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장벽의 도시
투명장벽의 도시

기획취재팀 | 김보미(전국사회부) 배문규·김한솔·김지혜(스포트라이트부)

이동·방문 노동자의 화장실 가는 길

가스 점검원·학습지 교사 인터뷰

동선 내 화장실 없으면 화장실 못 가

방문 가정에 화장실 사용 묻긴 눈치

[투명장벽의 도시③]화장실 갈 땐 따릉이 타고 맥도날드로…만성 방광염에 고통

김윤숙씨와 허보기씨는 도시가스 점검원이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허씨는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일을 한다. 오래된 주택이 밀집된 응암동, 주택과 아파트가 섞여있는 홍제동에서 이들이 갈 만한 화장실을 찾긴 쉽지 않다. 응암동에 사는 김씨는 화장실이 정 급하면 일을 하다 말고 집으로 돌아가고, 허씨는 홍제역 바로 옆 맥도날드로 간다. 두 사람은 ‘화장실 안 가도 되는 몸’을 만들기 위해 물을 안 마시는 방법을 택했다.

-화장실이 없어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김윤숙(이하 김) = 입사 초기 회사에서 하루에 50~60개 집씩 검침하라고 했거든요. 집에 항상 사람이 있는게 아니니 그러려면 200곳은 가야돼요. 그때 생리 중이었는데 생리대를 갈 화장실이 없는거예요. 생리혈 새는 게 느껴졌는데, 일은 해야 되잖아요. 다행히 통 넓은 까만 바지를 입고 있어 일을 계속 했어요. 고객한테도 ‘화장실 좀 쓰겠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집 화장실에 생리대를 놓고 나올 순 없으니까요. 용기를 못 냈어요. 안되겠다 싶어서, (이동하려고) 자전거에 앉았어요. 그때 자전거를 타고 다녔거든요. 자전거에 앉자마자 사방팔방으로 피가 흘렀어요. 엉덩이며, 다리 가랑이며 난리가 났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다시 근무지로 돌아가 일했어요. (이것은 김씨가 2000년대 후반쯤 겪은 일이지만, 그 후로도 김씨의 화장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여전히 화장실이 급하면 집으로 간다.)

허보기(이하 허) = 입사 초기에 정말 중간에 실례할 뻔했어요. 꼭대기(고지대에 있는 집)부터 검침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은거예요. ‘조금만 더’ 하면서 하다가, 어느 순간에 ‘지금 안 가면 여기서 싸겠다’ 싶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급해지니까 뱃속은 더 급해지고, 뛰면서 벨트 풀고 지퍼도 거의 내리다시피 한 채로 동사무소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문도 못 잠그고 바로 볼일 봤어요. 식은땀 엄청 흘렸어요.

가스 점검원 허보기씨가 자신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검침을 마친 뒤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허씨의 담당 가정은 대부분 언덕에 위치해 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선 언덕을 내려가 지하철역이나, 지하철역 옆 맥도날드까지 가야 한다. 최유진PD

가스 점검원 허보기씨가 자신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검침을 마친 뒤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허씨의 담당 가정은 대부분 언덕에 위치해 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선 언덕을 내려가 지하철역이나, 지하철역 옆 맥도날드까지 가야 한다. 최유진PD

-혹시 방문한 집의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사용할 순 없나요.

김 = 정말 급할 때는 점검 들어가면서 ‘혹시 이분에게 이야기해도 될까’ 생각해요. 그런데 남자분이 있거나 아이들만 있거나 하면 어려워요. 그래도 할머니들은 우리를 좀 측은하게 여기셔서, ‘괜찮아, 볼일 봐’ 라고 해요. 젊은 분들에겐 말 하기 힘들어요. 15년 동안 한 3~4번 말해봤어요.

허 = 저는 물어본 적은 없어요. 고객 중에 화장실 쓰라고 하는 집 있긴 있는데, 사용못하겠더라고요. (동료) 언니들이 처음엔 화장실을 빌렸는데, 고객이 뒷말하는 것 듣고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민원 넣는 경우도 있어요.

가스 점검원 김윤숙씨(오른쪽 담장 안)가 가스 점검을 하러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골목마다 주택이 있는 이 지역에서는 공중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김한솔 기자

가스 점검원 김윤숙씨(오른쪽 담장 안)가 가스 점검을 하러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골목마다 주택이 있는 이 지역에서는 공중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김한솔 기자

[투명장벽의 도시③]화장실 갈 땐 따릉이 타고 맥도날드로…만성 방광염에 고통

김윤숙씨가 그린 화장실 지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은 3600세대의 가스 검침,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김씨의 일터다. 김씨는 업무 중 ‘갈 수 있는 화장실을 표시해 달라’고 하자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없음”이라고 쓴 뒤 담당구역과는 떨어져 있는 ‘주민센터’, ‘우리집’, 새절역‘이라고 적었다.

