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열린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0)가 공판 도중 ‘건강 이상’을 호소했다. 5·18민주화운동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씨는 광주지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전씨는 9일 오후 2시 광주지법 형사1부(김재근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사자명예훼손 항소심 재판에 배우자 이순자씨와 함께 출석했다. 이날 오전 서울 연희동 집을 출발해 광주에 도착한 전씨는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 “광주시민과 유족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씨는 2017년 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계엄군의 5·18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2018년 5월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했다. 5·18학살의 최고 책임자로 꼽히는 전씨가 형사 피고인으로 광주 법정에 선 것은 1심부터 이번이 네번째다.
이날 법정에 선 전씨는 공판 도중 건강 이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씨는 피고인의 이름과 나이, 직업, 주소 등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부터 재판장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 재판부의 허가로 옆자리에 동석한 이씨가 알려주면 겨우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판이 시작된 지 20여분이 지났을 무렵 이씨는 재판부에 전씨의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판사가 “피고인 호흡이 곤란합니까”라고 묻자 이씨는 “지금 식사도 못했고 가슴이 답답하신 것 같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전씨가 퇴정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뒤 공판을 계속 진행했다. 이씨는 변호인을 통해 지난 기일에 출석하지 못한 이유 등을 적은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10여분 정도 공판을 더 진행한 재판부는 휴식을 취한 전씨를 다시 부른 뒤 이날 재판을 마무리 했다.
재판부는 전씨 측이 신청한 <전두환 회고록> 작성에 관여한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1980년 5월 광주에 출동했던 506항공대 헬기조종사 4명도 증인으로 불러 진술을 듣기로 했다. 다음 재판은 30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재판을 지켜본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재판에 안일한 태도를 보여 왔던 전씨를 다시 법정에 세웠다”면서 “전씨가 제발 자신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더 이상 거짓으로 일관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