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한국 청년들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가장 외로운 선택’

김종목 기자

가장 외로운 선택
김현수 외 | 북하우스 | 280쪽 | 1만6000원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청년 자살,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이 부제에 답하긴 힘들다. 주지영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 글을 보면, 청년들은 가정사에서 비롯한 고통과 성장 과정, 자신의 무능력과 부족함 등을 토로한다. 문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그는 “(상담을 청한 청년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받고, 아프고, 힘들고, 실패했던 것이 자기 탓이라며 자신들의 맨살을 내보이는 노출 같은 고백을 이어갔다”고 말한다.

자살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할 문제인가. 에밀 뒤르켐은 1898년 낸 <자살론>에서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했다. 저자들도 한국의 사회적·정치적인 구조 문제를 지적한다.

통계 수치에 드러난 현실은 암울하다. 코로나19 이후인 2020년 한국의 자살 사망은 감소했다. 연령과 성을 구분하면 달라진다. 남녀 10~20대, 30~34세에서 자살 사망이 증가했다. ‘2020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20대 사망자 2706명 중 고의적 자해(자살) 사망은 1471명이다. 20대 사망자 2명 중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9년 1306명에서 12.6% 증가했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6년 6만4497명에서 2020년 14만6977명으로 급증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20~30대의 위기전화 상담 건수는 전체 상담 건수의 45%인데,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22% 증가한 수치다. 20대의 현금서비스 이용률과 연체율은 늘었다. 실업률 증가와 고용률 감소 여파다. 코로나19 등으로 ‘알바’ 수입원조차 사라진 도시 20대 청년 빈곤층이 직격탄을 맞았다.

청년들은 왜 삶을 포기하는가.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다. “‘기성세대의 병적 나르시시즘, 제도와 정책의 청년에 대한 몰이해’가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천”(김현수 명지병원 교수)이다.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부모나 친구조차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공감해주지 않는 ‘스몰 트라우마’의 누적이 삶에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빅 트라우마’로 이어진다. 삶의 앵커링(믿을 구석)이 상실된다. 주거·금융 위기가 심리적 위축, 은둔 같은 관계의 위기, 사회적 자본의 위기를 불러온다.

[책과 삶]“한국 청년들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가장 외로운 선택’

코로나 이후 자살 건수 감소했지만
10~30대 남녀 비율은 되려 드러나

학업·주거·금융위기 복합적 영향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 바뀌어야”

인석씨(가명) 사례가 한국 청년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독서실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공시생’이었다. 코로나19 초기 아르바이트에서 잘렸다. 조급한 마음에 현금서비스를 받아 주식 투자를 했다가 빚이 쌓였다. 자신이 어느새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며 불성실한 사람이 되어버린 현실에 극단적 선택밖에 없는 것 같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에게 이 이상한 세상은, 착실히 노력하고 기회를 찾아 도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세상이기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의미 있는 세상이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는 한강 어느 다리에서 투신 전 발견됐다.

책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건 20~30대 여성의 자살 증가다. 전체 남성의 자살률은 줄었지만 여성은 늘었다. 서울시 자살예방상담센터에 전화를 자주 하는 두 집단은 20대 여성과 50대 남성이다. 20대 여성이 정신적 어려움을 더 많이 호소한다고 한다. 2020년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 5명 중 1명이 20대 여성이다. 2019년에 비하면 33.5% 늘어난 수치다.

장숙랑(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은 어머니 세대인 1951년생의 자살사망률과 1981년생의 자살사망률을 비교하니 1981년생의 자살사망률이 5배나 높았다고 한다. 장숙랑은 “(자살하게끔 만드는) 삶의 조건들이 5~7배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그 나이엔 다 그렇지’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악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 사이에 정서적 교류를 맺는 일이 어려워졌다. 노동·주거·사회적 관계가 무너졌다. 하루벌이조차 쉽지 않다. 남녀 청년들이 함께 겪는 문제인데, 여성 청년들은 가부장적 성별 분업과 성차별 등으로 더 고통받는다. 코로나19에서 ‘비정규 서비스’ 직종이라 더 먼저 직장을 떠나야 했다. 집안일도 가중됐다. 외모 평가 같은 성적 대상화의 혐오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 박경호 연구팀의 ‘종단연구를 통해 본 초기 성인기 생활과 성과에 대한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추적한 6000여명에 대한 연구 결과 한국의 20~27세 여성은 남성보다 자아와 삶에 대해 부정적이다. 여성 문제 앞에서 한국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는 목소리는 여성 혐오와 여성가족부 폐지, 출생율 제고 같은 것들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청년 고통엔 계급과 불평등, 지역 소외 문제가 깔려 있다. 우울감은 전체 평균이 6.09인데, 도시 청년은 5.03, 농어촌 거주 청년은 8.43으로 차이가 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전체 청년의 2.74%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다고 했는데, 여성은 3.49%, 고졸 이하는 4.26%, 농어촌 거주자는 6.4%로 그 비율이 높았다. 조손 가구나 다른 친척과 거주하는 청년의 자살 생각이 6.52%로 가장 높았다. 입시 정책은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하는 30% 학생 위주다. 지방대 학생, 비진학 청년들을 지워버린다. 독거·비정규직·여성들도 청년 정책에서 소외된다. “구조적 힘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태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청년들에게 자기계발을 강요한다. “20대는 약해 빠졌어”라는 조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잘해” “이겨내”란 격려의 말에도 “죽을 힘을 다해” “젖 먹던 힘을 짜내”라는 말이 붙곤 한다. 김현수는 “‘자기계발’이라는 형태의 자기 착취, 제 살 파먹기가 끝나면 세상과 이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고 말한다.

6명의 전문가가 글을 썼다. 정책·정치 부재의 상황에서 여러 대안도 제시한다. ‘20~30대 청년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자포자기와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회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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