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응급실 24시, 간호사들이 있다

유선희 기자

[싸우는 여자들] 서울의료원 응급실 간호사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간호사들이 병상을 옮기고 있다. 이송기사가 따로 있지만 인력이 모자라 환자가 몰릴 경우 간호사들이 이송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선희 기자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간호사들이 병상을 옮기고 있다. 이송기사가 따로 있지만 인력이 모자라 환자가 몰릴 경우 간호사들이 이송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선희 기자

오후 7시9분, 일반 응급환자 한 명 추가

오후 7시12분, 중증 응급환자 1명 엑스레이 촬영

오후 7시14분, 응급환자 또 들어옴

오후 7시15분, 119구급차 한 대 들어오는 중

오후 7시16분, 일반과 중증구역 병상 각 8개에 모두 환자들이 다 차 있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넘나드는 곳, 병원 응급실 풍경이다. 응급실은 빠른 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들이 쏟아진다. 시간이 곧 생명과 이어진다. 응급환자가 처음 의료진과 마주하는 공간인 응급실에는 간호사들이 있다.

간호사들의 고강도 업무, 낮은 처우가 알려져도 사회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가속화되는 필수의료 붕괴 우려 속 간호사들의 이탈이 늘고 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이곳을 “취약계층 진료의 ‘최종기지’”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간호사들은 “버티고 있다”. 경향신문은 응급의료 최전선에서 싸우는 응급실 간호사들을 ‘24시간 동행취재’했다. 그들의 삶은,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응급상황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정민정(가명) 간호사가 오전에 업무를 챙기면서 신입 권미경(24) 간호사에게 교육을 하고 있다. 정 간호사 책상 위로 대형 사이즈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놓여 있다.유선희 기자

정민정(가명) 간호사가 오전에 업무를 챙기면서 신입 권미경(24) 간호사에게 교육을 하고 있다. 정 간호사 책상 위로 대형 사이즈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놓여 있다.유선희 기자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서울 중랑구 신내로에 있다. 원칙적으로는 서울 동북권역을 커버하지만 환자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24시간 동행취재를 한 지난달 26일에는 400㎞ 떨어진 전남 해남에서 온 환자도 받았다.

오전 7시는 밤 근무가 마무리되고 오전 근무가 시작되는 교대시간이다. “새벽에 심폐소생술 환자로 한차례 전쟁을 치렀다”는 밤 근무 간호사들의 얼굴이 푸석했다. 오전 근무 간호사들은 전날 내원한 환자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받고, 응급실에 있는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아침밥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했는데도 피곤하다”는 정민정(30대·가명) 간호사가 대형 사이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왔다. 올해 9년 차인 정 간호사는 응급실에서 중증환자를 담당한다. 오전 근무 간호사들은 근무 시작과 함께 잔류 마약류(수술 전 마취 진정제) 수량 파악, 수액 신청, 코로나 신고, 엠폭스(옛 명칭 원숭이두창) 모니터링 업무 등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기본 업무를 채 마치지도 못했는데 오전 8시34분 90대 고령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호흡곤란 환자이시고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요.”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한 구급대원이 정보를 공유했다.

“산소포화도와 혈압이 너무 낮은데요.” 정 간호사가 환자감시장치를 보면서 의사에게 알렸다.

곧장 환자복으로 갈아 입히고 산소줄 연결, 채혈 등이 이어졌다. 산소포화도를 높이기 위해 기침을 유도하는 작업에도 집중했다. 환자의 혈액수치가 낮아 체온과 맥박 등을 측정한 뒤 수혈도 진행했다. 정 간호사는 “고령환자들은 중증도가 높아 빠르고 정확한 간호처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의 처방이 내려지자, 정 간호사는 투약바코드 정리를 시작했다. 의사의 추가 처방도 있을 수 있어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어 환자에 대한 정보를 전산망에 기록했다. 환자 상태를 의료진 모두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업무다.

정 간호사가 90대 고령환자의 긴급 간호차치가 끝난 이후에도 환자 기저귀를 갈고 환자복 매무새를 정리했다. (환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해 놓은 것은 보호자 동의 하에 진행됐다) 유선희 기자

정 간호사가 90대 고령환자의 긴급 간호차치가 끝난 이후에도 환자 기저귀를 갈고 환자복 매무새를 정리했다. (환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해 놓은 것은 보호자 동의 하에 진행됐다) 유선희 기자

“환자분 기저귀 갈아야지?” “네네”

정 간호사는 환자에 관한 기록을 하면서 뒤처리도 신경 써야 했다. 응급실에는 간호조무사가 없다. 환자에 대한 기초 처치가 아닌 기저귀를 갈거나 대소변을 치우는 일, 환자옷 교체와 소지품 보관 등이 오롯이 간호사들의 일이 된다. 정작 중요한 처치가 어려워지는 일도 발생한다.

