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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매주 상경해 복직 요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옥경씨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옥상의 휴게 공간에서 휴대폰을 보며 쉬고 있다. 17개월째 싸우고 있는 김씨에게 꿀잠은 “위로가 되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곳이다. 꿀잠은  신길동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강윤중 기자

제주에서 매주 상경해 복직 요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옥경씨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옥상의 휴게 공간에서 휴대폰을 보며 쉬고 있다. 17개월째 싸우고 있는 김씨에게 꿀잠은 “위로가 되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곳이다. 꿀잠은 신길동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강윤중 기자

“직장의 횡포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섰다가 ‘꿀잠’을 만나 큰 힘을 얻었습니다.”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는 해고노동자 김옥경씨(에이플러스에셋)가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 짐을 풀었다. 제주에서 매주 상경해 1박2일 홀로 시위를 하는 김씨에게 이곳은 “위로가 되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안식처다. 그는 17개월째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꿀잠 계단에 걸린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가 그려진 작품 <동행> 액자에 숙소로 들어서는 해고노동자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는 꿀잠 건립에 앞장섰다.  강윤중 기자

꿀잠 계단에 걸린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가 그려진 작품 <동행> 액자에 숙소로 들어서는 해고노동자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는 꿀잠 건립에 앞장섰다.  강윤중 기자

‘우리밥연대’ 활동가 김주휘씨는 이날 경남 통영에서 올라와 숙박을 했다. 바리바리 싸온 식재료로 꿀잠을 찾는 이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 2014년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밥을 해주며 자연스레 결성된 우리밥연대는 이후 비정규직과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현장을 찾아 밥으로 응원해왔다. 김씨는 “밥연대를 준비하는 근거지이자 친정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꿀잠”이라고 말했다.

해고노동자로 장기투쟁을 경험했던 김경봉(콜트콜텍)·박행란(기륭전자) 꿀잠 상근활동가들이 65일간의 파업을 끝낸 택배노조원들이 묵던 숙소를 정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해고노동자로 장기투쟁을 경험했던 김경봉(콜트콜텍)·박행란(기륭전자) 꿀잠 상근활동가들이 65일간의 파업을 끝낸 택배노조원들이 묵던 숙소를 정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꿀잠은 비정규직·해고노동자 뿐 아니라 산재사망피해자 가족들, 노동·인권·환경 등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는 활동가들에게도 열린 곳이다. 상처받은 이들의 든든한 ‘진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부터 신길 2구역 재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다. 공공재 성격을 가진 꿀잠의 상징성을 반영해 정비계획을 세워줄 것을 구청과 조합 측에 요청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난 3일에는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꿀잠 창 너머 재개발이 추진 중인 신길동 뒤로 여의도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강윤중 기자

꿀잠 창 너머 재개발이 추진 중인 신길동 뒤로 여의도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강윤중 기자

꿀잠의 ‘존치’를 요구하는 1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이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을 결성했다. 이들은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지난 14일 우정원씨(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공동대표)는 영등포구청 앞에서 “꿀잠을 지켜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땀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공간인데 없어지게 놔둬서는 안 되잖아요. 지켜야죠.”

우정원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공동대표가 영등포구청 앞에서 꿀잠 존치를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우정원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공동대표가 영등포구청 앞에서 꿀잠 존치를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꿀잠을 찾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복직을 위해 7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셔츠를 포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꿀잠을 찾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복직을 위해 7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셔츠를 포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2015년 차별과 해고에 오랜시간 저항했던 노동자들이 쉼터를 처음 제안했다.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가 붓글씨와 서각을 팔아 마련한 거액의 기금과 각계각층 3000여 명의 후원을 보태 신길동 골목의 4층짜리 낡은 다세대주택을 매입했다. 2017년 노동자와 예술가, 종교인 등 연인원 1000여 명이 철거와 리모델링에 직접 참여해 땀을 흘렸고, 그해 8월 꿀잠은 문을 열었다. 기본사업인 숙식뿐 아니라 농성장에 도시락과 간식을 나누는 꿀밥나눔, 치과·한방진료 지원, 노동역사기행, 법률 강좌, 강연, 전시 등의 사업을 5년째 펼쳐오고 있다. 감염병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2020년과 2021년에도 숙박 및 시설이용 인원이 4000명대의 수준을 유지했다.

꿀잠 입구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벽이 서 있다.  강윤중 기자

꿀잠 입구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벽이 서 있다.  강윤중 기자

꿀잠의 살림을 맡고 있는 김소연 운영위원장은 “서럽고 힘든 싸움 속에서도 ‘나는 존중받는 귀한 사람이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고, 연대하면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게 이 집의 의미”라고 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 서울에서 이 정도의 사업을 할 곳이 없다. 지방에서 오는 분들을 위한 교통편의와 시내 접근성 등을 고려하면 여기가 마지노선이고, 여기서 쫓겨난다면 사업을 그대로 할 수가 없다”고 절박함을 덧붙였다.

여성 청소노동자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조형물이 걸린 꿀잠. “가장 낮은 곳의 사람이 가장 높이 솟아올라 차별과 억압의 질서를 무너뜨리며 평등을 꿈꾸는 곳”이라는 의미다.  강윤중 기자

여성 청소노동자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조형물이 걸린 꿀잠. “가장 낮은 곳의 사람이 가장 높이 솟아올라 차별과 억압의 질서를 무너뜨리며 평등을 꿈꾸는 곳”이라는 의미다.  강윤중 기자

식당 벽에는 꿀잠에 머문 이들이 쓴 손글씨가 붙어있었다. “해고자로 싸우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존중해 줘 고맙고, 힘이 됐다” “내게 숨구멍이 돼주었다” 환대에 대한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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