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는 모습 못봤으니 단정할 수 없다’고?···장강명 ‘창비, 신경숙 표절 옹호’ 재비판

김종목 기자

표절 논란 당시 창비 해명 지적

“선수 반칙에 구단이 나선 격”

작가 장강명씨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유유히)을 출간했다. 창비 자회사인 미디어창비에서 내려던 책이다. 미디어창비가 ‘신경숙 표절’ ‘창비 궤변’ 표현이 든 문장 삭제·수정을 장씨에게 요청하고, 창비 플랫폼 홍보 배제 방침을 정하자 장씨가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당시 담당 편집자 이지은씨가 이 문제로 퇴사한 뒤 1인 출판사 ‘유유히’를 차리고 장씨와 함께 만들어낸 책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다.

장씨는 이 책 2부 ‘소설가의 돈벌이’에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에 실은 ‘출간 계약을 해지하며’를 넣었다. “신경숙의 표절을 창비가 궤변으로 옹호하며 표절의 기준을 무너뜨리려 한 데 대해 한국작가회의는 끝내 아무 논평도 내지 않았다”를 그대로 실었다. 장씨는 미디어창비의 삭제 및 수정 요청 등에 관한 의견을 ‘덧붙임 2’로 정리했다. 신경숙씨 표절 문제에 관한 생각도 적었다.

장씨는 ‘덧붙임 2’에서 글 전문이 인터넷에 올랐고, 창비가 표절을 옹호한 사실을 전 국민이 알았으며, 창비도 당시 곤욕을 치렀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신경숙 작가의 표절 여부는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장강명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며 ⓑ창비는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저질렀다고 보지 않으며 ⓒ그러한 창비의 관점에도 일리가 있다는 소리를 내 책에, 내가 하는 말인 것처럼 써 달라고? 앞으로 출판사가 요구하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나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며 지구평면설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음을 밝힌다’ 따위의 문장을 덧붙이는 데에도 동의해야 할까.”

장씨는 신씨가 거둔 문학적 성취는 인정한다고 했다. 표절 논란이 일었던 2015년 당시 신씨의 사과가 썩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둘러싼 비난이 과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어 “문제는 당시 창비의 해명”이라고 했다. 창비는 당시 해명에서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으나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 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장씨는 “요사스러운 용어들을 덜어내고 일상 언어로 다시 쓰자면 이런 얘기”라며 이렇게 비유했다. ‘문장은 정말이지 비슷한데 신 작가가 베끼는 모습을 네가 보지는 못했잖아, 천문학적인 확률로 우연히 이렇게 된 걸 수도 있지. 그러니까 표절이라고 할 순 없어.’

장씨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어느 누구의 표절에 대해서도 표절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누구든 바로 그 천문학적인 확률을 주장하면 되니까. 글쓴이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사실상 표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너진다”고 했다.

장강명씨와 신간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유유히).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장강명씨와 신간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유유히). 경향신문 자료사진

장씨는 음주운전 여부를 가릴 때 “물인 줄 알고 마셨는데 그게 소주였나 보네요”라는 운전자의 말보다 ‘혈중알코올농도’로 판단한다며 “ ‘수치적으로 취기가 있다는 사실에는 합의할 수 있으나 의도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장씨는 창비가 이 규칙을 무너뜨리려 했다고 말한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반칙을 했는데 구단이 나서서 ‘그건 반칙이 아니다’라고 나선 격”이라고 했다. “업계에 영향력이 큰 구단이 그 영향력을 나쁘게 행사하려 든 만큼 더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장씨는 2015년 계간 ‘문학동네’ 좌담회에 나가 ‘이게 표절이 아니라면 한국 소설은 앞으로 짜깁기로 말라 죽게 될 것입니다. 젊은 소설가들이 창비에 항의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일도 전했다. “당시 한국 소설가 중에 창비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 광경은 씁쓸했다”고 적으며 ‘덧붙임 2’를 마무리했다.

‘출간 계약을 해지하며’는 2021년 A출판사의 ‘계약금과 인세 지급 누락’, ‘오디오북 무단 발행’, ‘판매명세 보고 불성실’ 등을 고발하는 칼럼이다. ‘덧붙임 1’은 당시 사태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침묵, 다른 피해 작가에 대한 후속 조치 여부에 관해 적었다.

장씨는 신간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중 투명한 인세 정산과 독서 생태계 등을 두고 여러 차례 의견을 적었다.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고료 체불이나 인세 지급 누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끝내 계약 해지까지 이른 경험을 토로하면서 장강명은 이렇게 말한다. 출판은 문화 운동이기 이전에 엄연한 비즈니스이므로, 기본을 제대로 지켜달라고. ‘입금, 교정, 예의 같은 것을.’”

신간 에세이는 소설가의 일상, 창작과 돈벌이에 관한 고민이 이어진다. 책과 동명의 제목인 1부 글은 ‘저술 노동자의 몸 관리’ ‘조지 오웰과 술과 담배’ ‘고유명사를 어찌할까요’ ‘소설가들은 어떻게 친해지나요’ 등이다. 2부는 ‘내 책은 얼마나 팔리는 걸까’ ‘소설가와 강연’ ‘표지 정하기’ ‘소설가의 자기소개’ 등으로 구성했다. 3부 ‘글쓰기의 중독’엔 ‘전업 작가의 일상’ ‘현대 추리 소설을 쓰는 법’ ‘작가와 리뷰어’ 등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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