고령 중증환자 도착 채 10분도 안 지난 오전 8시43분 교통사고 피해 여성이 도착했다. 정 간호사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반으로 질끈 묶었다. 겨우 한 모금 마신 커피 겉면엔 물방울이 잔뜩 맺혔다. “목이 타지만 집중해서 해야죠, 사람 돌보는 일이잖아요.” 정 간호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응급실 간호사들을 따라다니며 동행 취재를 한 지 4시간이 넘어가면서 종아리가 몹시 당겼다. “다리 안 아파요?” 물으니 “저희는 그래서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고 일해요. 그나마 다리가 덜 아프거든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 간호사가 바지를 걷어 올리자 종아리에 감겨 있는 압박스타킹이 보였다. 압박스타킹은 간호사를 보호하는 ‘갑옷’과도 같았다.

상시 노출된 폭력과 폭언, 무뎌지지 않는다

정 간호사가 오전 7시에 출근해서 겨우 한 모금 마신 커피는 퇴근하는 오후 2시40분쯤까지도 다 마시지 못했다. 유선희 기자

정 간호사가 오전 7시에 출근해서 겨우 한 모금 마신 커피는 퇴근하는 오후 2시40분쯤까지도 다 마시지 못했다. 유선희 기자

응급실에 온 환자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틈틈이 신입 간호사 교육까지 하느라 정 간호사의 점심시간이 늦어졌다. 오후 12시40분이 돼서야 구내식당에 갈 수 있었다. 10분 만에 후딱 밥을 먹고 돌아온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더 늘었다. 교대근무는 오후 2시에 이뤄졌다. 정 간호사는 남은 업무를 챙기느라 40분 정도 퇴근이 늦어졌다. 얼음이 다 녹아 묽어진, 절반도 채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들고 정 간호사는 퇴근했다. 오후 근무자들이 속속 자리를 채웠다.

오후 3시40분, 2년 차 조은빛(20대·가명) 간호사가 출근한 지 2시간도 안 됐을 때다. 얼굴이 붉어진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자살시도자 간호처치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몸 곳곳을 자해한 80대 할아버지였다. 조 간호사는 “자살시도자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경우 많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게 중요해 말 속도와 말투도 신경을 쓴다”고 했다.

이날 오후 시간대(오후 2시~10시)에만 80대 어르신과 10대 청소년 등 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로 실려 왔다.

조 간호사 왼쪽 가슴 쪽에 달린 ‘햇빛꽃 모양’의 브로치가 눈에 띄었다. “응급환자들이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게 됐다”고 했다. 브로치에 간절한 바람을 담았지만 응급실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환경이다. 그가 자주 마음을 다치는 이유다. 그는 “작년에 환자가 주사기를 빼앗아 휘두르고 제 손목을 할퀴는 등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다. 진정이 안 돼 결국 경찰에까지 신고했는데, 이후 환자분이 제 이름을 알고 응급실에 찾아왔다”며 “마침 그 시간대에 근무가 아니라 제가 없었는데 혹시 또 찾아와 해코지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한동안 너무 무섭고 걱정이 컸다”고 했다. 다행히 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지난 4월엔 16년 차 간호사가 정신질환자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일도 있었다. 의료원은 정신응급환자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모든 의료진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응급의료 최전선에서 싸우면서 간호사들이 쌓아온 경험과 보람은 상시 노출된 폭력과 폭언 앞에서 자주 무너진다. 싸움의 무기가 되는 ‘사명감’이나 ‘경험’, ‘노하우’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16년 차 정희영 간호사(38)는 지난 4월 응급실에 온 정신질환자에게 머리채를 잡혀 다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4일 동안 병가를 쓰면서 충격을 달래야 했다. 유선희 기자

16년 차 정희영 간호사(38)는 지난 4월 응급실에 온 정신질환자에게 머리채를 잡혀 다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4일 동안 병가를 쓰면서 충격을 달래야 했다. 유선희 기자

빗발치는 요구 대응, 고강도 업무…처우는 열악

“여기서 죽을 거야!”

