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달랐지만 그들의 죽음은 닮아있었다.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결정한 죽음이, 실은 공동체의 외면에 내몰린 것이었다.
‘그 죽음을 기억하라’ 26일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그 죽음을 잊지 말자고, 그들이 만나지 못한 내일을 남은 이들이 만들어 가기 위해 그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함께 외쳤다.
“2024년이 된 지금도 변희수 하사가 싸워왔던 문제들은 지금 트랜스젠더 청년들이 겪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민지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활동가가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변희수 하사 3주기 추모 및 향후 과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날 변 하사의 순직 인정 등을 촉구하며 공대위 활동 종료와 변희수재단 출범 계획을 알렸다. 27일이 변 하사의 3주기다.
공대위는 변 하사의 순직 인정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공대위는 “법원이 육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음에도 국방부와 육군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라면서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도 재심사를 권고했는데 국방부는 기약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조속히 순직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했다.
변 하사는 2020년 1월 성전환을 이유로 강제 전역 처분을 받게 되자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전역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21년 3월3일 변 하사는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추정 일자는 2월27일이었다. 법원은 변 하사가 세상을 떠난 지 8개월 만에 그의 강제 전역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육군은 2022년 12월 순직 여부를 심사하는 보통전공사상심의위원회에서 변 하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지난해 2월 “군의 강제 전역처분과 변 하사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라면서 국방부에 순직 재심사를 권고했으나 지금껏 이뤄지지 않았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국가기관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법을 어겨가며 한 사람의 삶을 짓밟았음에도 아직 사과도 하지 않았다”라며 “국방부와 육군이 변 하사를 전우로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하늘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는 “변 하사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했고, 그렇게 살아가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라며 “변 하사를 강제 전역시킨 국방부는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순직을 인정하라”라고 했다.
이들은 변 하사의 죽음이 던진 과제는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민 활동가는 “변 하사는 띵동 프로그램에서 ‘명예’라는 닉네임으로 본인을 소개했을 정도로 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넘쳤다”라며 “변 하사처럼 성 정체성을 이유로 원하는 직업을 못 갖는 상황이 없도록 다양성·포용이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라고 했다.
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변 하사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는데, 이는 노동할 권리를 박탈한 것”이라며 “인정을 받으며 평등하게 살고 싶다는 변 하사의 숙제를 각자의 자리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정성광 트랜스해방전선 활동가는 “우리는 변 하사의 용기에 큰 힘을 얻었으며 위로를 받았다”라며 “시민이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변 하사를 기억하겠다”라고 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6월 출범을 준비 중인 재단의 비전을 27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