-하루에 물은 몇 잔 마시나요.

김 = 종이컵 기준 세 잔이요. 일단 아침에 마시고 나오고, 돌다가 정 힘들면 고객님한테 ‘반 잔’ 달라고 그래요. 화장실 가야 되니까. 습관이 돼서 물 많이 안 마셔도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가끔 쓰러져요. 땀을 많이 흘리거든요. 입이 쩍쩍 말라붙고, 다니다보면 입에서 쇠 냄새 나요.

허 = 피부 좋아진대서 물 엄청 마셨죠. 수시로 마셨어요. 그런데 (화장실 못 가서) 크게 당할 뻔한 뒤로 ‘물 마시면 안되겠다’ 해서 안 마셔요. 집에서 물도 안 마시고 나오고, 물을 들고 다니지도 않아요.

검침기를 살펴보는 허보기씨. 주택가가 많은 지역에는 검침기가 사람 접근이 어려운 구석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최유진 PD

검침기를 살펴보는 허보기씨. 주택가가 많은 지역에는 검침기가 사람 접근이 어려운 구석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최유진 PD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요.

김 = 방광염이 있어요. 계속 따갑고, 쓰려요. 칼로 벤 것처럼 쓰라려서, 움직이면 아파요. 그리고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막상 가면 볼 일은 안 봐지고. 방광염 걸리면 진짜 고통이에요. 약은 먹지만 내성이 생겨서 그런지 (효과가 없어요).

허 = 변비가 생겼어요. 7월 말쯤인가, 고지서 돌리는데 더위 때문에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낮 1시쯤이었는데, 편의점에서 물 500㎖를 사 마셨어요. 그런데 갈증이 안가시는 거예요. 조금 가다가 다른 아파트 상가에서 물 500㎖를 사 마셨어요. 그래도 해소가 안 돼서 달달한 거, ‘2% 부족할 때’를 사 마셨어요. 1500㎖를 마신거예요.

이렇게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 혈액 내 나트륨 농도가 갑자기 너무 낮아지면 전해질 불균형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규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예전에 미국에서 ‘물 많이 마시기 대회’ 하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심한 운동 뒤에도 한 번에 700ml 이상은 마시지 말라고도 한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수분 섭취를 해야 되는데, 극심한 탈수 상태에 있다가 몸이 갈구하는 만큼 갑자기 물을 들이부으면 운이 나쁘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학습지 교사

[투명장벽의 도시③]화장실 갈 땐 따릉이 타고 맥도날드로…만성 방광염에 고통

학습지 교사의 일은 도시가스 점검원과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하다. 담당 구역이 정해지면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짜 쉴새없이 이동하며 일을 한다. 동선 안에 공공기관 화장실이 없으면, 화장실을 가기 어렵다. 직업이 ‘교사’인 데다 업무가 실내인 ‘집 안’에서 진행되는 만큼 화장실 이용에 불편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력 24년인 여민희씨, 26년인 정난숙씨에게 학습지 교사들의 화장실 가는 법을 물어봤다.

- 수업 받는 학생 집에서 화장실을 가면 안되나요.

여민희(이하 여) = 예전에는 회원 집에서 화장실을 썼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들어가면 무조건 손을 씻는데, 오히려 화장실은 못 써요. 꺼려하는 분들이 계세요. 이전에 한 회원이 ‘선생님이 화장실을 썼다’고 사무실로 컴플레인 전화를 건 적이 있어요. 저는 이 지역에서 일을 오래 해서 아마 화장실 가고싶다고 하면 어머님들이 다 가게 해주실거예요.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되더라고요.

