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줄게, 예약금 다오’…민간임대 ‘매매예약금’을 아세요?

류인하 기자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봉롯데캐슬 골든파크 예비입주자들이 지난 17일 도봉구청 앞 대로변에 세워둔 트럭 전광판 메시지를 통해 매매예약금 부과가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있다. 류인하 기자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봉롯데캐슬 골든파크 예비입주자들이 지난 17일 도봉구청 앞 대로변에 세워둔 트럭 전광판 메시지를 통해 매매예약금 부과가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있다. 류인하 기자

매매계약금이 뭐길래…

민간임대 거주 후 분양전환 때
우선 분양권 얻으려 거는 예약금
소유권 이전도 안 되는데 ‘관행’
보증금에 수억원 더 내고 입주

지난 19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 앞 대로변에 대형 전광판을 단 트럭이 멈춰섰다. 전광판에는 ‘건설사는 매매예약금 3억에 달하는 돈을 언제 누구에게 수차례 고지했는지 제대로 밝혀라!’ ‘신탁사는 지금 즉시 계약자들 재산권 침해 중단하고 사과하라!’라는 문구가 반복해서 나왔다. 전광판 시위를 벌이고 있는 단체는 도봉롯데캐슬 골든파크(골든파크) 입주예정자들이다.

2025년 7월 입주를 앞둔 주상복합아파트 골든파크의 매매예약금 부과를 둘러싸고 입주예정자와 시행사·건설사의 갈등이 법정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입주예정자 167명은 지난해 9월30일 시행사와 건설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계약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첫 기일은 3월17일이다.

도봉롯데캐슬 골든파크 입주자 모집 시점이었던 2021년 3월 청약시장은 말 그대로 ‘불장(Bull-Market·상승장)’이었다. 282가구를 모집한 골든파크의 경쟁률도 400 대 1을 넘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사람들이 건설사와 시행사를 상대로 법정다툼을 벌이는 이유는 ‘매매예약금’ 때문이다.

‘매매예약금’은 임대로 10년간 살다가 분양전환시점에 우선 분양권을 얻으려면 걸어야 하는 예약금을 말한다. 입주예정자들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에도, 모집자공고 시점에도 매매예약금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들은 적이 없다”며 매매예약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골든파크는 민간임대아파트다. 10년간 임대로 거주한 뒤 분양전환이 가능하다. 전 가구 84㎡ 동일평형으로 임대보증금은 8억5700만~8억9500만원이다. 임대기간 이후 분양시점에 분양가가 책정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아파트와 달리 임대차계약 시점에 이미 분양가가 확정된다. 10년 뒤에 집값이 크게 오르면 우선분양대상자들에게는 이득인 셈이다. 단 매매예약금을 납부해야 우선분양을 받을 수 있는데 골든파크의 2035년 확정분양가는 14억1500만~14억8100만원이다.

■ 매매예약금, 민간임대 시장 ‘관행’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별도의 비용 없이 공공임대 청약당첨자에게 분양우선권이 주어지지만 민간임대는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법적으로 임대의무기간은 지켜야 하지만, 의무기간 이후 반드시 임차인에게 우선분양권을 줄 필요는 없다.

건설사들은 ‘분양권을 줄 테니 대신에 예약금을 내라’는 취지로 매매예약금을 받고 있다. 건설사들은 임대차계약서 작성 시 관행적으로 매매예약금이 안내된 ‘우선양도확인서’를 제시한다.

문제는 예약금의 액수다. 매매예약금은 법정비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골든파크 시행사가 통보한 매매예약금은 평형별로 2억7300만~2억8714만원이다. 소유권 이전도 되지 않는 집을 약 11억8000만원(보증금+매매예약금)이나 주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수억원에 달하는 돈이지만 이에 대한 명시적 보호장치는 없다. 실제 민간임대에서 매매예약금은 건설사의 공사비용으로 들어가는 중도금 기능을 한다. 건물을 짓는 데 임차인의 돈이 들어가지만 일반분양처럼 입주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설령 매매예약금에 가등기를 걸더라도 선순위채권이 있으면 순위에서 밀려난다.

골든파크 입주예정자들은 시행사 누구도 임대차계약 체결 시점에 ‘매매예약금’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임차인모집공고, 임대차계약서, 우선양도확인서 어디에도 매매예약체결 및 매매예약금 납부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반면 건설사와 시행사는 “구두로 고지했다”고 맞서고 있다.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계약자들에게 설명을 했음에도 입주예정자들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행사 관계자는 “골든파크는 전매제한이 없어 분양사와 직접 임대차계약을 맺은 분들이 아닌 당첨자로부터 P(프리미엄)를 주고 샀던 분들이 ‘설명을 못 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서에는 물론 매매예약금이라는 단어가 없다.

다만 다수의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을 해온 건설관계자는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비용처럼 인식되고 있어 민간임대 청약자가 매매예약금을 몰랐다고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모집공고나 임대차계약서, 우선양도확인서 등에 문구로 명시를 하지 않았다면 시행사가 다툼에서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봉롯데캐슬 골든파크 ‘법정다툼’

입주예정자들 “설명 전혀 못 들어”
건설사·시행사는 “구두로 고지해”
우선양도확인서 등에 명시 안 해
업계 “시행사, 법정다툼 질 수도”

■ 집값 하락하는데 ‘굳이’

입주예정자와 건설사·시행사 간의 갈등이 단순히 ‘매매예약금’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 집값만 하락하지 않았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라고 말했다.

민간임대는 분양 시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않고, 10년간 무주택자로 거주하면서 청약통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2020~2021년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도봉구가 최근 집값이 너무 많이 하락했기 때문에 2035년 가격이라고는 하지만 분양확정금액 14억원은 입주자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면서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 금액이면 사들일 만하다 싶었지만 지금 주변 아파트 가격이 10억원대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입주예정자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골든파크 맞은편 방학삼성래미안1단지 전용면적 84㎡의 호가는 최근 10억~11억원까지 떨어졌다. 2단지 84㎡ 실거래가는 8억2000만원까지 하락했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2.96% 하락했으며, 도봉구는 6.40% 하락해 서울에서 낙폭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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