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이 낯선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됐을 때···외국인 호신술 교육

글·사진|김보미 기자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에서 지난 22일 용산경찰서 임영빈 경사(왼쪽)와 이소현 경장이 길에서 치한을 만났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에서 지난 22일 용산경찰서 임영빈 경사(왼쪽)와 이소현 경장이 길에서 치한을 만났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When the shoulder grabbed while using a cell phone, hold the wrist and bend down low. Bend the opposite leg from the shoulder while holding tight.”(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잡으면 그 손목을 잡고 허리를 숙여 아래로 제압하세요. 잡힌 어깨의 반대쪽 다리를 구부리면서 손을 꽉 잡고 바닥으로 내립니다.)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센터)에서 용산경찰서 임영빈 경사가 이소현 경장과 함께 길에서 치한을 만났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뒤에서 누가 안았을 때 상대의 발을 밟아 제압하고, 팔을 잡히면 손목을 돌려 빼낸 후 상대의 목을 가격해 공격하는 등 총 5가지 방식을 소개했다. 치한을 제압하는 방식을 직접 보여주는 두 사람을 센터의 허윤재 주무관은 카메라로 찍었다.

용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비대면 자기방어 교육으로, 센터는 용산서 여성청소년계와 외사계의 도움을 받아 동영상으로 제작해 센터 유튜브 계정에 올렸다. 한국 문화와 법률이 낯선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됐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허 주무관은 “범죄 예방 세미나를 2015년부터 열었는데 외국인들은 자국과 다른 법률과 규범을 가장 혼란스러워한다”며 “특히 여성들은 성희롱·성폭력 기준과 처벌 가능성, 직장 내 부당한 대우, 가정폭력과 관련해 묻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에서 지난 22일 용산경찰서 임영빈 경사(왼쪽)와 이소현 경장이 길에서 치한을 만났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에서 지난 22일 용산경찰서 임영빈 경사(왼쪽)와 이소현 경장이 길에서 치한을 만났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국적이 달라도 한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고민과 걱정은 비슷하다. 센터를 찾은 여성들은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남성이 헤어진 뒤에도 계속 집에 찾아오거나 지하철에서 남성이 특정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성희롱한 경험 등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떻게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으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지 방법 등을 문의했다.

센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강좌나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듣고, 생활 상담도 하면서 국내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2008년 문을 열었다. 최근 센터를 찾는 외국인들의 출신은 다양해졌고, 연령층은 낮아졌다. K팝 등 문화를 통해 친근해진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각국에서 찾아온 젊은 여성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캐서린 안 코르테자 센터장은 “워킹홀리데이 입국자와 관광 목적으로 들어와 어학당을 등록하는 외국인이 늘었다. 국적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경찰청 조수인 경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여성긴급전화(1366)를 소개하고 있다.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는 용산경찰서의 협조를 받아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 유형과 비해 대처법 등을 담은 영상을 제공받아 공유하고 있다.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경찰청 조수인 경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여성긴급전화(1366)를 소개하고 있다.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는 용산경찰서의 협조를 받아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 유형과 비해 대처법 등을 담은 영상을 제공받아 공유하고 있다.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앞서 취업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이 주를 이뤘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입국 전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혀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경우도 많다. 한국인과 어울려 일상을 보내는 외국인 비율이 예전보다 많아지면서 물리적 성폭력이나 디지털 성범죄 등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도 높아졌다.

센터가 올해 자기방어뿐 아니라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 유형과 피해 대처법, 신고 절차와 피해 지원기관 등을 영어로 소개하는 영상을 용산서에서 제공받아 공유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이 영상에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경우 가명으로 조사를 받을 수 있고 24시간 보호나 심리 상담, 임시 숙소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동성 경찰관에게 조사받을 수 있고, 경찰서는 신뢰할 수 있는 지인과 동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 등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필요한 제도 설명을 자세히 다뤘다.

경찰청이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외국인 대상 성폭렴 범죄는 코로나19 이전 연간 900건 넘게 발생했다. 팬데믹으로 외국인 출입국이 대폭 제한됐지만 2020년 747건으로 감소하는 데 그쳤다. 2021년에도 726건(잠정치) 발생했다. 이 중 강간과 강제추행(554건)이 가장 빈번하고, 카메라 등으로 불법 촬영(123건)하거나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 행위(42건)도 일어났다.

허 주무관은 “지난해 성범죄 관련 비대면 세미나에 50명이 넘는 외국인이 참석했다”면서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면 개인정보나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센터를 찾기도 한다. 이런 경우 용산서에 자문을 구하거나 협조를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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