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이 다르지 않은 불교의 가르침 따라 ‘차별’도 사라지길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유기견과 함께 절로 가는 마음

얼마 전 BBS제주불교방송의 초청으로 서귀포 해안가에 위치한 사찰 약천사의 주지 스님과 만날 일이 있었다. 살면서 주지 스님과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인사 예법이 있는지도 몰랐다. 즉석에서 기자님에게 불교식 인사를 배워 어설프게 따라하고는 자리에 앉아 스님이 내려준 연한 블랙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우리 소개를 했다. 제주 마당에 방치되어있던 개들을 아이돌이라는 설정 아래 입양 홍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는데 왠지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K팝 세계관인데요. 아이돌이요, 그러니까 BTS 같은 건데…”라고 새삼 세속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을 나열하다 아무튼 유기견의 가족을 찾아주고 있다고 오렌지의 포토카드를 대뜸 내밀었다. 제주에서 흔히 보아왔을 시골 잡종개의 얼굴이 찍힌 포토카드를 들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스님에게 서둘러 우리가 평소에 약천사를 좋아해 즐겨 찾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반려견과 여기저기 산책하다 보면 종종 종교 시설을 지나게 되는데 다른 종교 시설에서는 입구를 서성거리기만 해도 쫓겨나는 일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 대형 성당 앞을 지나다 잠시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쉬려는데 관계자가 삿대질을 하며 여기에 개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소리 질렀던 일도 생각났다. 그에 반해 절은 개와 함께 걸어도 되는 곳이 많아서 자주 다니게 된다고.

지난봄 제주 서귀포 해안가 약천사에 동행한 유기견 오렌지. 불상 앞에서 마치 가족을 찾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는 느낌이다.

지난봄 제주 서귀포 해안가 약천사에 동행한 유기견 오렌지. 불상 앞에서 마치 가족을 찾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는 느낌이다.

“당연한 것이에요.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 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육지 사찰들에서는 로드킬과 안락사당한 동물들을 위한 천도재를 열기도 한다는 이야기, 제주에 아직 반려동물 장묘 시설이 없는데 절에서 먼저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이야기나, 법당에서 반려견과 함께 기도하고 싶어 머뭇거리는 불자들에게 그냥 품에 안고 들어가라고 했다는 일화나, 한편으로 법당 앞 잔디밭에 소변을 보면 그 자리만 누렇게 변해 고민이라며 ‘펫티켓’에 대한 이야기까지. 스님과 헤어지고 오렌지, 금배와 함께 대웅전 계단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초대받지 않았다는 것과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일까? 날이 선 적대적인 감정들은 동물 또한 똑같이 느낄 것이다. 가만히 앉아 불경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사실 차별이란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견 오렌지는 제주에서 흔히 볼수 있는 중대형 잡종견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유기견 오렌지는 제주에서 흔히 볼수 있는 중대형 잡종견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공간에 당연히 함께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 이 단순한 말은 좀처럼 쉽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누구든 함께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피곤하고 골치 아프니 많은 공간들이 그냥 문을 걸어 잠그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법을 택한다. 우리가 지금껏 이 지면을 통해 써온 글들은 사실 그렇게 배제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집 안에서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골개들이 짧은 줄에 매인 채로 평생 얼마나 고단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사람들이 곁을 내어주는 반려견으로 선호되지 않는 중대형 잡종개들 또한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개에게 쉽게 문제행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실 다른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의 편협한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시끄럽고 자극이 가득한 인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개들의 입장을 신경다양인의 관점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카페나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어린이나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은 이들을 쫓아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우월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와, 같은 이유로 개들과 공원 산책길에서 쫓겨났던 경험도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유기견이라는 범주와 연민의 영역에서조차 지워지는 진돗개와 믹스견 이야기도 했다. 시골 잡종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한국에서 약자를 대하는 방식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차별은 항상 대상을 달리할 뿐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것이다.

