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주차 과태료 대신 경고장만…송파구는 왜 관대해졌나

송진식 기자

“선거철 앞두면 느슨” 주민 불편 증가

송파구의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차량들이 줄지어 불법주차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송파구의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차량들이 줄지어 불법주차해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간경향]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불법주차 차량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A씨가 거주하는 동네 주택 대부분은 1층이 주차장인 필로티 구조다. 집 앞 이면도로(골목길)는 주민 출입 및 주차장 차량 통행을 위해 주차금지구역(황색점선)으로 지정돼 있다. 그럼에도 이면도로 폭이 8m가량으로 넓다 보니 당구장, 카페 등 주변 상가에 방문한 차량들의 불법주차가 끊이질 않는다. A씨 집에서 불과 20여m 거리에 노변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공짜 주차’를 찾는 운전자가 많은 탓이다.

A씨도 한동안은 참았다. 하지만 공짜 주차 가능지역으로 입소문을 탔는지 건물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불법주차를 하는 차들이 많아졌다. 건물을 나와 도로변으로 나가는 아이들의 ‘시야’를 불법주차 차량이 가려 위험한 것도 문제였다. A씨는 송파구청에 불법주차 단속을 요청했다. 해당 차량에 과태료가 부과되면서 한동안은 불법주차가 줄어드는가 싶었다. 이렇게 해결될 줄 알았던 불법주차 문제는 송파구가 올들어 불법주차 단속방침을 ‘과태료 부과’에서 ‘경고장 부착’으로 변경하면서 되살아났다. 과태료 부과가 안 된다는 사실을 파악한 운전자들이 다시 불법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구청에 항의해봤지만 “정상적인 단속 활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속이 능사는 아냐”라지만 주민만 피해

송파구청은 현재 학교 앞이나 횡단보도 주변, 버스정류장 등의 절대주정차금지구역(이중 황색실선)은 우선 단속 및 과태료 부과를 하되 이면도로 불법주차는 신고가 있을 때만 단속을 나가고 있다. 이면도로 단속에 대해 송파구청 관계자는 “원룸 및 연립 등 주택 밀집지역 등은 만성적인 주차장 부족 문제를 겪고 있어 단속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고, 오히려 입주민 또는 지역주민 간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비교적 차량교통량이 적은 이면도로의 경우 단속원 현장방문 후 교통소통 가능 여부 등 현장 상황에 따라 1차 위반 시 경고장 부착, 2차 위반 시 과태료 부과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속과정을 보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단속원은 차량 사진을 촬영한 뒤 경고문을 발부해 앞유리창에 끼워놓고 현장을 떠난다. 해당 차주에게 차량 이동요청 등과 같은 다른 조치는 없다. 발부되는 경고장에는 “불법주정차 구역에 계속 주차할 시 과태료 부과 및 견인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과태료(4만원) 부과와 달리 경고장 발부의 경우 불법주차를 한 차주가 실질적으로 받는 불이익이나 처분은 없다. 하루종일 불법주차를 하다가 경고장을 발부받아도 경고장만 빼서 버리면 그만이다.

‘2차 위반 시 과태료’ 처분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 2차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기준이 ‘2회 적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파구청의 한 현장단속원은 “2차 위반으로 과태료 부과를 하려면 (1차 위반으로 단속된) 경고장이 해당 차량에 발부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착식도 아닌 경고장을 앞유리창에 끼워둔 채로 운행하는 운전자는 없을 뿐더러 2차 단속까지 이뤄지도록 이면도로에 장시간 불법주차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A씨는 “같은 차량을 여러 번 신고해도 반복적으로 경고장만 발부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송파구청은 “계도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불법주차 단속 신고 시 송파구청이 발부 중인 ‘불법주차 경고장’.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는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법주차 단속 신고 시 송파구청이 발부 중인 ‘불법주차 경고장’.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는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구청에서 불법주차 단속을 외면하면 피해를 보는 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경찰에 신고해봐야 “지자체 권한”이라며 출동하지 않는다. 불법주차를 한 차주에게 직접 항의할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다툼이나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A씨는 “불법주차를 해놓고도 ‘왜 신고를 하냐’며 위협하거나 내 차에 쓰레기를 던지고 가는 사례도 봤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광주에선 빌라 주차장을 가로막고 차를 댄 차주와 빌라 주인이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선거 의식한 선심행정 경계해야”

“단속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송파구청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도가 해법인 것도 아니다. 송파구청은 이미 관내 주차문제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차례 주차문제 관련 연구용역을 맡겼다. “주차장 부족 문제”를 계도의 한 사유로 드는 송파구청 말과는 달리 2020년에 송파구가 연구용역을 통해 관내 27개 동의 주정차단속 관련 빅데이터 자료를 분석해보니 “주차면 수가 부족하기보다는 생활차량(시간대별 운행차량)의 증가 여부에 따라 주차민원에 편차를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경고장을 발부하는 송파구청의 단속행정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단속방침을 과태료에서 경고장으로 변경한 배경이 행정처분의 효율성이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선거로 선출되는 지자체장이 불법주차단속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주차단속이 느슨해진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제기됐다.

송파구청의 주정차단속 실적을 보면 2017년 17만8922건에서 2018년 15만2755건, 2020년 11만6912건, 2021년 12만275건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다가 지방선거가 있던 지난해엔 9만5784건으로 최근 6년새 가장 적은 단속 건수를 나타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극심했던 2019년(5만8278건)은 제외한 결과다. 올해는 8월까지 6만6861건을 단속했다. 월평균 단속 건수로 추산하면 연말까지 10만 건가량 단속이 예상된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내년 4월에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가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주차단속 권한이 1990년대 들어 서울시에서 관할 구청장에게 넘어간 뒤로 선거철을 앞두고 구청장 성향에 따라선 주차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권한이나 재량이 다 구청장에게 있다 보니 서울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송파구청이 민원대응이나 단속과정의 편의를 위한 행정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주차단속을 요구하는 민원만큼이나 단속에 항의하는 민원도 극심하다”며 “결국은 누구 목소리가 더 크냐에 따라 구청의 대응도 달라지는데, 송파구청의 경우 단속 항의 민원이 더 강하니까 계도 방침을 도입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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