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캔스피크

①비둘기 “도시의 삶,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최유진 PD

📽 [스튜디오 그루] 애니캔스피크 ep.1

비둘기는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날아다니는 쥐’ ‘닭둘기’라고 불리며 비둘기 ‘포비아’(공포증)을 겪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야생동물인 비둘기는 왜 도시에 살고 있을까. 인간과 친밀했던 역사는 언제부터 역전된 것일까.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집비둘기’는 ‘락 도브’(Rock Dove)라는 종이 기원이다. 원래 해안가 근처 절벽이나 물이 많은 산에 살았지만 인간이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하면서 도심 속에 들어와 집비둘기가 됐다.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서거정은 문집 <사가집(四佳集)> 중 <화합>에서 비둘기의 다양한 특성과 함께 키우는 방식을 다룬다. 비둘기를 새장에 넣어 기르고, 꽁지깃에 금방울을 매달아 전서로 활용한 일도 적어 놓았다.

비둘기는 지형지물을 잘 인식하는 조류다. 2차 세계대전 때 메시지를 전하는 전서구 역할을 맡으면서 1000㎞를 나는 경주용 비둘기가 되었다가 1960년대부터는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되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 행사를 대비해 농가에서 본격적으로 사육하면서 개체수가 급증했다. 1971년에는 초등학교에서 비둘기 날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세 연설식에도 비둘기 날리기 행사가 열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올림픽 경기장에서 날린 흰 비둘기는 2400마리에 달한다.

이후 지금까지 비둘기는 인간의 필요에 맞춰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돼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도시에 비둘기 개체수가 많아진 것은 우리 인간의 책임일 수밖에 없죠.”(한국조류연구소장 유정칠)

우리가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비둘기의 기원은 해안가나 절벽에서 발견되어 이름이 붙여진 락 도브(Rock Dove)이다. 게티이미지

우리가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비둘기의 기원은 해안가나 절벽에서 발견되어 이름이 붙여진 락 도브(Rock Dove)이다. 게티이미지

도시에서 사는 집비둘기는 먹는 것과 사는 공간을 모두 인간에게 의존해서 확보한다. 공원과 아파트 실외기, 교각 아래 등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서 살면서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 비둘기 몸을 더럽히는 도시 먼지 역시 인간이 배출한 배설물이다.

깨끗한 물과 음식을 찾기 힘든 도시에서 비둘기는 살기 위해 점차 인간의 생활 반경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배설물이 건물을 부식시키고 깃털 등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급증하면서 환경부는 2009년 집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

“모든 야생동물은 더러워요. 사실은 비둘기뿐만 아니라 야생에서 사는 어떤 동물도 그(비둘기) 이상의 기생충과 병균을 갖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인간의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기 때문에 기생충 검사나 실험 등을 많이 했을 뿐이지요. 오히려 하천이나 공원에 사는 비둘기는 야외에서 사는 개와 고양이보다 더 깨끗할 수도 있어요.”

한국조류연구소장인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이 같은 실험을 바탕으로 ‘비둘기는 위험하다’는 보도가 이어진 탓이라고 말했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 어린이에게 비둘기의 배설물은 위험할 수 있지만 ‘비둘기가 특히 더럽다’는 인식은 편견이라는 것이다.

지난 12일, 종로구 종묘 공원에 걸려있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현수막 앞에 참새 모이를 주고 있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최유진PD

지난 12일, 종로구 종묘 공원에 걸려있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현수막 앞에 참새 모이를 주고 있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최유진PD

서울 시내 서식하는 비둘기의 개체수는 4만5000마리에서 5만 마리로 추정된다. 환경부가 2021년 비둘기 개체수와 서식지 조사를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은 인간이 쏜 화살에 맞거나 인간이 설치한 퇴치용 그물에 걸려 폐사한다. 특히 유해조수로 지정돼 위험한 상황에서도 구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야생동물센터는 지난해 서울 시내에서 약 1000마리의 조류를 구조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새가 비둘기였다. 주로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비둘기나 고양이나 까치 등 천적으로부터 외상을 입어 다친 비둘기들이 센터에 구조돼 들어온다.

“비둘기는 환경부령으로 정한 야생동물 중 하나입니다. 유해조수이기 전에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센터에서 구조해 치료하는 것이죠.”(김태훈 서울시 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서울시 야생동물센터에서 구조된 비둘기가 붕대를 감은 채 새장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최유진PD

서울시 야생동물센터에서 구조된 비둘기가 붕대를 감은 채 새장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최유진PD

인간이 비둘기와 도시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먹이가 제일 중요합니다. 인공적인 사료를 차단해서 본래 살던 자연으로 갈 수 있게끔 사람들이 노력할 필요가 있어요.”(유정칠 한국조류연구소장)

식물의 씨앗이나 과실 등 자연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난간이나 실외기 등에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뾰족한 장치를 설치한 ‘버드 스파이크’나 ‘그물망’도 비둘기가 더 안전한 공간으로 이주하도록 유도하는 도구다.

비둘기가 사람의 언어를 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공포’까지 느끼고 있는 인간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비둘기를 구조하고 치료해 온 김태훈 재활관리사는 이렇게 전한다.

“우리가 선택한 삶은 아니었어요. 조금만 양보해 주고 배려해 주면 안 될까요.”

인간과 가장 친밀했던 조류인 비둘기. 도심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적응해왔던 비둘기에게 우리 조금 마음의 벽을 낮추고 공간을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서울 도심에 위치한 공원 풀숲에 비둘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유진PD

서울 도심에 위치한 공원 풀숲에 비둘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유진PD

스튜디오 그루’는 흔히 보고, 먹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의 삶을 ‘애니캔스피크’(Animal Can Speak)를 통해 그들의 언어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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