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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가치 하락의 시대, 다단계가 2030을 유혹한다

박병률·김원진 기자

코로나19로 뒤숭숭한 세상. 다단계가 다시 20·30대를 파고들고 있다. 가뜩이나 고용상황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일자리는 위축됐다. 여기에 부동산·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노동가치가 하락하자 그 틈을 ‘검은 유혹’이 비집고 있는 셈이다.

다단계 판매는 제조자가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비자들이 판매원이 되어 시장을 확대시키는 판매 방식이다. 유통업체에 돌아갈 수익을 소비자이자 판매원에게 돌려준다는 발상에서 시작됐지만 문제는 의도가 변질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다단계 판매의 수익은 상위 판매자가 하위판매자로부터 받는 수수료에서 나온다. 하위판매자만 많이 끌어올 수 있으면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하위 판매원은 떼이는 수수료도 많고, 떠안게 되는 제품도 많아진다. 무리하게 판매원을 끌어들이고, 제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하위판매원의 상당수는 엄청난 금전적·사회적 손실을 보게 된다.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테헤란로 일대 카페에는 다단계 판매 강의를 하는 무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단계 영업 금지’라는 푯말을 붙여놓은 카페도 적지 않지만 ‘파이프라인의 완공했을 때 내가 원하는 소득이 수도꼭지에서 콸콸 나오는 것’을 기대하며 2030이 모여들고 있다.

최근 다단계는 SNS를 통해서 비대면으로도 활발히 이뤄진다. 상위판매자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맛집과 여행지를 올리면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들은 주로 건강보조식품과 화장품을 판다.

박권일과 우석훈은 저서 <88만원 세대>에서 “아무런 진입장벽 없이 20대를 환영하고 무료로 강의를 시켜주고 집단 합숙도 시켜주는 경제조직은 불법 다단계밖에 없다”고 말한다. 취직이 어려운 시대,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며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할 수 있는데 2030이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이쁜 버섯에는 독이 있을 가능성이 큰 것처럼 다단계 판매는 치명적인 독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단계 판매는 고령층도 유혹한다. 선릉역 인근 카페에서 2030을 대상으로 다단계 강의가 진행되던 시간, 선릉역 인근 빌딩 지하에서는 6070을 겨냥한 ‘다단계 암호화폐(코인)’ 설명회가 열렸다. 암호화폐 채굴에 투자하면 코인을 주는데, 코인 가격이 급등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끌어오면 추천 수당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고령층들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블록체인,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뉴딜이라는 현란한 단어에 현혹된다. 비트코인이 4000만원이 되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하지만 쉽게 버는 돈은 없다. 받은 코인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투자금은 날려버린 피해자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다단계 코인 피해는 수면 위로 잘 올라오지 않는다. 참여자들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주식과 부동산 급등으로 자산 격차가 벌어지면서 ‘벼락거지’가 됐다는 자조가 나오는 시대다. 이례적인 상승장에서 나 홀로 소외가 됐다는 ‘포모 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은 다단계 판매가 번식하기 좋은 또 다른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윅픽] 노동 가치 하락의 시대, 다단계가 2030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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