조 간호사가 응급환자 관련 정보를 전산망에 입력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80대 자살시도 환자가 흥분해 있었다. 환자를 처치하고 검사까지 진행했지만, 자해로 힘줄이 크게 다쳐 전문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호자들이 동의했는데 환자가 거부하면서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버님 전문치료 받으러 가시는 거예요. 아프시잖아.” 조 간호사가 달랬다. 이날 조 간호사는 업무시간 절반 이상을 이 환자에게 할애해야 했다. 고되고 오랜 설득이 4시간30분 동안 이어진 끝에 다른 병원으로 무사히 옮겨질 수 있었다.

2년차 조은빛(가명) 간호사는 “응급환자들이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햇빛꽃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고 일한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노출된 폭언과 폭력에 “자주 마음을 다친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2년차 조은빛(가명) 간호사는 “응급환자들이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햇빛꽃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고 일한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노출된 폭언과 폭력에 “자주 마음을 다친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오후 7시가 넘어가면서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 추운데 담요 좀 주세요!”

“응급실에 급하게 오느라 남편이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뭐 좀 먹게 하면 안 될까요?”

조 간호사가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뒤로 환자와 보호자들의 요구사항이 빗발쳤다. 일일이 대응하면서도 검사를 마친 주취자를 깨워 보내는 일, 새로 온 환자들의 간호처치를 돕는 일로 앉을 틈이 없었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보통 바쁠 땐 자신의 담당구역이 아니어도 환자를 본다.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 수를 정할 수도 없는 환경이다.

조 간호사는 오후 시간대 근무조 중 가장 늦게 저녁을 먹었다. 오후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밥은 잘 먹었어요?” 물으니 “아뇨.. 반찬도 다 떨어졌더라고요. 이게 일상이에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 간호사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오후 근무를 했다. 다음날 이어지는 주말 이틀 동안 연속으로 밤 근무를 하는 일정이다. “잠이라도 잘 잤으면 좋겠네요.” 묵직한 피로가 담긴 얼굴로 그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고강도에 궂은일을 도맡고 있지만, 간호사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5년~6년 차 기준 응급실 간호사의 월평균 임금(상여금 제외)은 200만원 후반대에 그친다. 월평균 특수부서 가산수당 2만5000원, 위험수당 3만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시간을 다투는 응급상황에 대응하면서 각종 폭언·폭력에 노출된 간호사들에게 뒤따르는 노고 인정액이 불과 5만5000원인 셈이다. 지난해 기준 이곳 응급실 간호사들의 사직률은 (신규 입사자 대비) 40~50%로 나타났다. 지난 4월 5명의 신규간호사가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1명이 벌써 그만뒀다.

응급실을 보면 ‘사회문제’가 보인다

배선영 간호사가 오후10시 업무 시작 전 ‘압박스타킹’을 꺼내 신었다. 간호사들은 하루종일 앉을 틈 없이 뛰어다니면서 일하기 때문에 ‘압박스타킹’을 꼭 착용하고 일한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배선영 간호사가 오후10시 업무 시작 전 ‘압박스타킹’을 꺼내 신었다. 간호사들은 하루종일 앉을 틈 없이 뛰어다니면서 일하기 때문에 ‘압박스타킹’을 꼭 착용하고 일한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오후 9시가 넘어서자 소아환자들이 몰렸다. 밤 근무조와 교대하는 시간(오후 10시)이 다가오면서 오후 근무자들의 손과 발이 더 분주해졌다. 교대시간에 맞춰 10년 차 배선영(33) 간호사가 출근했다. 배 간호사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밤 근무를 하는 일정이었다. 자리에 앉은 배 간호사는 업무 시작 전 주섬주섬 ‘압박스타킹’부터 꺼내 신었다.

