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시구 야구소년, 암 이기고 고향 지키는 경찰관 되다

전현진 기자

중앙경찰학교 제313기 졸업 위주빈 순경

야구선수 꿈꾸던 중 12살에 육종암 진단

포기 몰랐던 사연 소개되며 시구자 되기도

프로야구 선수는 못 됐지만 경찰관에 도전

“내야 지켜내듯 동료들과 국민 안전 지킬 것”

2016년 10월 21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프로야구’NC 다이노스와 LG트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 앞서 위주빈군이 시구를 하고 있다. NC다이노스 제공 사진 크게보기

2016년 10월 21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프로야구’NC 다이노스와 LG트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 앞서 위주빈군이 시구를 하고 있다. NC다이노스 제공

프로선수를 꿈꿨던 야구소년이 항암 치료와 프로 진출 좌절을 이겨내고 15일 경찰관으로 새 출발했다.

이날 오전 11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중앙경찰학교에서 신임경찰 제313기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 2197명 중에는 ‘육종암을 이겨낸 야구소년’ 위주빈 순경도 포함됐다.

2013년 11월, 당시 12살이던 위주빈군은 악성 종양인 육종암 진단을 받았다. 육종암은 주로 팔·다리뼈에 생기지만 위군은 공을 던지는 오른손에 생겼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야구부가 있는 창원 사파초등학교로 전학 간 직후였다. 투수와 유격수를 맡으며 꿈을 키우던 위군은 선수로 제대로 뛰어보기도 전에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위군은 좌절하지 않았다. 수술하면 손목 힘이 떨어질까봐 항암치료를 택했다. 고통은 위군의 꿈을 꺾지 못했다. “오른손으로 못 던지면 왼손으로라도 던지겠어요.”

창원 사파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뛰던 위주빈군이 투수로 출전한 경기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위군은 오른손에 생긴 육종암을 극복하고 야구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위주빈 순경 제공 사진 크게보기

창원 사파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뛰던 위주빈군이 투수로 출전한 경기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위군은 오른손에 생긴 육종암을 극복하고 야구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위주빈 순경 제공

항암을 마친 위군은 2년 만에 학교 야구팀으로 복귀했다. 중학생의 나이였지만 6학년으로 초등학교 야구팀에서 뛰었다. 선수 등록 문제로 경기 출전이 쉽지 않았지만 꿈을 향한 노력은 계속됐다. 그를 믿어준 감독·코치의 도움이 컸다. 당시 감독과 코치는 “실력을 타고났다. 성실하고 천재성이 있다”라며 위군을 격려하고 지지했다.

포기를 몰랐던 그의 사연이 2015년 6월 경남도민일보에 소개되면서 행운이 찾아왔다. 고향 창원의 프로야구 연고팀 NC다이노스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하게 된 것이다. 위군과 호흡을 맞춰 시포한 이는 위군이 꼽은 ‘최애’ 내야수 손시헌 선수(현 SSG랜더스 퓨쳐스팀 감독)였다. 위군이 던진 공을 받은 손 선수는 “프로에서 보자”라며 목걸이를 선물했다.

[D-Shot] 위주빈 군의 시구(2015.6.20 vs 한화)

“기분이 좋아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좋아요. 아프지 않고 야구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위군은 구단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구 이후 ‘프로야구에서 뛰고싶다’는 위군의 꿈은 더 간절해졌다.

위군은 같은 해 11월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과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간 친선경기인 ‘2015 서울 슈퍼시리즈’에서도 시구했다. 고척돔 첫 시구자였다. 2016년 NC다이노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시구했다. 이때 시포는 대장암을 극복한 우완 투수 원종현 선수(현 키움 히어로즈)였다. 모두의 응원에 힘입어 위군은 2018년 육종암 완치 진단을 받았다.

위주빈군이 2016년 10월 21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NC다이노스와 LG트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 시포한 투수 원종현 선수와 포옹하고 있다. 위군과 원 선수 모두 암을 극복했다. NC다이노스 제공 사진 크게보기

위주빈군이 2016년 10월 21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NC다이노스와 LG트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 시포한 투수 원종현 선수와 포옹하고 있다. 위군과 원 선수 모두 암을 극복했다. NC다이노스 제공

어느덧 성인이 됐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항암은 그를 조금씩 프로리그와 멀어지게 했다. 체력이 떨어지며 유격수보다 투수 훈련에 집중했지만 한계가 느껴졌다. 2021년 늦깎이 고3 야구부 투수인 그에게 프로구단은 선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진학도 어려워졌다. 평생 매달렸던 야구를 더는 할 곳이 없었기에, 위씨는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암 투병을 이겨낸 소년의 단단한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미련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그는 마음을 다잡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경찰관을 향한 꿈이 새로 생겼다.

경찰이 되는 길 역시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는 집 앞 독서실에서 인터넷 강의로 혼자 공부했다. 야구를 하며 다져진 집중력은 시험에서도 성과를 냈다. 8개월 만에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지난해 6월 중앙경찰학교에 들어왔다.

경찰이 되고자 맘 먹은 후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왔다. 지난달 21일 오후 4시쯤 경남 남해읍에서 한 남성이 어머니와 함께 죽겠다며 기름통을 들고 불을 붙이려 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남경찰청 남해경찰서 중앙지구대 실습생이던 위씨가 현장에 출동했을 때 남성은 양손에 흉기를 들고 경찰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흉기가 손에서 떨어진 순간 경찰관들이 달려들었다. 위씨도 남성의 허리를 붙잡고 몸을 돌려 넘어트린 뒤 수갑을 채우려다 광대뼈와 턱을 걷어차였다. 현장은 상상과 달랐지만 위씨는 동료들과 함께 현행범 체포에 성공했다.

위주빈 순경(오른쪽 끝)이 동료들과 중앙경찰학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위주빈 순경 제공 사진 크게보기

위주빈 순경(오른쪽 끝)이 동료들과 중앙경찰학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위주빈 순경 제공

‘암을 극복한 야구소년’을 시구자로 마운드에 세웠던 NC다이노스의 박중언 현 홍보팀장은 그 시절의 위씨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씩씩하고 맑은 소년이었다”라며 “건강하게 자란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경찰관이 돼 국민과 고향을 지켜주러 오다니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위 순경은 17일부터 남해중앙지구대 야간조로 첫 근무를 시작한다. 그는 경험을 쌓아 강력팀·지능팀·사이버팀 같은 곳에서 수사를 하는 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야구선수와 경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위 순경은 이렇게 말했다.

“내야수와 투수가 포지션이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타자의 공격으로부터 팀을 지켜내잖아요. 이제는 경찰관이 돼 동료들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관이 돼야죠.”

위주빈 순경이 15일 중앙경찰학교 충의선양탑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위주빈 순경 제공

위주빈 순경이 15일 중앙경찰학교 충의선양탑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위주빈 순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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