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첫 변론기일 “예측한 사람 있었나” 전략
재난관리주관기관장 의무·국회 위증 여부 등 쟁점
[주간경향]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그거(이태원 참사) 예측한 사람 있습니까? 저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9일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이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날 재판에서 양측 입장을 듣고 쟁점을 정리한 재판부는 특별히 더 진술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이상민 장관 측 윤용섭 변호사(법무법인 율촌)가 즉석 발언에 나섰다. 윤 변호사는 탄핵 청구인 측이 “국가는 재난 예방의무가 있으므로 행안부 장관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비약’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참사를) 예측한 사람이 있느냐” 등 그의 발언은 이날 재판을 다룬 보도에 일제히 소개됐다.
윤 변호사의 이날 발언은 이상민 장관 측 ‘변론 전략’의 요체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 쟁점 중에서 ‘재난 예방의 의무’를 주로 파고들었다. 윤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행안부 장관이 이태원의 어느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그 수많은 사람이 운집할 것을 예상하고 용산경찰서, 용산구청에 ‘미리 대비해라’ 이런 걸 내리지 않았다면 탄핵당해야 하느냐.”
마치 이상민 장관이 참사 전에 실무진에 별도 지시를 내리지 않아 탄핵소추를 당했다는 듯한 뉘앙스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왜곡하는 언급이다. 이 장관의 탄핵소추 사유는 크게 3가지로, ‘재난 예방조치 의무 위반’, ‘재난 대응 의무 위반’, ‘참사 이후 부적절한 언행’이다. 그중 재난 예방의무에 해당하는 ‘인파 안전 대책 미수립’ 문제와 관련해 국회는 행정안전부에 “총괄적 역할과 책임”(국정조사 보고서)이 있다고 봤다. 즉 이상민 장관에게 포괄적 책임이 있는 대목을 일부러 내세우며 직접적 지시를 내리지 않은 것이 문제냐고 따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탄핵심판이 이상민 장관 측의 전략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날 탄핵심판의 쟁점을 10가지(표1 참고)로 구체화했다. 다중밀집 예방 대책 마련은 그중 첫 번째 쟁점이고, 나머지 쟁점 중 7가지가 참사 직후의 대응에 해당한다. 즉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라는 주장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지만(경찰 특수수사본부조차 “예상할 수 있는 사고였다”고 지적했다), 그것만으로는 ‘참사 직후 장관의 법적 의무 위반’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없다. 재판부가 정리한 쟁점 다수가 ‘참사 대응’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탄핵심판을 통해 “참사 직후 장관으로서 무얼 했느냐”는 질문에 집중적으로 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상민 장관은 왜 재난 발생 시 초동조치·지휘를 위한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설치하지 않았을까, 참사 직후 경찰·소방 등 기관 간 혼선이 극심했을 당시 그는 무엇을 했을까, 국회 국정조사에서 충분히 따져묻지 못한 질문을 이제 헌법재판소가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기관 간 소통 혼란, 중수본이 있었더라면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소방·의료팀 등 기관 간의 혼선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인명 구조를 위한 현장 통제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장에 진입했던 한 소방대원은 지난해 국정조사에서 이런 증언을 했다. “구조한 사람들을 놓을 장소조차 마련되지 않을 정도로 인파가 통제되지 않았다. 경찰 출동을 엄청나게 요구했지만, 초기 현장에서 경찰은 2명 봤다.” 이 소방대원은 ‘경찰, 지자체 등 다른 기관들의 지원이나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않다, 너무나 외로웠다. 소방관들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없었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추정시각은 10시 15분. 소방은 10시 18분부터 경찰에 수차례에 걸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 측은 10시 59분 유선전화를 받고서야 심각성을 인지했다. 참사 발생 후 1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근 경찰들만 투입한 이유다. 기동대 투입 결정은 11시 17분에야 내려졌다.
