적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허경회 (사)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도 이날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합의하고 향후 전시, 연구활동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협의하고 있다”며 “권진규 작가의 작품이 최대한 빨리 상설전시 등을 통해 미술사적 연구가 활성화되고, 국민들에게도 작품세계가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권진규 작가의 유족인 여동생 권경숙씨의 아들이다.

권진규 조각가.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권진규 조각가.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각가 권진규와 작업실 모습. 권진규기념사업회·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조각가 권진규와 작업실 모습. 권진규기념사업회·내셔널트러스트 제공.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서울시립미술관은 상설 전시관 마련 등을 검토하고 있다. 미술관 관계자는 “상설전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통해 작가의 작품과 기록물이 제대로 연구되고 또 시민과 학계에 공유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미술관 분관으로 내년 말 개관 예정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서울 평창동)와도 연계한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허 대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라도 상설전시관이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며 “권진규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말년 작품까지 작품세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과 갖가지 관련 자료들을 기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진규 유작들은 자녀를 두지 않은 작가가 1973년 타계한 뒤 유족들이 작가의 유지를 지키고자 권진규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하면서 표류했다. 유족들은 미술관 건립 의지가 있는 독지가들을 찾아나섰고, 2004년 하이트에 작품을 양도했다. 하지만 하이트의 경영난으로 미술관 건립이 어려워졌고 결국 2010년에 작품을 돌려받았다.

이후 유족들은 2015년에 춘천을 기반으로 한 기업인 대일광업과의 합의에 따라 권진규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조각과 유화·각종 자료 등 700여점 작품을 시세보다 낮은 40억원에 일괄 양도했다. 춘천은 함흥에서 태어나 월남한 권진규가 머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곳이란 인연이 있다. 양도된 작품들은 초기엔 대일광업의 달아실미술관(강원 춘천시 동면) 내 권진규미술관에 전시됐다. 하지만 합의와 달리 별도의 미술관 건립이 지지부진해지는 등의 이유로 유족과 소장가 사이에 법적 소송이 벌어졌다.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1967년,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의 ‘지원의 얼굴’(1967년,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소송 과정에서 대일광업 측이 미술품 경매사인 케이옥션 자회사 케이론대부에서 4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작품들이 담보로 잡혀있다는 게 확인됐다. 춘천지방법원은 지난 달 19일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일광업 측에 양도대금을 받고 미술품을 유족들에게 돌려주라며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유족들은 현재 작품 인수자금 마련, 기념사업회의 다양한 사업을 위한 기금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허 대표는 “2022년이면 권진규 작가 탄생 100주년이고, 이를 맞아 제대로 된 기념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후학 작가, 연구자들의 작업과 연구를 지원·후원하기 위한 권진규상 제정, 기념사업회가 운영 중인 사이버미술관의 개편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진규의 ‘말’(1969년,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의 ‘말’(1969년,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세기 한국 조각을 대표하며 일본에서도 유명한 권진규는 당초 서울에서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일본에서 큰 인정을 받았다. 이후 귀국한 그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으나 1973년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과 일본의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서울 동선동 집과 작업실은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돼 보존되고 있다.

최열 미술사학자는 이날 “마침내 권진규 작가의 유작들이 공공미술관에 안식처를 찾아 참 다행”이라며 “앞으로 보다 활발한 연구를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가 제대로 조명되고, 또 한국 근현대 조각사, 더 나아가 미술사 복원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진규의 삶과 작품세계를 담은 저서 <권진규>(마로니에북스)를 펴내기도 한 그는 “권진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격동의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낸 비운의 작가인데 사후에도 미술관 건립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작품들이 표류해 안타까웠다”며 “한마디로 권진규는 한국을 넘어 20세기 중반 동북아시아 조소예술의 역사를 바꿔놓은 작가”라고 평가했다.

권진규의 ‘마스크’(1960년대,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의 ‘마스크’(1960년대, 테라코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는 “권진규는 대부분의 조각가들이 동상과 기념탑을 만들 때 이를 거부하고 순수조각에 매달렸고, 당시 조각계를 휩쓴 추상 열풍에도 맞서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으며, 작업하기 힘들어 버려지는 건칠·테라코타 등 재료를 바탕으로 빼어난 작품들을 빚어냈다”며 “시대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거스르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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