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활임금제 도입 10년, 지자체 2곳 중 1곳 시행···민간 확산은 한계

강현석 기자
지난 9월 19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시민단체가 부산시 생활임금의 대폭 인상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민중행동 제공.

지난 9월 19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시민단체가 부산시 생활임금의 대폭 인상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민중행동 제공.

광주광역시청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는 A씨는 내년부터 임금으로 월 266만6840원(시급 1만2760원)을 받는다. 정부가 발표한 2024년 최저임금인 시급 9860원(월 206만740원)과 비교하면 월 급여가 60만원 더 많다.

A씨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은 광주시가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임금은 주거비와 교육비, 문화비 등을 고려해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일컫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최저임금과는 별도로 조례를 통해 공무원이 아닌 지자체 소속이나 산하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생활임금이 도입 10년째를 맞았다. 생활임금은 지난 10년간 전국 지자체 2곳 중 1곳이 도입하는 등 성과가 있지만 민간으로 확산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도 있다.

2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생활임금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 만에 전국 17곳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이 제도를 도입했다.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생활임금을 도입하지 않았던 대구시도 지난 8월 ‘대구광역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고 내년부터 생활임금을 지급한다.

지자체에 생활임금이 처음 도입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가 구청 공공부분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생활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경기 부천시는 같은 해 ‘생활임금 조례’를 처음으로 제정했다.

노원구가 노원구서비스공단 노동자 68명에게 첫 지급한 생활임금은 시급 6490원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시급 4860원)보다 25.2%나 높았다. 이후 서울시와 경기도 등 광역자치단체 등도 생활임금을 잇따라 도입하기 시작했다.

현재 생활임금을 도입한 곳은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의 절반이 넘는 120곳(53%)에 달한다.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도입했고 전체 229곳 시·군·구 중 112곳(48.9%)도 생활임금을 지급한다.

‘저임금 노동자 삶의 질 개선’ 이라는 취지로 도입된 지자체 생활임금은 그동안 정부가 고시한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았다. 광역지자체의 평균 생활임금은 2019년 시급 9608원으로 당시 최저임금(시급 8350원)보다 13.1%(1258원) 많았다.

2020년에는 처음으로 시급 1만원(1만115원)을 돌파했다. 당시 최저임금은 8590원 이었다. 2021년 1만321원, 2022년 1만734원, 올해는 1만1162원 이었다. 같은 기간 최저임금은 각각 8720원, 9160원, 9620원으로 1만원을 넘지 못했다.

생활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적용 대상이 지자체 소속이나 산하 공공기관, 민간위탁 사업 노동자로 한정돼 있다. 도입 당시에는 공공부분에서 먼저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면 민간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생활임금을 적용하는 민간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생활임금이 ‘공공부분 최저임금’ 역할을 하면서 정부의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민간 저임금 노동자들과의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들은 “생활임금이 민간부분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확산을 위한 정책을 펴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도가 거의 유일하게 생활임금을 도입한 민간기업에게 공공계약을 할 때 가산점을 주고 있으나 이를 적용한 기업은 45개에 불과하다.

지자체 재정 형편에 따라 생활임금 도입 여부가 갈리는 것도 문제다. 상대적으로 재정 형편이 나은 서울과 경기도는 모든 시·군·구에서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광주와 대전도 모든 기초지자체가 생활임금을 시행한다. 부산과 인천도 각각 12곳과 6곳 기초지자체가 조례를 갖고 있다.

반면 충북과 경남에서는 생활임금을 도입한 시·군이 없다. 강원도와 경북에서도 각 1곳 기초지자체만이 제도를 도입했다. 전북(4곳), 전남(6곳), 충남(6곳) 등도 제도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많지 않다.

전남 순천처럼 조례가 제정됐지만 ‘재정이 어렵다’며 시행하지 않는 곳도 있다. 별도 교육조례를 제정하는 17개 시·도교육청 중에서는 서울과 경기, 부산, 대전, 전남, 충북, 제주 등 7곳만 생활임금을 적용한다.

지자체에 따라 임금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올해 광역자치단체의 생활임금을 보면 대전은 시급 1만800원이지만 가장 높은 광주는 1만1930원으로 1130원이나 차이가 난다.

동일 생활권인 지자체 사이에서도 차이가 상당하다. 경기도 지역 지자체의 올해 생활임금을 보면 동두천시(1만70원), 수원시(1만390원), 오산시(1만440원), 가평군(1만470원) 등은 1만원 초반이다. 하지만 경기도(1만1485원), 성남시(1만1400원), 부천시(1만1400원) 등은 1000원 정도 더 많다.

기우식 참여자치 21 사무처장은 “생활임금 취지를 생각한다면 같은 생활권에 있는 인접 지자체들은 비슷한 임금 수준이 책정돼야 한다”면서 “민간으로 확대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지자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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