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차를 넘어 마음을 흔드는 너…완성차들 감성 마케팅 봇물

고영득 기자
포르쉐코리아가 최근 공개한 로드무비 <잠적> 문소리 편. 포르쉐의 전기차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타고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담았다. 포르쉐코리아 제공

포르쉐코리아가 최근 공개한 로드무비 <잠적> 문소리 편. 포르쉐의 전기차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타고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담았다. 포르쉐코리아 제공

스타들의 ‘나 홀로 여행’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작
힐링 통한 브랜드 경험 전하는 포르쉐의 ‘잠적

귀여운 로봇 강아지 등장하는 ‘EV6’ 광고로
NFL ‘슈퍼볼’ 자동차 CF 선호도 1위 오른 기아

차 디자인에 예술 접목한 BMW·현대차 등
“성능·연비·서비스로 차 못 판다

친환경·정숙성 전기차에
사운드 감성 경쟁도

최근 치러진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은 역시나 ‘슈퍼 광고전’이었다. 30초 광고비가 650만달러(약 78억원)로 역대 최대치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올해 슈퍼볼 광고에 전기차를 띄웠다. 로봇 강아지가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고(기아), 영화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번개의 신’ 제우스로 등장하는(BMW) 등 저마다 재미와 감동을 녹여내며 차별화를 꾀했다.

60초 분량의 기아 EV6 광고는 경기 3쿼터 종료 후 전파를 탔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가 진행한 슈퍼볼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기아 광고는 자동차 브랜드 중 1위, 전체(70개) 브랜드에선 4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슈퍼볼 광고에 동물과 사람의 교감을 다룬 내용이 많았지만 이번 기아 광고는 로봇 강아지가 주인공이란 점이 독특했다. 현대차그룹 계열 광고회사 이노션의 김나연 인사이트그룹장은 “방전된 로봇 강아지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입양하는 모습은 가까운 미래에 등장하게 될 라이프스타일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환경’으로 브랜드 알린다

완성차 업체들의 ‘감성 마케팅’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 기능만을 강조하기보다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 ‘충성 고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업체별 기술력 차이가 줄어들고 브랜드 간 차별성이 약화된 데 따른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전기차 시대에 접어들면서 감성 마케팅은 더욱 또렷해졌다.

포르쉐코리아는 얼마 전 로드무비 <잠적> 최신작을 디스커버리 채널과 SKY 채널 등에서 공개했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잠적>은 포르쉐 차량을 타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배우 김다미, 김희애, 한지민, 조진웅 등이 출연했다.

이번엔 문소리가 핸들을 잡았다. <잠적>에서 문소리는 포르쉐 최초의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자 두 번째 순수 전기차인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몰고 강원도로 향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그는 아담한 시골 책방에 들러 독서를 하고 계곡, 강, 숲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여유를 만끽했다. 포르쉐 차량은 온·오프로드에서 존재감을 알렸다.

홀가 게어만 포르쉐코리아 대표는 “<잠적>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선물하며 포르쉐만의 브랜드 경험을 전한다”면서 “앞으로도 국내 포르쉐 팬들과 브랜드 키워드인 ‘꿈’을 새롭고 흥미로운 스토리로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면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힐링 마케팅’은 이젠 차량 성능만 강조해선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없음을 말해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주행 성능과 연비, 서비스만으로 차량 구매를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소비자들은 자신의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차종을 불문하고 요즘 TV에 나오는 신차들의 광고들은 감성적이다. 아이가 뒷좌석에서 편하게 잠자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면서 차량의 정숙성을 강조하는 건 기본이다. 반려동물과 행복해하는 모습, 여가 트렌드가 된 캠핑 장면도 빼놓지 않는다. 특히 전기차를 광고하는 업체들은 ‘환경’을 앞세워 ‘가치소비’로 이끈다. 볼보는 지난해 차량 안전 테스트 직전에 빙하가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비추며 “이것이 전기차 회사로 전환하는 이유”라고 설명하는 광고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차량 사양 등을 직접 확인하기 때문에 광고에서 경쟁우위 요소를 부각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충전 등의 이슈로 불안해하는 소비자들에게 ‘환경친화적인 선택’이라는 대의명분을 줌으로써 구매를 자극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기아가 슈퍼볼 광고에 선보인 EV6와 로봇 강아지. 기아 제공

기아가 슈퍼볼 광고에 선보인 EV6와 로봇 강아지. 기아 제공

할리우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고대 그리스 신들의 왕 ‘제우스’로 분장한 BMW의 슈퍼볼 광고. 유튜브 영상 캡처

