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사 수진씨는 왜 임금 4만원 때문에 소송을 했을까

김지환 기자

욕설 고객 상대 후 유급 조퇴 요청했지만

고객센터장 면담 중 “조퇴는 무급 처리”

업무의 일시적 중단, 유급 처리 규정 없어

1심 패소 후 항소 제기 “지병 조퇴와 달라”

콜센터 상담사 수진씨는 왜 임금 4만원 때문에 소송을 했을까

박수진씨(43·가명)는 2019년 1월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 상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 상담사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욕설에 자주 노출된다. 박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씨는 2022년 7월4일 오전 9시47분쯤 ‘진상’ 고객을 상대했다. 신용보증 신청 후 진행 상황을 묻는 고객으로부터 “XXX아, 말귀 XX 못 알아듣네. 진짜”라는 욕설을 들었다. 욕설을 자제해달라고 했지만 고객은 “말귀를 XX 못 알아듣는데 욕을 해야지, X”라고 했다. 박씨가 ‘신청했다면 재단이 수일 내 연락할 예정’이라고 하자 고객은 “아까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 XXX아”라며 또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박씨는 “욕하시면 안 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박씨는 팀장에게 상황을 알리고 휴식을 한 뒤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가슴 두근거림, 손 떨림 등 증세가 나타났다. 박씨는 ‘도저히 계속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 휴식을 요구했고, 팀장과 면담 뒤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박씨는 두 차례 휴식에도 불안감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 진료를 위해 유급 조퇴를 요청했다. 팀장은 재단으로부터 고객센터 운영을 위탁받은 용역업체 본사 인사팀에 가능 여부를 확인 중이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박씨는 ‘병원 시간을 못 맞출 거 같아서 일단 퇴근하니 카카오톡으로 알려달라’고 한 뒤 오후 2시22분 조퇴를 하고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너무 나더라고요. 선생님이 ‘진료 뒤 진정되면 가라’며 약을 처방해주셨어요.”

고객센터장은 2022년 7월5일 면담 중 조퇴는 무급으로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그해 8월 퇴사한 박씨는 무급조퇴 처리로 받지 못한 임금 4만1057원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박씨의 조퇴를 유급으로 처리할지 여부다. ‘감정노동자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41조는 사업주는 고객 폭언으로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할 우려가 있는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업무의 일시적 중단에 유급휴가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1심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김연수 판사는 지난달 8일 “업무의 일시적 중단엔 휴식시간 부여, 외출, 조퇴, 휴가 등이 포함된다”면서도 “(산안법) 규정만으로 곧바로 노동자 요구에 의해 사업주에게 유급조퇴를 인정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급휴가를 줄 수 없다고 해석하고, 사용자에게 유급휴가 필요성에 대한 적극적 고려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면 고객응대노동자 보호를 위해 2018년 10월 시행된 감정노동자보호법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안법은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이 작업중지권은 산안법 41조가 규정한 업무의 일시적 중단과 유사한 내용이다. 작업중지권의 경우 유급으로 해석하는데 업무의 일시적 중단은 무급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씨는 지난달 22일 항소를 제기했다. 승소해도 돌려받을 수 있는 임금은 4만원가량에 불과한데 왜 박씨는 이 소송을 이어가는 것일까. 박씨는 2022년 12월 소장을 접수하면서 오히려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나선 힘을 얻었다.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한 특성화고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화를 다룬 영화다.

박씨는 30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내가 겪은 일이 지병으로 조퇴하는 것과 똑같이 다뤄지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작은 일들이 자꾸 묵인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회사가 재판부에 낸 서면을 보니 ‘노조에서 이번 일을 사건화시키려고 키운 것’이라는 주장이 있더라고요. 너무 황당했어요. 누가 퇴사하면서 사건화를 하려고 시간 내서 소송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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