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어떻게 읽으세요?

유튜브도 독서인가

허진무 기자


유튜브 다음은 뭐지? 다시 종이책이 아닐까?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2019년 이렇게 말했다. 책을 통해 “누군가의 내면, 생각과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총합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크기와 무게가 있고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은 조금 다르다. 유튜브 영상 시청을 ‘독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독서율은 곤두박질친다. 21세기 현대인들은 어떻게 책을 ‘읽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유튜브 시청을 독서로 생각하는 사람들부터 여전히 책의 세계에 기꺼이 머물기를 택한 ‘독서중독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읽고 싶지만, 무엇을 어디서 읽어야 할지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독서 지도’를 그리고, 함께 책을 읽어나갈 가이드나 동료를 찾아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2회에 걸쳐 유튜브와 종이책의 세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 물었다. “요즘, 책 어떻게 읽으세요?”

이영경·허진무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요즘, 책 어떻게 읽으세요?]유튜브도 독서인가
유튜브 ‘너 진짜 똑똑하다’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 ‘너 진짜 똑똑하다’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 ‘겨울서점’이 교보문고에서 구매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 ‘겨울서점’이 교보문고에서 구매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요즘, 책 어떻게 읽으세요?]유튜브도 독서인가

취업준비생 박준형씨(27)는 지식 유튜브의 ‘애독자’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서, 식사를 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하루 대여섯 시간 유튜브를 본다. 주로 구독하는 채널은 ‘너 진짜 똑똑하다’ ‘향문천’ ‘WLDO’ 등의 인문학, 과학, 경제, 시사 관련 유튜브이다. 박씨는 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시집은 종이책을 읽지만 비문학 분야 책은 핵심을 요약·정리한 유튜브 영상으로 받아들인다.

박씨는 “독서에 내포된 의미는 ‘지식을 익힌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에 지식을 익히는 매체가 파피루스에서 종이로 바뀌었듯이, 현대에는 활자에서 영상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 유튜브도 여러 전문 서적을 참고해 대본을 만들죠. 글에 적절한 소리나 이미지를 추가한 것인데 ‘책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생각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도구로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박씨 말고도 많다. 서울기술연구원은 지난 3월 서울시민 1037명을 대상으로 독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10대의 19.6%, 20대의 13.5%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까지 독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한국인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만 19세 이상 성인 중 지난 1년간 교과서, 학습서, 수험서를 제외한 일반 도서를 1권 이상 읽은 ‘독서 인구’ 비율은 40.7%였다. 1994년 첫 조사 86.8%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가성비’를 따지는 현대인의 독서법

경향신문은 유튜브 시청을 독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각자의 독서관(讀書觀)을 들었다. 이들은 독서의 목적을 ‘지식 습득’이라고 규정했고, ‘가성비 좋은 독서’를 추구했다. 투자한 시간 대비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튜브를 학교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공부에 활용하기도 했다.

박준형씨는 “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바쁜 현대인에게는 요약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튜브가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에는 공감해요.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같은 말을 반복한다든가 예시가 너무 많다든가 필요 없는 부분이 많은 경우도 있더라고요. 영상이 책의 모든 걸 알려주지는 않지만 책이 영상보다 우월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유튜브가 가치 있는 지식을 ‘큐레이션’(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한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독서는 적잖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책은 스마트폰에 비해 무겁고 커서 불편하다고 했다.

대학생 이충선씨(25)는 “종이책을 찾아서 읽을 시간이면 유튜브로 짧은 독서를 한번 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책’을 찾는 것도 일이잖아요. 1개를 얻을 시간에 10개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유튜브 알고리즘 기술이 저에게 맞는 영상을 계속 띄워줘 취향에 맞는 독서를 할 수 있어요. 책은 중간쯤 읽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배신감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유튜브는 화면을 밀어버리면 끝나죠.”

유튜브 시청이 관련된 책 읽기로 이어지는 일은 적었다. 유튜브 영상도 각자의 분야에서 학위나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 만든 콘텐츠여서 충분하다고 봤다. 어려운 책은 직접 읽어 해석하기보다 전문가의 해석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씨는 “유튜브를 보고 흥미가 생기면 책을 사기도 하지만 보통은 (전문가의 해석이) 내 해석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해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명한 책은 전문가들이 해석한 영상이 많은데 제 해석이 그 사람들보다 뛰어나진 않을 테니까요. 영상 분량도 30~40분 정도예요. ‘아는 척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출판시장의 핵심이 된 유튜브

(왼쪽부터)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PD의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유튜버 ‘과학드림(김정훈)’의 <과학드림의 이상하게 빠져드는 과학책>, 유튜버 ‘흔한남매’의 콘텐츠를 만화로 만든 <흔한남매> 시리즈. 위즈덤하우스·더퀘스트·미래엔아이세움

(왼쪽부터)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PD의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유튜버 ‘과학드림(김정훈)’의 <과학드림의 이상하게 빠져드는 과학책>, 유튜버 ‘흔한남매’의 콘텐츠를 만화로 만든 <흔한남매> 시리즈. 위즈덤하우스·더퀘스트·미래엔아이세움

