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자녀 아동학대 혐의 특수교사 선고유예

김태희 기자

법원 “녹음파일 증거 인정···장애 특수성 고려해야”

주호민씨. 연합뉴스

주호민씨. 연합뉴스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에 대한 벌금형의 선고가 유예됐다. 위법성 논란이 일었던 녹음 파일에 대해 법원은 “장애 학생을 상대로 한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1일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선고유예는 죄는 인정하지만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됐던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은 인정됐다. 곽 판사는 이 사건의 쟁점이 됐던 ‘녹음 파일’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면서도 “그러나 대화의 녹음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곽 판사는 “피해자는 이미 4세 때 자폐성 장애로 장애인으로 등록됐으며,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아동학대 범행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점, 피해자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모친 입장에서 신속하게 이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곽 판사는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이나 방어 및 표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 교실과 달리 이 사건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맞춤 학습실에서 소수의 장애 학생만 피고인의 수업을 듣고 있었으므로 말로 이뤄지는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모친의 녹음행위는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수업은 공교육으로, 녹음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생활의 비밀 침해보다는 아동을 보호할 이익이 충분하다”면서 “정당성이 인정됨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곽 판사는 A씨가 했던 발언 5가지 중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이야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고 말한 1가지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했다. “밉상이네, 머릿속에 뭐가 들었어” 등 나머지 발언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곽 판사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피해자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표현들이고, 그 과정에서 ‘너’, ‘싫어’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섞어 사용함으로써 그 부정적 의미나 피고인의 부정적 감정 상태가 그대로 피해자에게 전달됐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위험이 충분히 존재하고, 특수교사인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에는 주씨가 직접 참석했다. 방청객 중 일부는 피고인에게 유죄가 인정되자 주씨를 향해 소리치기도 했다.

주씨는 판결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자기 자식이 학대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부모로서는 반갑거나 전혀 기쁘지 않다”며 “이 사건이 장애 부모와 특수교사들 간에 어떤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둘은 끝까지 협력해서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해되길 바라냐’는 질문에 “특수교사 선생님의 사정을 보면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가중된 스트레스가 있었고 특수반도 과밀학급이어서 제도적 미비함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며 “또 학교나 교육청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선) 여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A씨의 변호인은 1심 판결에 반발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A씨 측 변호인인 김기윤 변호사는 “(피해 아동 측이)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했는데 경기도교육청 고문 변호사로서 재판부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몰래 녹음에 대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A 교사는 이번 선고와 관련해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가져준 국민과 경기도 교육감, 학부모,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표했다”며 “교육청에서는 수업 시간에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린 만큼 앞으로 차분하게 항소심에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이날 별도의 입장을 내고 “여러 상황을 감안하여 법원이 선고한 것은 이해하지만, 궁극적으로 유죄가 나온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감내하기 힘든 상황을 참아가며 버텨온 선생님의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녹음한 것이 법적증거로 인정되면 교육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수교육을 더 이상 확대하기 어려워지면, 특수학생이 받는 공교육 혜택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특수교육과 공교육 현장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A씨는 2022년 9월 13일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 교실에서 주씨 아들(당세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발언하는 등 피해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교원단체들은 “교육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전국특수교사노조는 “이번 판결은 특수교사가 교육활동을 위해 노력한 과정에서 발생한 일임을 참작하지 않았다”며 “장애인이 배움으로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불법적인 자료로라도 옹호해야 할 만큼 일반인과 다른 존재’라고 인식되는 데 한 몫을 더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번 판결은 몰래 녹음을 인정해 학교현장을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교육방법이 제한적인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함에도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왜곡한 판결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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