할리우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고대 그리스 신들의 왕 ‘제우스’로 분장한 BMW의 슈퍼볼 광고. 유튜브 영상 캡처

■신기술 홍보도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예술’과 접목하는 시도 역시 주목받고 있다. BMW코리아의 딜러사인 코오롱모터스는 전기차 BMW iX를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한 아트 컬래버레이션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MZ세대를 대표하는 조형예술 작가와 협업해 BMW iX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나타내는 105점의 작품을 iX 실물 차량과 함께 전시했다. 작품 제작 과정과 아티스트 인터뷰를 영상으로도 볼 수 있게 했다.

현대차의 ‘현대 모터스튜디오’는 단순히 차량을 판매하는 전시장을 넘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차의 브랜드 정체성을 녹여낸 예술 작품과 체험 콘텐츠 등을 마련해놓는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은 양산 차량을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에 1975년 출시한 포니를 재해석하고, 아이오닉 5 등 미래 전기차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품들로 관람객들을 맞는다.

기아의 슈퍼볼 광고에 등장한 로봇 강아지는 차량에서 외부로 전력을 공급하는 V2L(Vehicle to Load) 기능으로 배터리를 채우며 새 주인과 여정을 함께했다. 이처럼 감성 마케팅은 차량의 신기술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데도 효과적이다. 슈퍼볼 당일에만 기아 홈페이지에 48만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감정 인식 기술을 탑재한 모빌리티가 어린이 환자를 돕는 이야기를 그린 현대차그룹의 ‘리틀빅 이모션’ 캠페인 영상. 현대차그룹 제공

감정 인식 기술을 탑재한 모빌리티가 어린이 환자를 돕는 이야기를 그린 현대차그룹의 ‘리틀빅 이모션’ 캠페인 영상. 현대차그룹 제공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선보인 캠페인 ‘리틀빅 이모션(Little Big e-Motion)’도 반향이 컸다. 어린이용 모빌리티를 소개하는 영상으로, 리틀빅 이모션이 시험 운용되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어린이병원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리틀빅 이모션에 탑재된 감정 인식 기술은 아이의 표정과 심박수 등을 측정해 비눗방울이나 사탕향을 분사하면서 치료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애니메이션과 음악도 틀어준다. 또 자체 측정한 환자의 신체 상태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한다. 리틀빅 이모션 캠페인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신기술의 사회적 활용 가치를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디자인 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최우수상을 받았다.

■놓칠 수 없는 사운드 감성

스포츠카는 ‘가슴’으로 탄다고 많이 얘기한다. 우선 디자인에 반하고, 강력한 스피드에 만족한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감성적 요소는 바로 ‘사운드’다. 여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웅장한 배기음을 내뿜고는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현대모비스 연구원이 전기차의 가상 엔진음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 연구원이 전기차의 가상 엔진음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전기차를 타본 사람은 뛰어난 정숙성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고 한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행 사운드가 주는 즐거움을 원하지만 ‘모범생’ 같은 전기차가 어색할 뿐이다.

환경규제 때문에 내연기관을 버릴 채비를 하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도 이 점을 신경쓰고 있다. 차량을 전동화해도 기존 스포츠카 못잖은 사운드를 구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이미 출시된 전기차만 보더라도 차량 안에서 가상 사운드로 각양각색의 주행감을 접할 수 있게 해놨다. 귀에 익숙한 엔진음, 우주선이 비행하는 듯한 소리 등 다양한 테마의 가상음을 낸다. 고성능 모델이라면 엔진 요동의 짜릿함이 느껴지도록 하고, 럭셔리 세단이라면 우아한 소리를 연출한다.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볼륨과 음색이 변하도록 설정하고, 원하는 가상 엔진음을 따로 구매할 수도 있다.

가상음도 개성 표현 수단이 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사운드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음이 거의 없는 전기차를 타고 보행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기술도 나왔다.

현대모비스는 2020년 세계 최초로 전기차 전면 그릴 커버를 활용한 외부 음향 발생기를 개발했다. 가상 엔진음 소리가 그릴을 통해 외부로 전달되면 보행자들은 차가 오는 걸 알아채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캠핑장에서 음악을 재생시키는 스피커로 쓸 수도 있다. 이 기술은 아직 양산차에 적용되지 않았으나,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를 생산하는 업체들의 문의가 많다고 현대모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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