정난숙(이하 정) = 다들 싫어한다 그럴까? 불편해 하세요. 부담스러워 하죠. 그러니 선생님들도 되도록이면 회원 집에서는 가지 않으려고 해요. 친한 학부모 집에서는 가기도 하는데, 그것도 매번 갈 수는 없어요. 눈치가 보이는 거죠. ‘오기만 하면 화장실 가나’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에 선생님 교체를 원하는 회원님이 ‘선생님이 자주 화장실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어느 선생님의 경우 다녀간 집에서 돈이 없어졌다고 난리난 적이 있었어요. 경찰서까지 다녀왔는데 결국 그 집에서 돈이 발견됐죠. 그러니까 우리가 (수업 하는 공간 외에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걸 꺼려하는 거예요.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에게 ‘평소 이동할 떄 걷는 속도대로 이동해 달라’고 하자 여민희씨가 거의 뛰듯이 걷고 있다. 수업과 수업 사이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항상 바쁜 걸음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최유진 PD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에게 ‘평소 이동할 떄 걷는 속도대로 이동해 달라’고 하자 여민희씨가 거의 뛰듯이 걷고 있다. 수업과 수업 사이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항상 바쁜 걸음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최유진 PD

- 하루에 물은 얼마나 드세요.

여 = 정오 전까지는 집에서 일부러 많이 마셔요. 한 1~1.5ℓ정도요. 그 이후로는 밥 먹을 때 한 잔 정도 마신 뒤 오후 10시까지 절대 안 마셔요. 정말 힘들 때 학부모님들이 주시는 음료를 마실 때도 있는데, 매일 그러진 않아요.

정 = 웬만큼 목 마르지 않으면 안 마셔요. 수분 섭취를 안해야 화장실을 안 가게 되거든요. 상가 카페 같은 데서 음료 사 마시면서 화장실 가는 건 진짜 급한 경우에요. 너무 목이 타거나, 너무 화장실이 심각하거나 할 때. 하루종일 500㎖ 정도 마실까 싶네요. 1ℓ는 마셔야 한다고 하던데.

-건강에 이상은 없나요.

정 = 방광염에 많이 걸려요. 2~3년 전쯤에 여름 내내 앓았던 기억이 있어요. 약 먹으면 괜찮아졌다가, 이렇게 화장실 못 가면 재발하죠. 방광염에 걸리면 오줌이 막 나오려고 해요. 수업하다 긴장했을 때, 깜짝 놀랄 때 나올 것 같아요. 학습지 교사들은 대부분 방광염을 앓고 있는 것 같아요. 화장실을 못 가니 생리대를 갈지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축축한 상태에서 수업을 하면 땀띠가 나요. 여름에 피부병 걸리는 분들이 많아요.

여 = 저는 7~8년 전쯤 방광염에서 조금 더 가서 급성 신우신염에 걸려서 병원에 열흘 이상 입원했던 적도 있어요. 방광염을 오래 앓고 심해지면 나타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배가 엄청 아프고, 열도 나고, 소변에서 피가 나오는 거예요. 열이 이틀 동안 안 내렸어요.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가 일 하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상가의 화장실. 상가 1층에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잠겨 있다. 최유진 PD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가 일 하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상가의 화장실. 상가 1층에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잠겨 있다. 최유진 PD

일하는 곳 근처에 상가 화장실이 있어도, 잠겨 있으면 이용하기 어렵다. 최유진 PD

일하는 곳 근처에 상가 화장실이 있어도, 잠겨 있으면 이용하기 어렵다. 최유진 PD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정 =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일 하냐고 해서 학습지 교사고 화장실을 잘 못가는 편이라고 했어요. 의사는 되도록 화장실에 가라고 하죠.

여 = 화장실을 참으면 안 되고, 치료하려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물을 많이 마실 수가 없어요. 물 마시면 화장실에 가야 되니까. 그러다 보니 병이 치료를 해도 잘 낫지 않네요.

-동료 분들 상황도 비슷할 것 같아요.

여 = 사무실에서 선생님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나같이 ‘우리가 방광염을 떼놓고 살 수 없지’ 라고 했어요. 학습지 노조가 실태조사를 한 적도 있는데, 가장 많은 질병이 방광염이랑 위염이었던 것 같아요.

정 = 방광염 안 걸린 분을 찾기 힘들어요. 저희가 저녁을 거의 거르고 수업을 하다보니 위장병도 많고, 무거운 것 들고 다니니까 근골격계 질병도 많아요.

화장실 찾아 전력질주? 직업별 화장실 이야기 | 투명장벽의 도시 ep2 | 경향신문 창간기획

이어지는 <투명장벽도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 배너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래 링크를 입력해주세요.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2/no_wall/


[투명장벽의 도시③]화장실 갈 땐 따릉이 타고 맥도날드로…만성 방광염에 고통

👉 [투명장벽의 도시] 관련기사 더보기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347

이런 기사 어떠세요?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