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불쑥 들어오는 무례한 침입자들 탓에 결국 담장을 세웁니다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해 질 녘 인부들이 거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인부들은 일당이 아니라 항목당 돈을 받기 때문에 자기들이 내키면 밤 10시까지도 일을 한다. 온 집 안이 공사판인 데다 사람 부리는 데 익숙지 않은 나는 인부들이 일할 동안 편히 쉴 수가 없다. 어차피 담장이 없어서 소용없는 일이지만 낮에는 괜히 마당에 나가서 풀을 뽑는다. 그러다 지치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피신한다. 그러기를 한 달 반째니 요즘 나는 피곤에 절어 있다. 그래 그날은 해 질 녘에 잠시 방문을 닫고 누웠다. 그런데 거실에서 영어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올 손님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백인 남성 둘이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직 꾸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집 출입구. 상태가 이러하니 무턱대고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착각도 이해는 가지만 공사 중인 건물이라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건 만국 공통 상식이다.

아직 꾸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집 출입구. 상태가 이러하니 무턱대고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착각도 이해는 가지만 공사 중인 건물이라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건 만국 공통 상식이다.

“당신들 누구요? 여기서 뭐 하는 거요?”

내 딴에 최대한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 집에 입주하고 매주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 무례한 관광객들은 결코 현관문을 두드리는 법이 없다. 폭 30㎝ 남짓한 건물 옆 자투리 공간을 타고 덱에 불쑥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침입자들은 더 질이 나쁜 게, 로컬 인부들이 있는데도 인사를 하거나 허락을 구할 생각도 없이 제집처럼 돌아다닌 것이다. 그 로컬들이 집주인이거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일 거란 상상은 전혀 못한 듯했다. 여기선 뜨거운 태양과 빈땅 맥주에 뇌가 절어서 제 나라에선 못할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관광객이 많다.

내 집을 침범한 낯선 사람에게 내가 묻는데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다.

한 달 반째 늦은밤까지 인부들이 일하고있지만 여전히 온집안이 공사판
해 질 녘 방문 닫고 누웠는데 뜬금없이 들려온 관광객들의 대화 소리
“당장 나가라”는 내게 온 반응은 동양인 여성을 대하는 뻔뻔함 그 자체
철망 헐값에 구하고 건축 엔지니어 친구에 부탁했다 “돈 모아 의뢰할게”

“Pardon(뭐라고요)?”

그들은 일단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했다. 내게는 낯설지 않은 반응이다. 백인 남성들은 동양인 여성이 자신에게 뭔가를 지적하거나 불친절하게 굴면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동양인 여성은 가르치거나 도와줘야 할 대상이지 그 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자기가 들은 말이 사실일 리 없다고, 아마도 상대방의 영어나 상황 판단이 잘못되었을 거라고 의심부터 하고 본다. 나는 다시 말했다.

“당신들 누구냐? 여기서 뭐 하냐?”

“우리는 관광객인데 지나가다 집이 예뻐서 들렀다.”

“여기는 사유지다.”

보통 침입자들은 이쯤에서 사과하고 꽁무니를 뺀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묻는다.

“뭐라고?”

“여기는 내 집이다. 사유지라고. 너희는 초대받지 않았다. 당장 떠나라.”

그들이 답했다.

“집이 무척 아름답다. 공사가 끝나면 당신은 최고의 전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내부 목공을 끝내고 시작한 덱 공사. 다음은 수영장을 마무리할 차례인데 건축업체가 어떤 난관을 심어두었을지 두렵다.

내부 목공을 끝내고 시작한 덱 공사. 다음은 수영장을 마무리할 차례인데 건축업체가 어떤 난관을 심어두었을지 두렵다.

사람이 사는 줄 몰랐다는 점을 강조해 체면치레를 하려는 수작이다. 하지만 끝까지 나의 소유물을 평가하는 시혜적 위치를 고수하려는 침입자에게 내가 드는 감정은 불쾌함뿐이었다. 나는 그라인더와 장도리를 든 내 인부들이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알겠으니 당장 나가라.”

그들이 떠난 후 인부들과 나는 눈을 맞추고 실소했다. 목공반장인 아구스는 “우리한테는 말도 안 하고 막 걸어들어오더라고”라며 어이없어했다. 퇴근 후 이 소식을 들은 애인은 노발대발하며 아구스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연장을 써. 전기톱으로 목을 썰어버리라고!”

나는 그냥 그들이 텍사스를 여행하다가 외딴 농장에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기를 빌 뿐이다. 아주 볼만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담장 공사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총 세 팀에 견적을 받았다. 첫째는 물탱크 탑을 설치해준 동네 유지다. 그는 벽돌로 담장을 두르는 데 150만원을 불렀다. 무척 저렴하지만 그는 물탱크 탑을 만들 때도 일단 싸게 불러 놓고 재료비가 빠졌다 뭐가 빠졌다 하면서 나중에 비용을 부풀렸다. 뭐든 선선히 장담하지만 막상 작업할 때가 되면 귀찮다고 차일피일 미루고, 절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한 번 엉덩이를 움직이게 하려면 최소한 열다섯 번은 채근해야 한다.

둘째는 이번 전기, 목공 공사를 감독하고 있는 플로렌스 출신의 젊은 인부 리발이다. 그는 담장 아래 콘크리트 토대를 만들고 벽돌 담을 쌓아야 한다며 2000만원을 불렀다. 너무 비싸다.

