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현판 7개 떼내 긴급 이송
침엽수 많아 진화 난항…379㏊ 영향
주민 560여명 대피, 학교들 휴업·단축수업
무섭게 번지던 강릉 산불, 주택·펜션·문화재 등 100채 불타
강원 강릉에서 11일 오전 발생한 대형 산불이 태풍급 수준의 강한 바람을 타고 해안가 방향으로 번져 인근 산림과 주택·문화재 등에 큰 피해를 입혔다. 또 주민 1명이 숨지고, 주민·소방대원 등 16명이 다쳤다. 이 산불은 발생 8시간여 만에 주불이 잡혔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이날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원 강릉시 난곡동 일대 야산에서 산불이 났다. 산림·소방당국은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 3대 등 장비 403대, 진화대원 2787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당국은 바람이 잦아든 오후 들어 헬기 4대를 투입 진화에 나섰고, 오후 4시30분쯤 주불을 진화했다. 때마침 오후에 내린 비도 불을 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날 화재 진압에는 전국 16개 시·도의 소방장비와 인력이 투입됐다.
이날 산불 현장에는 평균풍속 초속 15m,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의 남서풍이 불어 당국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초속 30m 가량의 강풍은 시속으로는 136㎞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다. 이로 인해 당국은 산불 초기 초대형 헬기 6대를 출동시켰다가 바람이 거세지자 바로 철수시켰다. 당국은 오후 3시쯤 바람이 다소 약해지자 헬기 4대를 출동 시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몸조차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으로 지상 진화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불은 태백산맥을 넘으며 고온 건조해지는 바람 때문에 무섭게 확산했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초속 20m의 바람이 부는 경우 불씨가 2㎞까지 날아가 다른 불을 냈다”면서 “순간 최대 풍속이 30m에 이르면서 불길이 급격히 번졌다”고 말했다. 강릉 시민인 이모 씨는 “경포호 일대와 강릉 앞바다가 검은 연기로 뒤덮이면서 상당수 주민이 공포에 떨었다”고 말했다.
이날 불로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강릉시 안현동의 전소된 주택에서 주민 전모씨(88)가 숨진 채 발견됐다. 또 주민 12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1명은 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소방대원 2명과 주민 1명 등 3명은 화상을 입었다.
또 주택·펜션·상가·호텔 등 시설물 100여 곳이 전소되거나 일부 타는 피해가 났다.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방해정(放海亭) 일부도 소실됐다. 한때 국가민속문화재인 선교장 등 일부 문화재가 소실 위험에 놓이면서 당국이 문화재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데 힘을 쏟았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강릉 경포대의 현판 7개를 떼어내 인근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겼다. 이들 문화재는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당국은 이 산불로 현재까지 축구장 면적의 530배에 달하는 379㏊가 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은 불이 난 산림에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많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난곡동 등 지역 주민 557명은 긴급히 대피했다. 경포대초등학교 등 일부 학교의 학생들은 화재 발생지와 거리가 먼 다른 초등학교로 대피했다. 교육 당국은 강릉 일대 15개 학교에 대해 휴업하거나 단축 수업을 하도록 했다.
강원도소방본부는 이날 오전 9시 19분 ‘대응 2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같은 날 오전 9시 43분쯤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강릉시는 시민들에게 경포동 주민센터, 아이스아레나, 사천중학교 등으로 대피하라는 재난 안전문자를 발송했다.
산림 당국은 태풍급의 강풍에 소나무가 부러지는 과정에서 전깃줄을 건드려 불이 붙으면서 급속히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산림청 관계자는 “강한 바람으로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단락시켰고, 그 결과 전기 불꽃이 발생하면서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선이 단락된 곳과 발화지점이 일치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도 비슷한 시간에 정전됐다고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강릉 지역을 포함한 영동 지역에는 건조 경보와 강풍 경보가 함께 내려졌다. 이 강풍은 봄철만 되면 부는 ‘양간지풍’이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고성 간성 사이에서 국지적으로 부는 강한 바람’을 일컫는다. 해마다 동해안 봄철 대형산불로 이어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산불은 오후에 내린 ‘단비’ 덕에 진화율이 올랐고, 일몰 전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이날 “마지막까지 불을 다 진압하고, 재산 피해를 더 확실하게 조사해서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되도록 중앙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