성별·인종·장애인…여전한 편견
반려동물에게도 마찬가지의 시선
누군가에겐 가족, 누군가에겐 짐승
약자를 대하는 방식, 전환 되길

반려견과 산책을 하며 얻은 경험
종교 중엔 불교가 가장 너그러워
제주에 반려동물 장묘·추모 공간
약천사 주지스님의 뜻도 실현 되길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차별의 개념이 발견되고 이름 붙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선언 이래로, 그럼에도 여전히 그 사람 안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에 하나하나 이름표가 붙어왔다. 노동자, 유색인종, 여성, 장애인, 어린이, 성소수자… 그 안에서도 아직 여전히 포함되지 않고 차별받는 존재들에게 지금도 끝없이 새로운 이름표가 붙고 있다. 사회 진보의 역사란 다름 아니라 모든 각각의 존재에 딱 맞는 이름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다르게 표현하자면 당연했던 역사 속에서 그 존재들이 겪어온 일들에 차별이나 폭력이라는 이름이 붙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범죄, 흉악 성폭력 범죄 사건이 연일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흉흉하다며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이어지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세상이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과 무력감이나 좌절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러한 사건들이 과거에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에는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고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연인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열적인 사랑의 표현이고 스토킹은 절절한 순애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정조를 잃은 일은 수치스러워 쉬쉬하며 넘어가고, 도리어 그 일을 무마할 수 있는 묘안으로 가해자와 결혼하기가 적극 권장되고 심지어 그런 사연이 러브스토리로 치장되어 대중매체에서 심심찮게 다뤄지기도 했다. 우리는 좌절하기보다는 이전에 폭력은커녕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던 일들에 이제는 폭력과 차별이라는 이름표가 붙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문제로 본다는 점에 더 주목하려고 애쓴다. 지금도 그런 개인의 불운이 왜 폭력이고 차별이냐며 부정하려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그렇기에 계속해서 차별의 개념을 발견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소풍 장소이자 체험 학습장으로 여겨졌던 동물원에 대해 최근 들어 야생동물들을 가둬두고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를 만나는 일이 돌고래들을 위한 일이 아님을 이젠 모두가 알고 있다. 최근 ‘국내 1위 몰티즈 켄넬’로 불리던 경기 화성시의 반려동물 허가 번식장의 운영 실태가 밝혀지며 공분을 사는 일이 있었다. 죽은 엄마개의 배를 가르거나 냉동고에 사체를 보관하는 등의 동물학대부터 현직 경찰관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엄마개의 출산에 따라 배당금을 챙기며 불법적으로 운영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어느 번화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쇼윈도에 진열된 개들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 같은 개를 마트나 펫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으며 학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폭력과 학대가 더 많아진 것이 아니라 마침내 제 이름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가끔씩은 듣기조차 괴로운 뉴스들에 귀를 막고 싶었던 적이 있다. 차마 마주하기도 버거운 사건들이 연일 벌어질 때면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될 것만 같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에 눈 돌리지 않고 분노하고 싶어졌다.

이런 우리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별게 다 차별이고 폭력이라며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당신의 세상이 너무나 편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다. 모두를 쫓아내고 빗장을 걸어 잠근 공간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세상은 조용하고 안락할지는 몰라도 점점 좁아질 것이다. 종종 우리의 글에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들은 글을 닫고 당장 주변인에게 ‘글쎄, 그렇게 큰 개랑 어떻게 실내에서 살아’ ‘진돗개가 얼마나 사나운지 몰라서 그래. 개물림 사고가 왜 발생하는데’ ‘작은 유기견들이나 불쌍하지 크고 사나운 똥개들은 그렇게 사는 게 맞지, 뭘’이라고 한다면 쉽게 공감받을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보편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옳다고 믿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는 거슬리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카프카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책들은 대부분 읽기 편안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문장들을 곱씹어보다가 내가 믿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쉬운 아름답고 편한 이야기보다는 불편하고 거슬리는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입속의 혀 같은 글 말고, 모른 척하고 싶어도 자꾸만 거슬리는 입속 혓바늘 같은 글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초대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을 사람에게는 우리의 글이 반가운 초대장이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글을 쓸 때면 종종 외딴 섬에서 망망대해로 부표를 띄우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불편한 글이겠지만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그리고 홀로 표류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붙잡을 수 있는 위로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우당탕탕 귤엔터]인간과 동물이 다르지 않은 불교의 가르침 따라 ‘차별’도 사라지길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최근 이 여정을 담은 책 <우리는 귤멍멍이 유기견 아이돌>을 썼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