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도 땅 아래에, 무허가 주택에, 방 한 칸에, 컨테이너에, 모텔에, 교회에 아이들이 산다. 수도권에만 22만7000가구의 아이들이 ‘주거빈곤’ 속에서 자란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2020년 서울시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와 ‘2021년 경기도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 결과다. 서울·경기에서만 22만7000가구의 아이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보고서는 그간 ‘아동 주거빈곤’을 알게 모르게 외면해온 사실을 알려준다.
주거빈곤은 국가의 최저주거기준(2인 기준 면적 26㎡, 수세식 화장실·전용 입식 부엌 등)을 충족하지 못한 주거환경과 옥탑방·지하방, 그리고 고시원·모텔 등의 비주택거주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신체·정서·인지 발달이 이뤄지는 아동에게 다양한 유형의 상처를 입힌다.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를 겪은 적이 있다는 답변이 주거빈곤 아동의 경우 3배 높았다(서울시 전체 아동 1.6%·주거빈곤 아동 5.5%). 행동장애 비율(1.6%) 또한 전체아동(0.9%)보다 높은 편이다. 지하·옥상 거주에 사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은 더 위태롭다. 전체 아동가구의 정신건강 점수는 5점 척도에서 평균 4.36점인 반면 지하·옥상 거주 아동가구 3.77점이었다.
주거빈곤은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자극한다. 서울시 주거빈곤 아동 4명 중 3명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 놀아본 적이 없다”(74.3%)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집에 같이 놀 공간이 없어서”(77.8%)라고 답한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 앞에서 불만을 직접 표현하기도 한다. 서울시 주거빈곤 가정에서 자란 아이 10명 중 4명(43.1%)은 좁거나(30.9%), 화장실이 불편(12.2%)하다며 부모에게 불평했다. 전체 아동가구(13.8%)에 비해 3배가량 더 많은 불만을 털어놨다.
주거빈곤에 처한 아이들이 마음만 다치는 것은 아니다. 몸도 또래에 비해 더 아프다. 경기도 주거빈곤 가정에서 자란 첫째 아이가 아토피 등 피부질환을 겪은 비율은 9.2%다. 전체 아동가구(4.8%)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알레르기 비염에 걸린 비율도 주거빈곤 가정의 아동(13.9%)이 전체 아동가구(9.2%)보다 높았다. 지하·옥상에 사는 아동은 천식(2.8%)과 중이염(6.1%)에 걸린 비율이 전체 아동가구에 비해 2배 가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