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20년간 미국 기밀 넘긴 ‘역사상 최악 스파이’ 감옥서 사망

최서은 기자

79세 로버트 핸슨, 자연사 추정

FBI 요원으로 이중 스파이 활동

최신 무기·핵전쟁 전략 등 유출

구체적 동기는 여전히 ‘미스터리’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 로이터연합뉴스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끼친 스파이로 꼽히는 로버트 핸슨 전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79)이 5일(현지시간) 감옥에서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이날 오전 6시 55분쯤 콜로라도주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핸슨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AP통신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핸슨이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핸슨은 20년 가까이 소련 및 러시아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2001년 검거돼 간첩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었다. 그가 머물렀던 플로렌스 교도소는 미국 감옥 중에서 가장 보안 등급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핸슨은 1976년부터 구소련 정부 기관들을 상대로 첩보 수집, 방첩 업무를 하는 FBI 요원으로 종사하면서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하며 수천건의 미국 1급 기밀 정보를 러시아측에 넘겼다. 그는 ‘라몬 가르시아’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FBI에서 일한 지 약 3년 뒤인 1979년부터 소련의 첩보 활동을 시작했다. 미 법무부의 2007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수십 명의 인적 정보를 포함해 미국 최신 무기 현황 및 핵전쟁 발발시 미국의 전략, 방첩 기밀 등 오랜 기간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보 및 군사 기밀을 유출해왔다.

이런 대가로 러시아측으로부터 140만달러(약 18억원) 이상의 현금, 은행 자금, 다이아몬드, 롤렉스 시계 등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체포되기 전까지 호화로운 생활이 아닌 소박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작은 교외 주택에서 아내와 여섯 자녀와 함께 살았다. 겉으로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아내와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해 친구에게 보여주거나 노골적인 성적 이야기 및 누드 사진을 음란 사이트에 공유하는 등 성적 도착 증세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9년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연방수사국(FBI) 아카데미 진열장에 담겨있는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의 신분증과 명함. AFP연합뉴스

2009년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연방수사국(FBI) 아카데미 진열장에 담겨있는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의 신분증과 명함. AFP연합뉴스

수십 년간의 스파이 활동에도 붙잡히지 않았던 핸슨은 첩보 당국이 또 다른 이중 스파이였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올드리치 에임스 체포 이후로도 정보가 새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발각됐다. 당시 300여명이 이 사건 수사에 동원됐다. 결국 핸슨은 2001년 2월 러시아의 비밀 요원에게 건넬 정보를 워싱턴 D.C.의 공원에 있는 비밀 장소에 숨겨 두고 오는 길에 FBI에 검거됐다. 그가 오랫동안 FBI 요원으로 이중 스파이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핸슨이 무엇 때문에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이같은 행동을 했다고 밝혔지만, 금전적 목적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고 그의 주변 사람들은 설명했다.

핸슨의 ‘이중 스파이’ 사건은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역사상 최악의 정보 재앙’으로 불린다. FBI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끼친 스파이”로 명명했다. 당시 루이스 프리 FBI국장,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은 모두 이를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사건으로 소련 붕괴 이후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던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며 외교 관계가 일시 단절됐다. 부시 대통령은 50여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 역시 미국 외교관 50여명을 추방시켰다.

당시 그를 기소한 검사였던 폴 J. 맥널티는 “핸슨 범죄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배신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2007년 빌리 레이 감독‧크리스 쿠퍼 주연의 영화 <브리치>로 재조명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영화 <브리치> 예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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