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폴란드, '홀로코스트 피해 구제 제한법' 두고 갈등 폭발

김윤나영 기자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바르샤바의 크라신스키치 광장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7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8월 1일 독일 나치 점령에 대한 가장 큰 저항 작전을 뜻한다. 이 시위로 시위대 1만8000명과 약 18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바르샤바|EPA연합뉴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바르샤바의 크라신스키치 광장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7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8월 1일 독일 나치 점령에 대한 가장 큰 저항 작전을 뜻한다. 이 시위로 시위대 1만8000명과 약 18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바르샤바|EPA연합뉴스

폴란드가 독일 나치 정권이 몰수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재산에 대한 반환 청구를 제한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이스라엘은 폴란드 주재 자국 대사를 철수하는 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양국의 긴장이 고조됐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이 몰수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재산에 대한 반환 청구 기간을 30년으로 제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두다 대통령은 성명에서 “법적 무질서의 시대와 폴란드인 수백만명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종식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폴란드 하원이 지난 11일 통과시킨 이 법안은 대통령 서명을 거쳐 30일 뒤 효력이 발생한다.

이스라엘은 이날 폴란드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며 강력히 항의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홀로코스트 기억에 대한 수치스러운 결정이자 모독”이라는 성명을 냈다.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도 “폴란드가 반유대주의적이고 부도덕한 법을 승인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이 법안 통과로 재산 반환 청구의 최대 90%가 영향을 받으리라고 내다봤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여러 유럽국가에서 박해받고 추방된 유대인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 나치 정권이 폴란드계 유대인 200만명의 사유재산을 빼앗았고, 1947년 소련의 지원을 받고 들어선 폴란드 공산당 정권은 나치가 남기고 간 유대인 재산을 국유화했다.

폴란드 정부는 이후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그 후손들에게 재산 돌려주기 캠페인을 벌였으나, 이번에는 헌법재판소가 2015년 유대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에 기한을 둬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이에 폴란드 의회는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기간을 30년으로 제한했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는 폴란드 국유지의 공공 임대주택에 사는 저소득층 시민들도 이해당사자라 유대인 재산 반환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고 전했다. 공공 임대주택 건물이 유대인 소유주나 그 후손에게 넘어가면 폴란드 세입자들은 쫓겨나거나 임대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폴란드 극우 세력들이 반유대주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양국의 긴장이 고조됐다. 폴란드 외무부는 이날 “이스라엘이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면서 “상호주의 원칙을 고려해 적절한 외교적, 정치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폴란드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공동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폴란드 법안 통과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면서 이스라엘 편에 섰다.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폴란드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이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지난 6월 “폴란드는 독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한 푼도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외무부도 “폴란드는 독일 점령군이 자행한 잔학 행위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폴란드도 나치 침공의 피해자라는 논리다.

PiS는 2018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 정부도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범죄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적도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역사학자들의 발언권을 법으로 축소해선 안 된다”고 반발하자 법안 통과는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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