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절망에서 건져온 9년 만의 솔로, 처음 만나는 이이언

김지혜 기자
이이언은 9년 만에 발매하는 새 솔로 앨범 <Fragile>을 두고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을 미니멀한 형태로 녹여내면서, 개인적으로 최근 좋아하게 된 알앤드비와 힙합의 어법까지 담아낸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Motmusic 제공

이이언은 9년 만에 발매하는 새 솔로 앨범 <Fragile>을 두고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을 미니멀한 형태로 녹여내면서, 개인적으로 최근 좋아하게 된 알앤드비와 힙합의 어법까지 담아낸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Motmusic 제공

“그대 여길 떠나지 말아요/ 너무 많은 게 무너지잖아.”

9년 만에 발표하는 두 번째 솔로 앨범 <Fragile(프래절)>, 싱어송라이터 이이언은 타이틀 곡 ‘그러지 마’에서 뜻밖에 애원을 한다. 데뷔 앨범인 밴드 못 1집 <비선형>(2004) 이래 치밀하고 독보적인 ‘우울의 전위’를 구축해온 종전 이이언에게선 기대할 수 없었던, 전에 없이 직설적이고 솔직한 노랫말이 간결한 선율을 타고 흐른다.

“그대만 아는 그 이름 가져가지 마세요.” 피처링으로 참여한 방탄소년단 RM의 랩이 나직이 이어질 때, 변화의 기미는 한층 분명해진다. 솔직한 절망이 곧 안식이 되는, 이이언의 새로운 음악세계가 막 열리는 순간이다. “우울과 연약함을 그대로 인정한 뒤에 찾아오는 평화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슬픔에 매몰되기보다 받아들이는 태도, 이것이 이번 앨범이 이전 곡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앨범 발매(30일)를 앞둔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이이언과 새 앨범을 채운 11곡을 먼저 만났다.

“또 다른 삶이란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무르고 연약한 영혼을 보면.” 수록곡 ‘뷰티풀 마인드(btfl mind)’는 이이언이 2019년 초부터 공황장애로 고통받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곡이다. 음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던, 예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절망에 신음하던 시절들을 기록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음악 곁으로 돌아온 것이 2019년 9월, 이이언은 갑작스레 찾아온 “본능적인 창작욕”에 달떠 “뭐에 홀린 듯한 느낌”으로 매일같이 곡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남들이 했을 것 같은 뻔한 사운드, 쉬운 코드 진행은 피하고 싶다는 욕구와 완벽주의적 성향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런데 음악에서 가장 먼 곳까지 떠나갔다 돌아왔기 때문일까요. 이번엔 그런 제약들을 벗어던지고, 그저 제 귀에 좋게 들리는 음악들을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집착을 버리고 그 자리에 정성을 가져왔달까요.”

그렇게 쏟아낸 곡들이 엮여 예정에 없던 솔로 2집 <Fragile>이 탄생했다. 역시 이이언이다 싶게 마음을 파고드는 낯선 어둠들로 가득한 앨범이지만 <비선형>, <이상한 계절>(2007), <재의 기술>(2016) 등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못의 음악들이나 2012년 솔로 1집 <길트 프리(Guilt-Free)>, 2018년부터 활동 중인 프로젝트 밴드 나이트오프의 음악과는 어딘가 다른 달관과 여유가 묻어난다.

이이언은 “인간 영혼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새 앨범 <Fragile>의 전반적인 정서와 주제가 됐다”고 말했다. Motmusic 제공

이이언은 “인간 영혼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새 앨범 <Fragile>의 전반적인 정서와 주제가 됐다”고 말했다. Motmusic 제공

“인간 영혼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 앨범의 전반적인 정서와 주제가 됐어요.” 절망에서 건져온 새로운 삶의 태도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부터 곡을 채우는 주제까지 다양한 변화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길트 프리>를 작업할 때만 해도 스스로 가진 것이 100이면 130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저를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그러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어요. 이제는 100을 가졌으면 100을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해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가 그냥 제 일인 것 같아요.”