유튜브는 종이책 출판시장까지 진출했다. 2019년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 PD가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출간해 ‘대박’이 터진 이후 인기 유튜버가 지은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충선씨가 지난해 유일하게 구입한 책은 <과학드림의 이상하게 빠져드는 과학책>이었다. 과학 전문잡지 기자 출신 유튜버 ‘과학드림(김정훈)’이 지은 과학 교양서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추천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구독자 263만명의 유튜버 ‘흔한남매’의 콘텐츠를 만화로 만든 <흔한남매> 시리즈는 아동만화 분야 베스트셀러 차트를 장악했다. 구독자 109만명의 유튜버 ‘부동산읽어주는남자(정태익)’가 지은 <운명을 바꾸는 부동산 투자 수업>은 지난해 교보문고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은 “유튜브는 출판시장의 핵심이 됐다”고 전했다. 진 과장은 “유명 유튜버가 소개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고, 출판사가 유튜버를 섭외해 책을 내기도 한다”며 “출판사나 서점이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었지만 책을 콘텐츠로 삼은 유튜브인 이른바 ‘북튜브’를 보는 사람은 많아졌다. 북튜브 ‘너 진짜 똑똑하다’는 구독자가 107만명에 달한다. 현대적 감각에 맞게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입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소개한다. ‘겨울서점’(구독자 26만명)도 다양한 문학과 비문학을 망라하며 세밀하게 평가해 인기가 높다. 겨울서점 운영자 김겨울은 MBC 라디오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도 진행한다. ‘공백의 책단장’(구독자 6만명)은 책 소개는 물론 독서법, 메모법, 필사법 등도 다룬다.

책의 가치는 ‘경험’이다

영상의 시대에도 책의 가치를 역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북튜버들은 ‘유튜브가 책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북튜브 ‘너 진짜 똑똑하다’를 운영하는 북튜버 김송은 “저희 콘텐츠가 독서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책을 읽지 않던 분들이 책을 읽는 변화의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문학의 경우 핵심 줄거리를 피하면서 내용을 재구성해 실제 독서를 대체할 여지를 없애려고 합니다. 영상 후반부의 해설을 위한 최소한의 설명만을 하죠. 책을 대체하려는 의도로 영상을 클릭하시는 구독자들도 다양한 독서로 이끌고 싶습니다.”

북튜버 공백은 “콘텐츠를 만들면서 제가 가장 핵심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책을 읽는 삶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이라며 “유튜브 콘텐츠와 독서는 분명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지금처럼 ‘쇼츠’나 ‘릴스’ 같은 쇼트폼들이 대세인 경우 책의 내용을 영상으로 온전히 전달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여러 방면에서 다채로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독서는 살면서 결코 닿지 못하는 영역을 헤아리게 해줘요. 타인의 사연과 이야기,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독서 덕분에 스스로 품이 조금 넓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북튜버 김겨울은 “콘텐츠를 제작할 때 직접 책을 읽는 경험으로 연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에 능동적으로 뛰어들어 타인이 돼 보는 경험이에요. 책은 독자에게 능동성을 요구하지만, 유튜브는 독자를 수동적으로 만들죠. 단순한 정보를 찾는 데는 유튜브가 도움이 되겠지만 완벽하게 책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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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구 감소에 따른 문해력과 사고력의 저하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2020년 성인 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 중에서 중학교 이하 수준의 국어 학습이 필요한 성인은 20.2%(약 890만명)에 달했다. 교육부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국어 기초학력에 미달한 고등학교 2학년 비율은 2019년 4.0%, 2020년 6.8%, 2021년 7.1%로 증가했다.

최근 ‘사흘’을 ‘4일’로 오해한 누리꾼,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한 대학생의 사례가 언론에 기사화될 만큼 논란이었다. 일각에선 ‘MZ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며 한탄하지만 사실 문해력과 독서율 위기는 ‘윗세대’가 더 심각하다. 2020년 ‘성인 문해능력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교 이하 수준 비율이 20대(18세 이상)와 30대는 모두 4.7%였다. 이 비율은 40대 8.5%, 50대 16.2%, 60대 35.6%, 70대 58.9%, 80세 이상 77.1%로 급격하게 올랐다.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 인구 비율은 20대 60.3%, 30대 56.3%, 40대 44.4%, 50대 33.9%, 60대 이상 22.7%로 나이가 들수록 줄었다.

민음사 대표 출신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을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소통 수단이라고 보면 ‘유튜브 시청도 독서의 일종’이라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면서도 “지혜와 통찰을 경험하는 독서의 본질적 차원에선 유튜브 시청이 완전한 의미에서의 독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서의 본질은 공부가 아니라 체험입니다. 책은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지혜와 통찰의 매체예요. 어떤 지혜와 통찰은 충분한 시간과 길이 없이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요약된 영상으로는 독서의 깊은 체험이 불가능합니다. 고흐의 그림을 감상하지 않고 정보만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잖아요.”

장 대표는 “긴 글을 읽으며 읽기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상적인 훈련이 약해지면 심층적인 문해력까지 약해진다”며 “민주주의도 문해력이 약해지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글과 말을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시민을 전제하죠. 중세에는 귀족만이 그런 능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문해력이 양극화되면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 위기가 올 수 있어요.”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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