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주의를 파는 비공식적 ‘중국 공산당의 입’

김혜리 기자

극단적 애국주의 ‘막말 왕’ 환구시보 총편집인 후시진

중국 ‘공산당의 입’으로 불리는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 트위터 캡처

중국 ‘공산당의 입’으로 불리는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 트위터 캡처

펑솨이 사태·외교적 사안 등
국제 이슈 중국과 연관 지어
당국 옹호하며 상대 헐뜯는
‘늑대전사’ 원조 격인 언론인

지난달 2일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師)는 웨이보에 장가오리(張高麗) 전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긴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약 20분 만에 삭제됐고, 펑솨이는 지금까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펑솨이의 신변 불안 우려가 제기되면서 중국의 인권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러자 중국을 대변하기 위해 한 사람이 나섰다. 바로 중국이 세계와 말싸움을 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 후시진(胡錫進·61) 환구시보 총편집인이다.

그는 지난달 19일 트위터에 “정보통을 통해 펑솨이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글과 함께 펑솨이가 식당에서 사인을 해주는 영상을 올렸다. 중국 정부에 의해 펑솨이의 안부가 조작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후시진은 “중국에 한해서 서방 언론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영상 속) 여성이 가짜 펑솨이라고 말하지 않는 게 놀랍다”고 쏘아붙였다.

성폭력 고발에 대한 검열을 정치적 이념과 반중 정서에 관한 이야기로 돌려버리는 후시진의 화법은 매우 익숙해 보인다.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논란거리는 묵살하고 이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날을 세우는 중국의 모습과 겹치기 때문이다. 중국에 맞서는 이들을 모욕하며 도발하는 ‘늑대전사’들이 등장한 것은 최근이지만, 후시진은 10여년 전부터 그 일을 해왔다. 늑대전사들의 시초이자 영감의 원천인 셈이다.

그는 영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며 “매를 버는 계집애”처럼 취급할 것이라 경고했다.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호주를 “중국이란 신발 바닥에 붙은 껌”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 때인 2017년 9월에는 한국을 향해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고 막말을 쏟아냈다.

극단적 애국주의 발언으로 유명한 그는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다수 중국인들은 만리방화벽으로 해외 사이트 이용이 제한된 데 반해 그는 트위터에서 45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리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초기부터 추구해 온 ‘프로파간다’ 전략을 그대로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업적은 칭찬하면서 당국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드러내기 어려운 외교 사안에 대해선 상대국을 마음껏 비난하기 시작했다.

후시진이 중국 공산당의 ‘나팔수’를 일찍이 자처한 데는 서양 언론에 대한 그의 질투심과 열등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해석했다.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도 참가했던 그는 시위가 진압된 후 관영매체인 인민일보에 입사했고, 1993년엔 환구시보라는 주간지를 창간하며 수익 창출에 나섰다. 후시진은 자서전에서 보스니아 전쟁 취재를 위해 해외로 파견됐다가 “중국 기자는 왜 각광을 못 받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국제부에서 일하면서 국제 뉴스를 중국과 엮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1999년 5월7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폭탄이 세르비아에 있는 중국대사관을 강타하면서 중국 기자 세 명이 사망했다. 미국 측은 사고라고 말했지만 중국인들은 고의적인 공격이라 여겼다. 환구시보는 해당 사건을 테러로 규정짓는 기사를 내면서 독자들의 반미 정서를 북돋웠다. 환구시보의 인기는 고공행진했다. 국수주의가 곧 돈이 된다는 후시진의 논리가 현실에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환구시보는 중국 인기 소셜미디어 위챗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언론이고, 후시진은 그 언론에 영혼을 불어넣는 장본인이다.

홍콩 성도일보는 조만간 60세를 넘긴 후시진이 은퇴하고 인민일보 논설부 부주임인 판정웨이(范正偉)가 사장직을 신설해 부임할 것이라고 15일 보도했다. 은퇴설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그가 중국인들의 호전적인 민족주의를 키워온 늑대전사 언론인의 전형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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