이이언은 이번 앨범에서 처음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들을 다수 선보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RM이 참여한 ‘그러지 마’는 그중 하나다. “RM씨와는 친하게 지낸 지 5~6년 정도 됐어요. 이번에 작업한 곡 중에 RM씨가 피처링 해주면 근사하게 완성될 것 같은 곡이 있어서 먼저 연락을 했죠. 너무 흔쾌하게 수락을 해서 일이 수월하게 성사됐어요. 원래는 ‘그러지 마’가 아닌 다른 곡을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작업실에서 곡들을 함께 듣던 RM씨가 ‘그러지 마’도 불러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 곡도 작업을 해볼 테니 두 곡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쓰라’더니 바로 다음날 녹음을 해서 보내줬어요. 수정이나 재녹음할 필요도 없이 너무 좋았어요. 심지어 부탁한 부분이 아닌 아우트로까지 ‘재미삼아 불렀다’며 녹음해 보냈는데, 그것도 너무 좋아 그대로 썼죠.”

앞서 이이언 역시 2018년 발매된 RM의 두 번째 믹스테이프 수록곡 ‘배드바이(badbye)’에 피처링으로 참여했을 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돈독하다. “첫 만남이 재밌었어요. RM씨가 먼저 제 음악을 좋아한다며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트위터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죠.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니까 너무 괜찮은 친구더라고요. 음악적으로도 정말 잘 맞아요. 요즘도 만나면 요새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얘기하고 서로 추천도 해주는데, 각자 좋아하는 음악이 겹치는 경우도 많아요. 최근 생각나는 건 바밍타이거나 릴 체리 정도가 있네요. RM씨가 음악을 정말 열심히 챙겨듣거든요. 국내·외 인디 음악부터 빌보드 순위권 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정말 다양하게 많이 듣는 친구예요.”

힙합·알앤드비 신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인 스월비와 제이클레프 역시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특히 ‘매드 티 파티(Mad Tea Party)’에 참여한 스월비의 경우 앞서 인터뷰를 통해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로 이이언을 꼽은 바 있어 더욱 의미있는 작업이 됐다. “스월비씨가 저를 언급한 인터뷰 기사를 제보를 받아서 보게됐어요. 마침 스월비씨가 참여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던 곡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연락처를 알아내서 문자를 보냈죠. 그런데 20초만에 하겠다고 답장이 온거예요(웃음). 스월비씨의 피처링 역시 수정을 할 필요 없이 정말 좋았어요. 오히려 처음 부탁한 파트 이상으로 더 해줄 수 없겠냐고 요청하기까지 했죠. 이번 앨범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빈칸을 멋있게 채워준 아티스트들 덕분에 혼자 작업할 때와는 다른 쾌감을 느꼈어요. 마치 ‘어벤저스’에 소속된 느낌이 들었죠.”

이이언은 <Fragile>을 두고 “일단은 간결하고 쉽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Motmusic 제공

이이언은 <Fragile>을 두고 “일단은 간결하고 쉽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Motmusic 제공

이이언은 <Fragile>을 두고 “일단은 간결하고 쉽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못으로는 지적 유희로 가득한 ‘음악 너드’들을 위한 곡들을 선보여왔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사운드와 곡 구성보다도 멜로디와 가사가 중심이 되는 미니멀한 음악에 집중했어요.” 그만큼 대중 곁으로 한 걸음 성큼 내디딘 앨범이지만, 이것이 곧 예술적 성취에서의 소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로서 지금이 가장 최정점에 있는 것 같다”는 이이언은 <Fragile>이 음악 작업 방식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앨범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 뮤지션’의 극적인 변화를, 그로 인해 새롭게 태어나는 창작의 세계를 동시대에 목격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이이언의 <Fragile>, 그 이후가 기대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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