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노아의 방주'?…지구생물 유전자 창고 지을 수 있을까

이정호 기자
외계 행성과 유사한 지형을 가진 스페인 란사로테섬의 지하 용암동굴을 주행 중인 로버의 모습. 미국과 유럽 과학계는 달에도 있는 이런 용암동굴이 인류가 활용할 좋은 공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외계 행성과 유사한 지형을 가진 스페인 란사로테섬의 지하 용암동굴을 주행 중인 로버의 모습. 미국과 유럽 과학계는 달에도 있는 이런 용암동굴이 인류가 활용할 좋은 공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지금으로부터 6600만년 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위로 밝은 불덩어리 하나가 총알의 20배 속도로 날아든다. 정체는 바로 소행성이었다. 에베레스트산보다 덩치가 큰 지름 10㎞짜리 이 소행성은 얕은 바다로 돌입해 곧장 지각 깊숙이 파고들었다. 충돌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강력한 쓰나미와 지진이 이어졌고, 대기가 초고온으로 달궈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충돌로 만들어진 먼지가 하늘을 감싸며 태양광을 장기간 차단했다. 생태계가 파괴되며 당시 생물종의 75%가 사라졌다. 죽음의 리스트엔 공룡도 포함됐다. 공룡과 달리 과학기술로 무장한 인간도 소행성을 방어할 뾰족한 방법이 아직 없다. 6600만년 전 닥친 비극이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달에 생물종 저장고 건설”

그런데 이런 재앙으로부터 지구 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노아의 방주’ 계획이 제기됐다. 식물 씨앗과 동물의 정자, 난자 등에서 뽑은 유전자 670만종을 보존하는 창고를 만들자는 것이다. 창고 부지로 지목된 건 지구에서 38만㎞ 떨어진 ‘달’이다. 지난주 미국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애리조나대 연구진이 이달 초 국제 전기전자학회(IEEE) 항공우주회의에서 이 같은 지구 생명 보존계획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연구진이 달을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적당한’ 거리 때문이다. 소행성 충돌을 비롯해 지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슈퍼 화산 폭발, 핵전쟁 등을 확실히 피하면서도 딱 접근이 용이한 수준만큼만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안전을 원한다면 화성처럼 달보다 더 먼 곳이 낫겠지만 달까지는 로켓으로 나흘, 화성까지는 7개월이 걸린다. 우주를 이동하다 닥칠 수 있는 돌발 변수를 감안하면 달만 한 곳이 없다는 얘기다.

인공위성이 달의 ‘마리우스 언덕’에서 촬영한 구멍의 모습. 과학계는 이곳을 지하 용암동굴의 입구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인공위성이 달의 ‘마리우스 언덕’에서 촬영한 구멍의 모습. 과학계는 이곳을 지하 용암동굴의 입구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최적 입지조건 갖춘 용암동굴

연구진이 달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2000년대부터 이뤄진 본격적인 인공위성 관측 이후 과학계가 ‘지하 용암동굴’을 다수 확인했기 때문이다. 30억 년 전에 용암이 흐르며 만들어진 이 지하 동굴들의 지름은 대개 100m가 넘는다. 매우 큰 규모의 창고가 될 만한 조건이다. 창고 후보에 오를 정도의 동굴이 200여개에 이를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지하 동굴은 지상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급격한 온도 변화나 소행성 충돌 충격을 이겨낼 수 있다. 유전자를 변형할 수 있는 우주의 방사선에서도 안전하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선 이곳을 연구와 거주를 위한 달 기지의 유력 후보지로 보고 있기도 하다. 연구진은 유전자를 장기 보관하는 데에는 최저 영하 196도의 극저온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냉동을 포함해 창고를 유지할 동력은 달 표면에 깔아 놓을 태양광 전지판에서 얻는다.

■“비용 높지만 실현 가능성 커져”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연구진은 로켓을 약 250번 발사하면 목표로 한 유전자 전부를 달로 운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진을 이끄는 제칸 산가 교수는 “달에 창고를 만들기 위한 로켓 발사 횟수가 터무니 없이 많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반 완공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지을 때 인류는 이미 로켓을 40번이나 쐈다. 기술 발달 추세를 봤을 때 250번의 로켓 발사가 꿈 같은 계획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난관이 있다. 연구진이 계산한 발사 횟수에는 유전자 창고를 짓기 위한 자재와 장비를 옮길 로켓은 포함되지 않았다. 인류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우주 토목공사’에 얼마만큼의 로켓이 동원돼야 할지는 가늠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아우르는 핵심은 결국 비용이다. 연구진은 창고 공사와 유전자 운송에 대략 수백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산가 교수는 라이브사이언스를 통해 “유엔을 통한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페이스X 같은 민간우주기업이 로켓 발사 비용을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를 감안하면 달에 창고를 짓는 일이 30년 이내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등에서 자원 채굴과 같은 목적으로 달에 기지를 짓는 노력이 2030년대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관련 인프라를 활용해 유전자 창고 건설이 좀 더 수월해질 가능성도 있다. ‘지구 최후의 순간’에 대비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현실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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