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특전사 병사 약물중독 사망, 막을 수 있었던 인재”

전지현 기자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어머니가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어머니가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부대 앞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이틀 후에 다시 만난다며 인사를 나눴어요. 아들이 부대로 복귀한 지 3-4시간 만에 부대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아들은 우리를 죽음으로 맞이했습니다. 부상으로 수송병 업무를 수행 못해 선임 눈치를 많이 보던 애였어요. ‘엄마, 선임이 (아픈 척) 연기 많이 늘었다더라’고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인천 소재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생활관에서 지난 4월1일 숨진 채 발견된 이모 상병(22)의 어머니가 8일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당초 ‘낮잠을 자던 병사가 돌연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상병의 죽음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급성약물중독’이 사인이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적절한 인사 조치와 선임의 폭언, 부대의 방치 끝에 이 상병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부대 내에서 자해 시도를 하는 등 자살 위험도가 높았던 이 상병을 부대가 방치해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상병은 지난 4월1일 가족과의 면회 이후 부대 생활관에서 모포를 쓰고 누워 있다 숨졌다. 몸이 경직된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군인권센터가 전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이 상병은 복용하던 약물과 에너지음료를 치사량 이상으로 복용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사망 원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사망 원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입대한 이 상병은 수송 특기를 부여받고 지난해 8월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에 수송병으로 배치됐다. 이 상병이 입대 전 부사관 입대를 준비하다 당한 손목·발목 부상이 심해져 운전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자, 부대는 이 상병의 보직을 행정병으로 임의 변경했다. 부대 편제상 행정병은 없지만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

군인권센터는 이 상병이 부상으로 훈련 등에서 열외되고 행정병으로 불침번 근무표를 작성하다 선임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지난 2월 말 혹한기 훈련 산악행군에 참여하지 못한 후 투신 및 자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국군구리병원에서 지난 3월 작성된 이 상병의 외래초진기록지에는 “2월 말에 혹한기 훈련 참가를 못했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욕을 한다”며 “현재도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약물과다 복용 같은 방법만 생각한다”고 적혔다. 군의관은 치료 기록에 “환자의 자살사고, 충동에 대해 간부에게 설명하고 전우조 편성 등을 통한 적극적인 주의관찰이 필요함을 설명했다”고 썼다.

군인권센터는 부대가 전출 등 충분한 관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해 시도 후 이 상병이 부대에 전출을 요구했으나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이 만류했다는 것이다. 부대는 병장 1명, 상병 1명으로 구성된 전우조를 편성했으나 전우조 당사자들에게 구체적인 임무가 부여되지는 않았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어머니가 기자회견문 낭독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어머니가 기자회견문 낭독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 상병의 어머니는 “2월에 (자해한) 일이 있은 후 퇴원하고 집으로 올 줄 알았는데, 그때도 집으로 안 오고 부대로 바로 복귀했다. 가서 일을 할 수 있냐 묻자 아들이 괜찮다고 했다”며 “충분히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군이 그 기회를 놓쳤다. 이런 죽음이 다신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누구나 낯선 군 생활에 부적응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식별하고 관리하기 위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중대장, 행보관, 선임병들 및 여단 참모장 본부 근무대장을 상대로 군경찰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진료기록에도 나온 위험 지점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을 형사절차가 아닌 징계절차로라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군은 이날 “수사 진행 과정에서 미흡한 부대관리와 일부 부대원의 부적절한 언행이 식별돼 관련자들을 법과 규정에 의거 처리할 것임을 유족께 설명드린 바 있다”며 “이외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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