오후 10시13분, 소아환자 구역 병상 4개(격리실 1곳 포함)가 처음으로 모두 찼다. 배 간호사는 “대기 환자가 2명이 더 있다”며 “1~2시간 더 대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 “소아환자인데 응급실에 갈 수 있는지” “대기를 걸어둬도 되는지”를 묻는 전화가 잇따랐다. 배 간호사는 “이런 문의가 밤새 온다”고 했는데, 실제 다음날 오전 5시를 넘어서도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픈 9살 딸아이를 이끌고 경기 포천에서 40km를 내달려 서울의료원까지 온 가족이 있었다. 7년 차 윤다윤(20대·가명) 간호사가 “아이 엄마가 왜 (포천) 주변엔 소아과 진료를 받을 수 없는지 하소연을 해왔다”면서 “소아과 야간진료를 보는 곳이 드물고 소아 응급실도 거의 없다 보니 밤에는 확실히 소아환자가 많다”고 했다. ‘소아과 진료 공백’ 문제는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새벽에도 구급차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구급차는 서울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와 전남에서까지 왔다. 유선희 기자

새벽에도 구급차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구급차는 서울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와 전남에서까지 왔다. 유선희 기자

자살시도로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는 밤사이에도 발생했다. 00시43분 40대 남성이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날만 3번째 자살시도 환자였다. 번개탄으로 인한 급성일산화탄소 중독증세다. 환자의 호흡과 산소포화도 확인, 일산화탄소 수치 파악 등으로 간호사들이 바빴다.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고압산소치료는 2기압 이상의 압력이 가해진 챔버(고압산소치료기) 안에서 호흡을 통해 고농도 산소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챔버 안에 들어가기 전 간호사들이 환자의 수액 링거, 소변줄 정리를 도왔다. 배 간호사는 고압산소치료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챙겼다. 치료는 2시간20분여 정도 소요된 새벽 3시51분이 돼서야 끝났다. 환자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배 간호사는 “최근 코로나19 종식 선언 뒤 응급환자 중 주취자들이 늘었고, 자살시도자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고 했다. 사고나 재난, 감염에 따른 환자 담당만큼이나 정신건강 관련 응급상황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진 것이다. 서울의료원은 올해 초부터 권역정신응급센터도 문을 열어 조현병 등 신체적 내·외상 정신질환자를 받고 있다. 의료원에 따르면 하루 평균 2.5명의 정신응급환자들(자살시도 포함)이 응급실을 찾고 있다.

새벽 4시12분, 전남 해남에서 대퇴부 골절 환자가 도착했다. 해남의 한 요양원에서 온 환자라고 했다. 무려 400km가 넘는 곳까지 올 때는 응급실에 문의를 해왔을 법도 하지만, 아무런 고지나 정보교류 없이 옮겨진 환자였다. 환자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어 모든 의료진이 분주했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땅끝마을에서 서울의료원까지 온 모양이었다. 취약계층 진료의 ‘최종기지’인 이곳에서 결국 응급처치가 진행됐다.

윤 간호사가 전화 문의 온 내용을 사내 메신저를 통해 의료진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이날 밤새도록 “소아환자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 문의가 빗발쳤다. 유선희 기자

윤 간호사가 전화 문의 온 내용을 사내 메신저를 통해 의료진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이날 밤새도록 “소아환자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 문의가 빗발쳤다. 유선희 기자

오전 5시41분쯤 퇴원하는 환자 보호자가 출입구 앞 창구에서 진료비를 내는 모습이 간호사들 책상 앞에 놓인 모니터 옆 화면에 잡혔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이 화면으로 구급차가 오가는 것을 보고 때로는 환자들의 상태도 확인한다. 화면 뒤로 날이 훤했다. 하루가 지나 이튿날이 밝은 것이었다. “저희도 이 모니터 화면을 보고 아침이 왔구나 알아요.” 윤 간호사가 말했다. 그제야 동행 취재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취재를 마친 오전 7시, 응급실에는 해남에서 온 응급환자를 포함해 또 다른 환자 1명, 소아환자 1명 등 3명이 남아 있었다.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안도감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쉴 틈 없이 착실히 진행되는 간호업무에 안도했고, 동시에 열악한 업무환경과 처우에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누군가는 오늘도 근무시간 내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다 마시지 못할테고, 누군가는 4시간 넘게 환자를 설득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수백㎞ 밖의 환자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주사기를 빼앗아 휘두르는 공포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응급실의 불은 24시간 꺼질틈이 없었고, 응급실의 또 다른 하루는 어김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싸우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노동환경이나 성차별적 편견만이 아닙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 싸우고,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과 싸우고, 잊혀져가는 기억과 싸웁니다. 실제 ‘싸움’이 직업인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항상 싸움의 연속입니다. 플랫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대상과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지, 지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지, 온갖 역경과 방해물에도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갑옷’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싸움의 온도와 단계도 함께 담아볼 예정입니다. 싸우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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