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통과만으론 끝이 아니다…‘개 식용 금지’ 이후 남은 것

배시은 기자
지난 16일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12년 전 개 농장에서 구조된 도사견 ‘초코’가 간식을 받아먹고 있다. 배시은 기자

지난 16일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12년 전 개 농장에서 구조된 도사견 ‘초코’가 간식을 받아먹고 있다. 배시은 기자

“대형견 견사가 턱없이 부족해요. 지금도 구조된 도사견들은 외부에 위탁을 맡겨 보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6일 찾은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조은희 동물자유연대 팀장이 말했다. 견사는 개 농장·도살장·길 등에서 구조된 230마리의 개로 가득 차 있었다. 복도 한쪽 일렬로 배치된 각 견사에서 활동가의 기척을 느낀 개들이 일제히 짖었다.

조 팀장은 “식용견 목적으로 길러지던 대형견들은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 때문에 여러 마리를 같이 견사에 넣으면 싸움이 날 수 있어 한 마리씩 수용해야 한다”며 “수용할 공간이 모자라 외부 보호소에 맡겨 보호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지난 9일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동물권 단체들과 동물법 전문가들은 환영과 우려의 반응을 동시에 보였다. 법 시행은 3년 뒤인 2027년. 이들은 법안 통과 이후의 후속 과제가 차질 없이 마련될 수 있을지 우려한다. 식용으로 길러지던 개들에게도, 개를 기르고 팔아 생계를 이어온 농장주들에게도 이후 3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넘쳐나는 구조견…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지난 16일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뜬장에서 구조된 개 ‘살자’가 활동가가 다가가자 멀찍이 서있다. 배시은 기자

지난 16일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뜬장에서 구조된 개 ‘살자’가 활동가가 다가가자 멀찍이 서있다. 배시은 기자

정부는 전국 개 농장에 52만마리의 식용견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주현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변호사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운영 센터들은 유기동물로 넘쳐난다”며 “개 농장에 있던 개들을 어디에다 수용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12년 전 개 농장에서 구조돼 온센터에서 지내는 도사견 ‘초코’는 사람을 잘 따르는 순한 성격임에도 입양을 가지 못했다. 조 팀장은 “식용견으로 많이 길러지는 도사견은 맹견으로 분류되고, 덩치가 커 아파트에서 키우기 어렵다. 국내 입양은 거의 갈 수 없다”며 “해외로 입양을 가거나 센터에서 생을 마감하는 개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대표 서국화 변호사는 “법 통과 후 마무리까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동물 복지 분야에서 심각한 후폭풍이 올 것”이라며 “구조될 개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충원하는 등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개들의 보호·관리에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권 단체에서는 방치 끝에 오갈 곳을 찾지 못한 개를 안락사시키는 일이 생길까봐 우려한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정부 및 지자체가 추가로 시설을 세워 개를 수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뜬장(망으로된 바닥이 공중에 떠 있는 철제 사육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구조견들 중에는 입양을 위해 사회화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사람을 만난 경험이 부족하고, 학대 트라우마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신 활동가는 “결국 법안의 목적은 동물 피해의 최소화”라며 “법의 목적을 실현하려면 구조된 개의 치료비·돌봄 훈련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개 농장주, 무조건 비난보다 전업 도와야”

1500만 반려인 연대와 한국동물연합 관계자들이 10일 국회 앞에서 개식용 금지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1500만 반려인 연대와 한국동물연합 관계자들이 10일 국회 앞에서 개식용 금지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개 농장과 도살장을 운영하는 식용견 관련 업체 종사자들의 보상과 전업도 쉽지 않은 문제다. 양종태씨(74)는 지난해 3월 동물보호단체 HSI의 도움을 받아 30년간 운영한 300평 규모의 개 농장을 정리했다. HSI는 양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했고, 농장에서 구조한 개 200마리는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양씨는 “정부에서 개 농장을 못 하게 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를 결심하던 차에 단체(HSI)에서 연락이 왔다”며 “미리 정부에서 보상 등을 얘기해서 도와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경 HSI 팀장은 “농장주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전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법안에도 개 식용 산업의 전업·폐업을 지원하는 조항이 있지만,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지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은 개 식용업 종사자에 관한 지원 조항을 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할 예정이다.

3년의 유예기간 안에 농장주가 빠르게 폐업을 결심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빠르게 폐업·전업 하는 농장주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법에 명시된 대로 개 식용 산업 현장과 보호소의 실태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농장주와 보상 지원 방안을 협의해 법을 이행할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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