국회 국정조사에서 경찰 측은 소방의 요청 내용만으로는 ‘참사 발생’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경찰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당시 경찰 112상황실에는 압사 우려 신고가 빗발치고 있었다. 경찰 판단이 지나치게 안이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기관 간 혼선이 경찰·소방 사이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경찰은 9시 38분과 11시 16분 이태원역 측에 무정차를 요청했으나 두 차례 모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장에 진입하려는 재난의료지원팀(DMAT)을 경찰이 통제를 위해 막아서는 일도 있었다.
만약 재난안전법이 명시한 대로 재난 발생 직후 중수본이 구성돼 ‘초동지휘’를 했다면 어땠을까. 각 기관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고 상황을 빠르게 전파해 대응 체계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참사 직후 중수본이 설치됐더라면 단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천윤석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 변호사)
■그는 ‘중수본부장’이어야 했다
재난안전법은 재난 발생 때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이 신속하게 중수본을 설치·운영해야 하며, “재난정보 수집·전파, 초동조치 및 지휘를 위한” 중수본 상황실 역시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은 중수본부장이 된다.
이태원 참사에서 중수본을 설치했어야 할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은 누구였을까. 재난안전법의 시행령은 재난유형별로 ‘재난관리주관기관’을 분류해 놓고 있다. 학교에서 발생한 재난사고는 교육부, 감염병 재난은 보건복지부, 환경오염 사고는 환경부가 재난관리주관기관이 되는 식이다. 시행령에 제시된 유형에 속하지 않는 재난이라면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지정해야 한다.
국정조사 당시 이상민 장관은 자신이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지정했는지 여부부터 ‘오락가락’ 답변을 했다. “이태원 참사의 재난관리주관기관은 없다”고 답했다가 “(재난관리주관기관은) 참사 직후 바로 행정안전부로 정해졌다”고 답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새벽 1시 50분의 국무총리 주재 긴급대책회의에서 자신의 구두발언을 통해 ‘재난관리주관기관을 행정안전부로 정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재난관리주관기관 지정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상민 장관이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으로서 했어야 할 중수본 설치·운영의 ‘미이행’ 사실은 그대로다.
이태원 참사에서 중수본은 끝내 설치되지 않았다. 중수본의 상위 조직인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 참사 발생 4시간이 지난 새벽 2시 30분 국무총리 주재로 가동됐다.
이상민 장관 측은 참사 직후의 구조는 ‘긴급구조통제단장’(소방청장이나 소방서장)이 지휘하기 때문에 중수본 설치는 급박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긴급구조통제단장은 현장 인력을 지휘해 구조에 집중할 뿐 전체 상황을 파악해 인력과 장비가 얼마나 어디에 더 필요한지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고, 그런 여유가 있다면 한명이라도 더 구조하는 게 우선이라는 게 소방 측의 설명”(청구인 측 노희범 변호사)이라는 반박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성실·품위유지 위반 여부도 쟁점
이상민 장관의 국회 위증 여부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특히 탄핵 청구인 측은 유족 명단을 둘러싼 이상민 장관의 위증이 가장 심각했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16일 이상민 장관은 참사 유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민병덕 의원 질의에 “유가족 연락처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어 “행안부에서는 유족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유족 전체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상민 장관은 유사 질문이 나올 때마다 “유족 명단조차 없다. 연락처는 (없는 것은) 물론이다”, “윽박지른다고 (없는) 정보가 저절로 생기느냐”, “국무위원의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느냐”며 항변했다. 이후 국회 국정조사에서 서울시가 10월 30일~11월 2일 세 차례에 걸쳐 65명의 유가족 명단이 포함된 파일을 행정안전부에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추궁하자 이상민 장관은 “유족 명단의 개념” 문제를 들고나왔다. “행안부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파일은 ‘사망자 현황 엑셀 파일’이고, 마지막 난에 유가족 65명 정도만 기재된 아주 불완전한 정보여서 ‘유가족 파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상민 장관은 지금까지도 유족 명단과 관련한 그간의 발언이 위증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그밖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제가 그사이 놀고 있었겠느냐” 등의 발언도 탄핵심판에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청구인 대리인단은 국회 위증은 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은 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