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이
외롭지 않게
말을 걸어주세요...“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 여객터미널 임시주차장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월호 팽목기억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기억나무’에 대한 안내문이다. 하지만 희생자 304인의 얼굴사진들을 마주하고 서 있으면 말을 걸긴 쉽지 않다.
출발에 앞서 스마트폰으로 내비게이션 어플을 켰다. 어디로 갈까요? 라는 입력창에 주저없이 ‘팽목항’이라는 단어를 입력한다. 검색 결과물 가장 윗자리는 진도항이다. 팽목마을과 팽목민박 등은 목록에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팽목항이라는 위치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국민들이 추모를 위해 한번쯤은 찾아가고, 언젠가는 가려고 다짐했던 그 장소는 이제 ‘진도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팽목마을을 지나 항구 입구에서부터 마주하는 풍경은 어색하고 혼란스럽다.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머물던 공간과 팽목방파제 사이의 바다는 매립작업을 거쳐 진도항 여객터미널이 차지하고 있다. 제주를 비롯한 인근의 섬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임시주차장 한 쪽에 ‘세월호 팽목기억관’이 고립된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가족들이 가족식당으로 사용하던 컨테이너는 문이 굳게 잠긴 채 방치되고 있다. 녹슨 추모조형물과 색을 잃은 노란리본 만이 이곳이 유가족들의 통곡과 기다림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상기시킨다.
진도항 여객터미널과 바로 맞닿아 있는 팽목방파제는 더욱 초라한 모습이다. 방파제 난간에 매달린 노란 깃발과 노란 리본은 바람에 찢겨나가고 색이 옅어져 새겨진 글씨마저 분간이 어렵다. 방파제 붉은 등대 앞에 설치된 추모조형물은 손상이 심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녹슨 조형물 내부에는 소주병 등 온갖 쓰레기가 뒹굴고 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지난 2015년 설치한 ‘기억의 벽’은 색이 바랜 채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여객터미널의 분주함과 달리 방파제는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거센 바람소리가 더해져 찾아오는 사람을 움츠리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한 달 여 앞둔 3월 초, 드문드문 시민들이나 여행객들이 팽목항을 찾고 있었다. 추모를 위해 이 곳을 직접 찾아 팽목기억관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여객터미널을 이용해 제주로 향하기 전 잠시 시간을 내 방파제를 둘러보며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서라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미안함’과 ‘기억’ 때문이다.
오랜 친구와 함께 남도여행을 하다 팽목항을 찾은 이의선(67)씨는 “너무 초라하고 삭막하다. 이러니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 아닌가. 차라리 목포에 있는 세월호 선체를 이곳으로 옮겨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곳에 제대로 된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팽목항을 찾은 마지막 날, 진도에는 하루 종일 이슬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방파제 등대 앞에 놓인 ‘세월호 추모 벤치’가 비를 맞고 있다. 벤치에 음각으로 새겨진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 위로 빗물이 흐른다. 10년이라는 세월 탓인지 그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빗물이 스며든 이름들 사이사이에 놓인 노란리본은 녹슬어 있다. 우리의 기억들도 녹슬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