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터뷰

‘프리랜서지만 진짜 프리하진 않아요’ 방송작가 홍지해·김나영

글 이진주 기자·영상 유명종PD
고된 업무 스케줄과 대부분이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불안한 고용 환경에도 ‘방송이 재미있어 한다’는 방송작가 홍지해씨(왼쪽)와 김나영씨. 유명종 PD

고된 업무 스케줄과 대부분이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불안한 고용 환경에도 ‘방송이 재미있어 한다’는 방송작가 홍지해씨(왼쪽)와 김나영씨. 유명종 PD

기획부터 구성, 섭외, 대본 작성까지 프로그램이 완성되는 데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과정은 없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평생 남을 ‘띵작’(명작)을 선물하는 방송작가다. 붙박이처럼 방송국에서 먹고 자고 일하지만 사실 프리랜서이며, 알고 보면 ‘프리’하지 않은 작가들의 삶에 대해 물었다.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홍지해씨와 김나영씨는 각각 방송작가로 14년, 11년을 일했다. 2014년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돈독한 선후배 사이가 된 두 사람은 드라마 이외의 모든 프로그램을 쓰는 구성작가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지해씨와 국문학을 전공한 나영씨는 글을 쓰는게 좋아 방송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 때부터 작가를 꿈꿨고 방송 아카데미를 거쳐 지해씨는 KBS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로, 나영씨는 기독교 방송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작가에 입문했다.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하지 않을 용기를

작가는 고된 업무 스케줄로 유명한 직업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고용도 불안정하다. 그런 환경에도 “평생 하고 싶은” 작가의 매력은 무엇일까? 두 사람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방송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영씨는 “방송을 통해 평소 만나기 힘든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만나 다양한 분야에 대해 배우는 즐거움이 굉장히 크다”고 했다.

일이 주는 기쁨은 크지만 현장이 녹록하지는 않다. 2019년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일하는 방송작가는 전체 응답자 580명 중 단 1명에 불과했다. 소속된 곳이 없기 때문에 처음 작가일을 구할때는 구성작가협회 사이트나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공지를 참고하거나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일을 구한다. 지해씨는 “분야별로 1000명 이상의 작가들이 모인 SNS 단톡방에서 ‘7년차 작가를 구한다’고 올리면 아는 사람을 추천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겠다고 손을 들기도 하지만 개인 인맥으로 일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존 프로그램에서 일손이 부족하거나 공석이 생겨 작가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기획 단계부터 합류해 PD와 프로그램 전반을 상의한다. 규모에 따라 작가의 숫자가 결정되고 작가팀을 꾸리면 메인작가와 서브작가, 막내작가로 구성된다. 팀은 보통 함께 일한 경험이 있거나 추천을 받는다. 예측할 수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개월 전부터 팀을 꾸려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도 모든 방송이 실제 제작돼 전파를 타는 것은 아니다. 제작이 없던 일이 되면 작가들은 그동안 쏟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기획 단계에 가장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데 방송이 엎어져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요. ‘미안해’ ‘어떡하지’ 라고 말하는게 끝이에요.”(나영씨) 쉬지 않고 일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아 생활고를 토로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10년차 이상의 경력인 두 사람도 기획단계에서는 임금의 50%밖에 받지 못할 때가 많다.

방송작가는 방송 회차에 맞춰서 임금을 받기에 방송이 나가야 돈을 받는다. 방송이 밀리거나 조기 종영하면 수익도 그만큼 줄어든다.

“기형적으로 성장한 특수한 (고용)형태예요. 고용되어서 일은 하는데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죠. 기획 단계에서 임금을 100% 주는 곳이 있는데, 그렇다면 (임금 현실화는) 가능하단 얘기잖아요. 저희도 월급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 큰 틀에서 고치려는 노력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지해씨)

두 사람은 임금 문제로 고민하는 막내작가들에게 부당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기획은 물론 자료조사, 취재, 출연자 섭외, 회의록 작성, 보도자료 작성, 시청률 그래프 관리에 선배 작가를 돕는 업무까지 맡는 막내작가의 업무시간은 프로그램 스케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방송작가들의 투쟁 끝에 최근 막내작가들의 월급은 160만원~180만원으로 조정됐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80만원~120만원 수준이었다.

“월급이 너무 적다면 가능하면 그 팀에서는 시작하지 마세요. 좋은 팀은 아닙니다. 그렇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지금은 충분히 있어요.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셨음 좋겠어요.”

■평소에는 어려운 선배도 좌절의 순간 언니처럼 위로해

지해씨는 자신도 막내작가 시절에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없어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버텨야 했다고 했다. 일은 하지만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연차나 휴가를 쓸 수 없고 야근을 해도 임금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을 작가들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다.

두 사람이 힘을 얻는 것은 오랜시간 후배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선배들이다. 지해씨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30~40대 작가들도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주축이 된 30대 작가들은 물론 40~50대 선배들도 현직에 많다. “평소에는 어렵기만 한 선배들이 실수해서 괴롭거나 일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에는 진짜 언니처럼 섬세하게 위로해주세요. 그게 너무 큰 힘이 됩니다.”

최근 방송국에 많아진 여성 PD들과의 작업에서도 힘을 얻는다. 나영씨는 “작가일을 하던 초창기에는 회의를 하거나 편집할때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거나 거칠게 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특히 여성이 대부분인 작가들 입장에서 여성PD는 남성보다 성인지감수성에 예민하고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공감과 소통에서 좀 더 편안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해씨는 “특히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PD의 경우 결혼 준비나 임신, 육아문제 등으로 일찍 퇴근해야 하는 작가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준다”고 말했다.

최근 두 사람은 지난 4월 종영한 tvN <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에서 함께 일했던 2명의 작가와 함께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책 <북킷리스트>를 펴냈다. 방송으로 나가는 글과 글로 보이는 글을 쓴다는 차이가 커 방송을 할 때 보다 더 많은 고민과 힘을 기울여야 했지만 책을 쓰면서 다른 형태의 작업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해씨는 “방송작가 개인이 책을 내는 경우는 많지만 방송작가들이 팀을 이뤄 책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책을 써보니 팀플레이가 익숙한 작가들로서는 도전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배님들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동료 작가들과 함께 도전해보시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지해씨와 나영씨는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방송일이 더 좋다고 했다. “지난 12일 첫 방송을 한 tvN 예능 프로그램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기억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시청률도 대박 나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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