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시간강사 ‘0시간 계약’ 첫 제동…“근기법상 무효”

김지환 기자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2020년 1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강사 고용 안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2020년 1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강사 고용 안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강의가 없으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0시간 강의 계약’으로 급여를 받지 못한 대학 시간강사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 계약 자체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봤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대학이 시간강사와 임용계약 체결 시 0시간 계약 조항을 넣는 데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3부(재판장 박평균)는 지난 21일 경상국립대 시간강사였던 하태규씨가 제기한 임금지급소송 항소심에서 1심 원고 패소 판결을 뒤집고 하씨에게 6개월치 휴업수당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하씨는 2019년 9월 경상대 대학원 정치경제학과 시간강사로 임용됐다. 이후 1년 단위로 재임용돼 2022년 8월 말까지 3년간 정치경제학과에서 일했다.

하씨는 2020년 2학기에는 주당 6시간, 2021년 1~2학기에는 주당 3시간 강의하고 매월 보수를 받았다. 2022년 1학기엔 대학 측으로부터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대학은 임용계약서상 ‘강의가 없는 학기는 별도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근거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하씨는 실업급여 청구를 위해 차라리 면직 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대학은 3년까지 시간강사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고등교육법(강사법)을 이유로 면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9년 8월부터 시행된 강사법은 대학이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간 재임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씨는 경상대를 운영하는 정부를 상대로 휴업수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근로기준법 46조는 사용자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노동자에게 평균임금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씨는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우선 사용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임교원 강의비율을 6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강의 배정을 할 수 없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전임교원 강좌와 함께 시간강사인 하씨에게 강의를 배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강의가 없는 학기는 별도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계약 조항을 무효로 봤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정해 무효이고, 휴업수당을 사전에 포기하는 것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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