세 번째로 담장을 상담한 사람은 이탈리아 친구 마티아인데, 그는 원래 건축 엔지니어로 동남아 곳곳에서 일했고, 누사프니다에 본인의 집도 지었다. 내게 집 지을 영감을 준 친구들의 나무집 두 채도 그가 지은 것이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2층 목조주택이 한 채당 3500만원으로 넉 달 만에 지은 것이라기에 나도 그 정도를 예상하고 집 짓기를 시작했으나 엉뚱한 건축업자를 선택하는 바람에 일이 산으로 가버린 것이다. 하여간 마티아는 콘크리트 토대를 만들되 위쪽은 벽돌 대신 L자 앵글과 그물망을 연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나중에 그물망을 따라 덩굴식물을 심으면 멋질 것 같았다. 이 방식은 약 270만원. 마티아와 작업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긴 한데 통장 잔액이 도와주지 않는다.

담장 견적을 두고 고민할 때 남아공 친구 데이빗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4년째 리조트 공사 중인데 부식 방지 처리가 된 고급 철망으로 담장을 했다가 방음 문제로 철거하고 콘크리트 벽을 세우기로 했다. 내 집은 조용한 지역이고 숙박객을 받을 것도 아니라서 방음이 필요 없다.

“마티아가 그물망 재료비로 얼마를 제시하건 그것보다 싸게 철망을 줄게. 공사업체나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겠지만 몇 번 그랬더니 여기서 남는 자재는 다 자기들 것인 줄 알더라고. 공사업체는 재료를 남아돌게 사고 동네 사람들은 함부로 공사장에 들어와서 물건을 집어가고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요구도 많아. 저렴하게라도 돈을 받고 넘기면 나도 좋고 너희도 좋지.”

그렇게 헐값에 철망을 확보하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마티아에게 담장을 의뢰할 테니까 돈을 모을 때까지 몇 달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사이 집에는 큰 개선이 있었다. 실망한 부분도 있지만 짐이 정리되니 마음이 밝아져서 정신 승리가 수월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펌프를 교체하고 물탱크도 설치해서 이제 물이 끊길 일은 없다. 그건 큰 개선이다. 그런데 수압이 낮아졌다. 수압이 낮으니까 온수기도 제대로 돌지 않는다. 물탱크를 사고 타워를 짓고 설치를 하느라 들인 돈에 비해 결과가 신통찮아 실망이다. 그럴 땐 양동이에 물 받아 쓰던 입주 초를 떠올리면 진정이 된다.

건물 내부는 이번주에야 목재 수리와 가구 설치가 끝났다. 비뚤비뚤한 콘크리트 싱크대에 서랍을 제대로 부착하는 건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댐핑 레일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서랍들이 뻑뻑하다. 어쩌면 다행이다. 나이 먹으니 근육은 줄어드는데 운동은 귀찮던 참이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근력 운동을 해야 하는 집이라서 체육관은 안 다녀도 될 것 같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은 전기 깜빡임을 해결할 방법을 못 찾았다는 것이다. 조사할수록 문제점만 더 드러날 뿐이다. 플러그, 콘센트, 조명, 선풍기마다 전압이 다르고, 벽을 파서 찾아낸 접지는 엉망진창으로 처리가 되어 있고, 분명 벽으로 들어갔는데 어디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전선도 있다. 며칠 전 전기반장 리발이 다급하게 말을 꺼내다가 단어가 안 떠올라 멈칫한 적이 있다. 내가 단어 맞히기 게임을 하듯 손을 들고 말했다.

“마살라(문제)?”

리발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리발은 멋쩍어하고 그의 조수 타이슨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다시 손을 들었다.

“뿌싱(골치 아파)?”

리발이 두 번째로 자주 하는 말이다. 내가 인도네시아어를 잘 못 알아들으니까 그로선 최대한 단순하게 상황을 전하느라 그렇게 되었다. 여기는 ‘마살라’가 많아서 ‘뿌싱’한 집이다.

어떤 분야든, 남의 작업물을 수정하는 것보다 내가 새로 작업을 하는 게 훨씬 쉬울 때가 많다. 나 같은 잡지·출판 관계자들은 비전문가의 글을 수정하다 ‘차라리 내가 다시 쓰는 게 빠르겠다’는 푸념을 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가방 지퍼를 수선하러 세탁소에 갔다가 “지퍼 뜯고 다시 박는 게 새 가방 만드는 것보다 귀찮으니까 싸게는 못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아구스는 33㎡짜리 덱을 혼자서 닷새 만에 만드는 사람인데 건축업체가 오로지 몸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고용한 실력 없는 목수들의 작업물을 수정하는 일은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조수 두 명까지 부리고도 한 달 반이 걸렸다. 리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러니 일은 한 번 할 때 잘해야 한다. 정당한 값을 받고 일하는 훌륭한 숙련자가 저비용만을 내세우는 비숙련자에 비해 시간과 비용과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걸, 내 분야에선 늘 주장했지만 남의 분야에선 모른 척하고 살았다. 집 짓느라 목돈을 쏟아붓고 그거 하나는 확실히 배웠다. 아마추어의 다른 말은 이제 내게 ‘뿌싱’이다.



[다른 삶]불쑥불쑥 들어오는 무례한 침입자들 탓에 결국 담장을 세웁니다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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