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어딘가에서 분투하고 있을 별종과 잡종들의 건투를 빈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2년의 ‘여정’을 마치며

얼마 전 오렌지, 금배와 반려견 동반 식당에 갔었던 날의 일이다. 날씨가 무척 좋아 가게 통창이 활짝 열려있었고 우리는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오렌지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산책도 충분히 마치고 챙겨온 방석을 펼쳐 그 위에서 간식을 여러 번 주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나니,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허리에 매어놓은 강아지들의 줄을 짧게 줄이고 막 첫술을 뜨려던 참에 갑자기 어디선가 줄을 매지 않은 골든리트리버 종의 개가 뛰어오더니 오렌지의 코앞에 떡하니 섰다. 너무 놀라 황급히 금배와 오렌지를 몸으로 가리며 추스르는데 어떤 사람이 뒤따라 나타나 개의 이름을 부르더니 줄을 매었다. 식당 주차장에 막 도착한 손님들이었는데 줄을 매지 않은 채로 차 문을 열어 개가 먼저 뛰쳐나온 듯했다. 줄에 매인 그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자칫하면 크게 싸움이 붙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산책 중인 ‘귤엔터’ 구낙현 대표와 오렌지. 필자는 그동안 ‘우당탕탕 귤엔터’ 지면을 통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차별적인지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산책 중인 ‘귤엔터’ 구낙현 대표와 오렌지. 필자는 그동안 ‘우당탕탕 귤엔터’ 지면을 통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차별적인지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상황이 진정되고 식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개가 자꾸만 자리에서 벗어나 우리 쪽을 기웃거리는 것 아닌가. 개의 줄은 보호자의 손이나 의자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개 등 위에 얹혀 있었다. 개가 다시 우리에게 뛰어올까 우려되었고, 오렌지에게 나쁜 기억을 심어준 것 같아 무척 속이 상했다. 그 손님과 개들은 언젠가 SNS에서 보았던 펫인플루언서 가족이었는데, 최근 게시물을 보니 마침 제주에 놀러와 해변에서 찍은 영상이 있었다. 줄을 매지 않은 개들이 보호자가 애타게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해맑게 뛰어다니는 영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애정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주거환경상 큰 개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곳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인지라 개들을 줄 없이 편하게 다니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방금 크게 싸울 뻔한 상황 직후에도 습관처럼 줄을 놓고 있는 여유로움이 놀라웠다. 만약 그 개들이 리트리버가 아니라 흰 진돗개나 누렁이였어도 저렇게 습관적으로 줄을 풀고 개가 활보하게 둘 수 있었을까? 리트리버는 누구에게나 친화적이며 사랑스럽고 천사 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이미지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개들의 실제 성격이나 상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개의 품종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때문에 말이다. 만약 큰 진돗개들이 해변을 뛰어다니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SNS에 업로드했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웃기고 사랑스럽고 자유로워보여 좋다고 반응했을까? 아마 사납고 위험한 개를 똑바로 관리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다른 일로, 얼마 전 한 진돗개 보호자가 산책 중 겪은 일이라며 SNS에서 공개한 일화를 본 적 있다. 내용인즉 산책 중에 마주 오던 행인이 개가 무서우니 줄을 잘 잡으라고 하여 한쪽으로 비켜서 줄을 짧게 잡은 뒤 지나가시라고 했고, 행인은 입마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며 지나갔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중대형 잡종개와 산책하면 매일 겪는 상황이라 놀랍지 않다. 다만 우리를 기운 빠지게 한 것은 그 진돗개 보호자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아까 그 행인이 산책 줄도 매지 않은 채 풀려있는 비숑을 귀엽다며 만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그 비숑은 글쓴이의 개를 보고 사납게 짖어댔고 결국 그 비숑을 피해 시무룩하게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약자의 위치에 서면 누구나 듣는 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얼마나 허술하고 차별적인가
대상을 소유물로 여긴다는 점에서 동물학대는 아동학대와 똑같다

