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 “혁명적 행위” 히잡 거부하는 이란 여성들

김서영 기자
이란 테헤란대 학생들이 지난해 10월13일(현지시간) 교문 밖에 있는 보안군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테헤란대 학생들이 지난해 10월13일(현지시간) 교문 밖에 있는 보안군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부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히잡 강요의 시대는 끝났다.”

대학원생 키미아(23)는 “히잡을 수개월 동안 쓰지 않았다. 이젠 더이상 히잡을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학교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심지어 남자 교수가 있는데도 히잡을 쓰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이처럼 이란 여성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사례가 늘었다고 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9월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돼 의문사한 이후 이란 전역에서 히잡을 불태우는 등 저항이 일었고, 히잡을 거부하는 행위가 보다 일상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이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학교에서 머리를 한 갈래로 내리거나 올려 묶은 여성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보수적인 시골보다는 도시 지역에서 더 손쉽게 관측된다. 이란 여성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출전하는 경우도 몇차례 있었다.

이란 테헤란 시내 모습

히잡법은 이슬람 혁명 4년 후인 1983년 4월 이란 모든 여성에게 의무화됐다. 만 9세 이상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집권한 정치세력의 성향에 따라 시행되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동안 이란 정권은 히잡법을 이슬람 혁명이 성공했다는 상징처럼 활용해 왔다. 강경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2021년 집권한 후엔 히잡법이 강화됐으며 이를 위반하는 여성들은 도덕경찰에 적발돼 벌금을 물거나 구타당하거나 체포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현재도 많은 여성들이 공적인 자리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히잡법을 따른다고 NYT는 전했다.

이란 체스 선수 사라 카뎀(25)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지난해 12월28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국제체스연맹(FIDE)의 세계 래피드&블리츠 체스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체스 선수 사라 카뎀(25)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지난해 12월28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국제체스연맹(FIDE)의 세계 래피드&블리츠 체스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는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테헤란 시내 전통 거리에선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많지만 젊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공원이나 카페, 식당, 쇼핑몰에선 히잡을 쓰지 않은 이들이 늘어난다.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올렸던 하티스(25)는 “이것이 머리카락 사이로 시원한 가을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단 말인가. 나는 이 느낌을 25년 동안 부정당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이란 정부가 지난해 12월 도덕경찰을 폐지한 것도 한몫 한다. 그간 시위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던 이란 정부는 종교 경찰을 폐지하고 히잡법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발 물러섰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웨일스 대 이란 경기가 열린 지난해 11월2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분장을 한 어느 이란 축구 팬이 지난 9월 숨진 마흐사 아미니의 이름과 나이(22)가 적힌 셔츠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웨일스 대 이란 경기가 열린 지난해 11월2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분장을 한 어느 이란 축구 팬이 지난 9월 숨진 마흐사 아미니의 이름과 나이(22)가 적힌 셔츠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분노가 실천적인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파티메 샴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러한 운동의 핵심과 근본은 히잡을 종교적 독재와 여성혐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로 전환시키려는 여성들의 혁명적인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란 당국이 다시 히잡 착용을 강요하려 하지만, 이를 되돌리기에는 저항이 너무 널리 퍼져있다고 인권 활동가들은 평가했다.

종교적 성향이 강해 스스로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조차도 히잡 거부 움직임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들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히잡을 쓰지만, 히잡 강제 착용에는 반대한다”는 문구로 청원을 벌이고 있다. 여전히 히잡을 착용하는 마리암(53)은 히잡을 거부한 자신의 딸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시대가 변했다. 나는 내 딸의 선택을 존중하며 당신도 그래야 한다. 누구도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고 NY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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