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영구동토층 녹으니 암 유발 ‘라돈’ 스멀스멀

이정호 기자

중 연구진, ‘영구동토층’ 손상 영향 분석

라돈 방어막 역할 못해 건물로 침투 우려

2016년 미국 알래스카 해안에서 영구동토층 지역이 붕괴된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사진 크게보기

2016년 미국 알래스카 해안에서 영구동토층 지역이 붕괴된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과학자들 앞에서 북극곰 한 마리가 땅에 얕게 묻힌 ‘어떤 고기’를 허겁지겁 뜯어먹고 있다. 그러던 북극곰은 그 자리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하고, 돌연 쓰러져 숨을 거둔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파괴된 북극곰이 장기간 이동을 하다가 지쳐 죽은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북극곰 죽음의 이유는 바로 고기였다. 고기의 정체는 수천년 전 죽은 매머드였다. 선사시대 벌레를 몸 속에 머금었던 매머드 사체가 기후변화로 영구동토층(땅 속 온도가 0도 이하로 유지되는 토양)이 녹으며 지상으로 노출됐고, 북극곰이 이 사체를 식사로 삼았다가 벌레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벌레는 북극곰을 가까이 한 과학자들의 몸에도 들어갔고, 희생자는 확대된다. 2009년 개봉한 미국 영화 <더 소우-해빙> 얘기다.

이 영화는 허구다. 하지만 황당무계한 상상은 아니다. 2016년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는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지상으로 나온 탄저균에 감염돼 순록 2300여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과학계에서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바로 방사성 물질인 ‘라돈’ 누출이다.

중국 동북임업대 연구진은 26일 국제학술지 ‘지구과학리뷰’ 3월호를 통해 북극 영구동토층 내부에 갇혀 있던 라돈이 대기 중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968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 과학 학술지에 제출된 논문 중 영구동토층과 라돈의 연관성에 주목한 논문 167편을 추려내 집중 분석했다.

라돈은 실온에서는 가스 상태로 존재한다. 주로 우라늄 성분이 많은 땅 속에서 나온다. 북극 지하에는 우라늄을 품은 퇴적물이나 암석이 많다.

라돈을 사람이 다량 들이마시면 심각한 문제를 부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미국 폐암 사망자의 10~14%는 라돈 노출과 연관이 있다. WHO는 라돈을 주요 환경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지금까지는 북극에서 라돈 가스가 땅 밖으로 나올 일이 별로 없었다. 북극 지표면을 덮은 단단한 영구동토층이 차단막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연구진은 “영구동토층은 라돈이 주거지나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아 왔지만, 최근에는 영구동토층이 부서지면서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온난화 속도가 2배 빠르다. 영구동토층 손상이 가속화돼 지역 주민이 라돈에 향후 더 강하게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관련 연구는 부실하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연구진은 “각 논문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영구동토층에서 라돈이 이동하는 상황에 대한 연구·조사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러시아에서는 라돈 위험성을 감안해 건물 깊이를 고려하는 규제 장치가 있지만, 최근 영구동토층 손상은 특별히 다루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 역시 라돈과 관련한 세부 지질 환경을 감안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능력이 20배 강한 메탄가스가 대기로 누출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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