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나비효과’ 살펴보니…“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김지환 기자
지난달 한국지엠 부평공장 안 조립사거리 벽면에 걸린 현수막. “통상시급 8000원,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제공

지난달 한국지엠 부평공장 안 조립사거리 벽면에 걸린 현수막. “통상시급 8000원,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제공

‘상여금·수당이 기본급에 새롭게 편입되는 바람에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았다.’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지면서 장시간 노동 때 기본임금을 적게 받았다.’ ‘근속이 낮은 노동자가 근속이 높은 노동자보다 기본급 또는 통상임금이 높아졌다.’ ‘임금체계가 복잡해져 현장 노동자들이 월급명세서를 보고 최저임금법 위반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2019년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이런 사례들이 현장에서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입범위 확대로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주는 임금’은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에 포함된다. 상여금, 식비·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도 매월 지급만 하면 최저임금 항목이 된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서 ‘산입범위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입범위 개악과 최저임금제도의 왜곡 현실’ 토론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현장에 미친 악영향을 소개하면서 “지난 5년간 산입범위 확대로 인한 변화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입범위 확대 이후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사례가 나왔다. 이전에는 ‘최저임금=기본급’이라는 도식이 성립될 정도로 기본급이 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지는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기본급은 낮게 유지하고 새롭게 최저임금 항목으로 편입된 상여금·수당을 활용해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하는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오 실장은 “이런 방법을 활용하면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을 제자리에 묶어둘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저임금 노동자 임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의 경우 산입범위 확대가 첫 적용된 2019년부터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졌다. 그해 월급 기준 최저임금은 174만5150원이었는데 1~4급 직원 기본급은 167만5150~170만5150원이었다. 최저임금 범위에 식대가 포함되자 추가 산입범위만큼 기본급 인상 폭을 낮췄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나비효과’ 살펴보니…“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한국지엠 2차 하청업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차 하청업체, 르노코리아, 악사(AXA) 손해보험 콜센터 등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사업장도 있었다. 사용자들이 상여금·수당을 최저임금 범위에 넣으면서 통상임금 범위에선 제외했기 때문이다. 오 실장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지면 사용자들은 일감이 늘어나더라도 고용을 늘리기보다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기본급 역전 현상’도 발생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직원 직급은 1~4급으로 나눠져 있고, 각 급별로 위탁역장, 총괄매니저, 매니저가 있다. 원래 각 급 내에서 기본급은 위탁역장, 총괄매니저, 매니저 순으로 높았으나 2019년부터 매니저, 총괄매니저, 위탁역장으로 순으로 바뀌었다. 오 실장은 “기본급 역전 현상이 벌어진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종전까지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던 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코레일네트웍스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임금인상에 반영하지 않을 목적으로 ‘기본급+직무수당+식대’ 총액을 정확히 최저임금액에 맞추는 방식으로 기본급 인상분을 역전 시켜 버렸다. 르노코리아에서도 유사한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근속이 높은 노동자들의 경우 산입범위 확대만으로 최저임금 위반을 피해갈 수 있으나, 근속이 낮은 노동자들의 경우 전체 임금항목을 합하더라도 최저임금 미달이기 때문에 기본급을 더 높여주거나 조정수당이라는 걸 신설해 최저임금을 맞춰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오 실장은 “법·제도 개선을 위해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임금 하락을 겪은 노동자들 사례를 발굴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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