개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넘쳐도 필요로 하는 것의 논의는 부족한 현실
작은 경험이 아예 덧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건 큰 위로다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이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 산책에서도 금배와 오렌지를 향해 두 발로 일어서서 사납게 짖는 푸들을 보며 무던하게 지나치는 연습을 하면서 방어적인 산책을 하고 온 참이다. 이런 작은 개들의 보호자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개에게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쟤네들 한입 거리도 안 돼. 까불지 마.” 작은 개가 큰 개를 향해 짖는 모습을 보면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도 작은 개가 귀여운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웃어넘기곤 한다. 인터넷에서도 소형견의 공격성이 유머처럼 소비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몰티즈는 참지 않는다’는 농담이나 치와와가 자신을 쓰다듬는 보호자의 손을 물고 있는 유머 영상 같은 것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런 유머 콘텐츠 속 강아지들의 모습은 대부분 공격성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몰티즈나 치와와 같은 친숙하고 작은 개는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금배와 오렌지

금배와 오렌지

중대형 잡종견인 우리 개들은 혹시 짖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할까 봐 다른 개를 보고 의젓하게 지나가는 것을 매일 연습한다. 사실 중대형견 보호자들이 지켜야 한다고 여겨지는 규칙은 개의 크기나 품종에 관계없이 모두가 지켜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고 착하다고 알려진 품종이거나 작은 개라면 손쉽게 책임을 면제받는다. 우리는 산책 중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도 개들이 옆에 앉아 보호자에게 집중하기, 좁은 길을 걸을 때는 옆에 바짝 붙어 걷기, 그럼에도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에게조차도 놀라 짖지 않기 등을 연습하며 많은 시간 긴장한 채로 걷는다. 반면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천진난만하게 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산책을 즐기는 보호자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당혹감이 앞선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자신의 개에게 호의적일 것이라는 확신에 찬 모습이 가끔은 부럽기까지 하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왜 이렇게 산책을 편하게 즐기지 못하고 억척같이 하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악의 없는 사람들의 불편한 행동에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화를 내면, 어떤 이들은 ‘왜 그렇게 예민하냐’ ‘일부러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닌데’ ‘그냥 넘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악의 없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지는 않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특권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자신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하는 무사태평함 말이다. 사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는 말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듣게 된다. 예를 들어 회사 관리자는 직원에게 ‘고작 휴게시간 30분 지난 것 가지고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할 수도 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예민해서 농담 하나도 할 수가 없다’ ‘아시아인들이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려서 물어본 건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 ‘장애인을 희화화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개그인 걸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 앞으로 무엇으로 웃길 수 있느냐’ ‘딸 같아서 만졌는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처럼 말이다.

예민하다는 말의 기저에는 사실 너 빼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잘못됐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너만 문제 삼고 있다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가지고 까탈스럽게 굴고 있다는 사회적 힐난까지도 함께한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태에 균열을 원하지 않는다. 현재 상태가 크게 불편하지 않을뿐더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복잡한 소통 과정을 통해 분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당탕탕 귤엔터’ 지면을 통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차별적인지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개를 통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차별은 그 대상만 달리할 뿐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반복된다. 개를 사랑하고 유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개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사람이 개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개들이 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개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넘쳐나는 것에 반해 개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부족하다. 이것은 마치 스토킹범죄나 데이트폭력이 절절한 순애보나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자 범죄라는 사실에 대해 지난하게 설득하고 합의해온 과정과 닮아있다. 피해자보다는 사랑을 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체에 오랜 기간 귀를 기울여왔지만, 이제는 피해자의 감정과 상황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날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 동물학대가 아동학대와 마찬가지로 대상을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마음대로 해도 되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개들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놓아둔 채 문제행동을 한다고 쉽게 낙인찍고 비난하는 현상이 신경 전형인 위주의 세상에서 신경 다양인들(ADHD, 자폐스펙트럼 등)을 골칫덩이 취급하는 것과 닮아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회차를 거듭하며 밝혀온 개인적인 폭력의 경험들은 사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에 올릴 만큼 재미있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나의 경험이 시골잡종개들의 삶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되면서부터이다. 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개들에 비해 운 좋게 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하기에 썩 유쾌한 일은 아닐지라도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아직 삶의 면면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개들의 상황을 잘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꽤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나의 말로 동물들이 겪고 있는 일들 모두를 해석할 수 있다거나 공감한다고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는 않는다. 다만 도움이 되었다면 개인적인 폭력의 경험이 아예 덧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작은 위로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난 2년 동안 ‘우당탕탕 귤엔터’ 여정에 함께해준 독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다.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별종과 잡종들의 건투를 빈다. <연재 끝>



[우당탕탕 귤엔터]“안녕~” 어딘가에서 분투하고 있을 별종과 잡종들의 건투를 빈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최근 이 여정을 담은 책 <우리는 귤멍멍이 유기견 아이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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