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커머스 업체인 핀둬둬(PDD홀딩스)가 한국·미국·유럽 등 해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중국 직구 사이트 ‘테무’의 초저가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오픈 마켓에서 4~5만원에 팔리는 레트로 게임기가 테무에서는 2만원대 가격에 무료배송으로 판매된다. 테무는 어떻게 초저가 판매를 유지할 수 있을까.
■‘초저가 생산기지’ 진화·윈저우·산터우·바오딩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3·4선 도시(중소도시)의 ‘제조업 클러스터’가 첫번째로 꼽힌다. 낮은 가격대를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저장성 진화(일용품)·윈저우(여성화), 광둥성 중산(조명)·산터우(장난감), 허베이성 바오딩(가방) 등에 위치한 제조업체에서 제품을 공급받는다. 예를 들어 ‘장난감 도시’로 불리는 산터우의 현급 지역 ‘청하이구’에는 장난감 제조에 필요한 모든 업체들(그래픽 디자인, 원료 공급, 모형 가공, 부품 제조, 장비 성형, 제품 제작)이 모여 있다.
‘테무’는 어디서 초저가로 물건을 떼올까? ‘테무’의 비밀 A부터Z|세상의 모든 기업 ‘테무 편’ #테무 #temu #ecommerce
3·4선 도시에 있는 제조업체들은 코로나19 이후 내수 침체로 중국 내 판매가 급감하자 테무를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정보기술(IT) 분야 비영리 온라인 매체인 ‘레스트오브월드’에 따르면, 진화시의 현급 행정구역(현급시)인 이우에 본사를 둔 이헝 배터리는 한동안 중국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알리바바의 도매 플랫폼 ‘1688’을 통해 제품을 팔다가 판매량이 줄자 2022년 12월 테무에 합류했다. 이헝 배터리의 황치엔치엔은 “이커머스 플랫폼이 주목받을 때마다 이곳 이우의 수 많은 공급업체들이 부자가 된다”면서 “요즘에는 ‘테무 열차’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우는 한국 상인들이 많이 찾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이우 도매시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상인들은 이우 도매시장의 도매상을 통해 물건을 떼오거나, 이헝 배터리 같은 현지 공장을 방문해 한국 시장용 제품을 주문한다. 중국 내수 도매 사이트 1688에서 제품을 구입한 뒤 현지 배송대행업체(배대지)를 통해 국내로 들여오기도 한다. 국내 오픈마켓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중국산 제품이 이런 방식으로 들어오는데 각각의 유통 단계마다 ‘마진’이 붙으면서 판매 가격이 오른다.
하지만 테무가 2023년 7월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중국 제조업체가 중국인 도매상이나 한국인 도매상을 통하지 않고 테무 플랫폼을 통해 한국 시장에 자신들의 제품을 팔게 됐다. 중간 유통상인이 가져가는 마진이 빠지는 만큼 판매 가격도 낮아졌다.
■“물건만 싸게 공급해. 우리가 알아서 팔아줄게”
테무 최저가의 또다른 비결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완전위탁’ 시스템이다. 3·4선 도시에 있는 중국 제조업체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테무 물류센터’로 보내기만 하면 테무가 가격 책정, 마케팅, 판매, 배송, 고객 서비스 등 모든 과정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마종수 한국유통연수원 교수는 테무의 완전위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플랫폼에서 잘 팔릴만한 상품을 테무가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해 선정합니다. 판매가는 자신들이 결정하고 중국 내 제조업체(공장)에 견적을 넣어 비딩(입찰)을 붙여요. 예를 들어 마우스 한 개를 테무가 1000원에 팔기로 결정하고 공장에는 ‘개당 300원씩 해줄 수 있으면 입찰에 참여해’ 제안하는 거죠. 공장 몇 군데가 경합을 벌이게 되고 1등을 한 업체가 테무에 들어옵니다. ‘마우스 1만개를 우리 쪽(테무 물류센터)으로 보내줘. 그러면 우리가 알아서 팔아줄게. 대신 판매가격은 우리(테무)가 정한다.’ 공장에서 마우스 1만개를 생산해 테무 물류센터에 갖다놓으면 테무는 거기서 5000개든, 6000개든, 팔리는 대로 개당 300원씩 공장에 지급하는 거예요. 판매자(공장)와 소비자의 가운데에서 상품들의 원가와 판매가를 결정하고 그 차액만큼을 테무가 마진으로 가져가는 방식이죠. 테무에서 팔리는 모든 상품들이 이런 방식으로 판매되는 건 아니지만, 비중으로 보면 (완전위탁 방식이) 상당히 높은 편이죠.”
테무에 입점한 중국 제조업체들은 테무의 ‘가격 후려치기’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새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한다. 중국 매체 ‘36KR’에 따르면, 보온병 공장을 운영하는 왕 보웬은 “(테무의 완전위탁판매 덕분에) 운영과 판매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고, 회사는 제품 연구 개발과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왕 보웬의 보온병 공장은 테무에 정착한 지 반년 만에 운영자 4명, 아티스트 1명, 디자이너 1명 등으로 이뤄진 팀을 구성하고 자체 브랜드 구축에 뛰어들었다.
테무는 일정 금액(한국 기준 1만3000원) 이상만 채우면 무료 배송을 해준다. 일단 운송비가 저렴한 해상 컨테이너 운송이든 화물 항공 운송이든 물건을 잔뜩 모아서 물류센터에서 한꺼번에 보낸다. 많은 양의 제품을 판매할수록 배송 비용을 많은 품목에 분산 시켜 품목당 배송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테무는 모든 주문에 대해 첫번째 반품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렴한 상품은 회수하지 않고 환불해주는 경우도 많다. 국내 업체인 쿠팡 역시 무료 반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유료회원인 ‘와우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테무의 무료 배송·무료 반품 정책 등으로 중국 현지에선 테무의 전 세계 주문 건당 손실률이 40%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테무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이 같은 무료 배송·무료 반품을 유지하는 것은 일단 이용자부터 끌어모아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결국 테무가 무료 배송·무료 반품 정책을 취소하거나 축소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내 소비자들은 테무 같은 중국 직구 플랫폼을 통해 저렴한 현지 제품을, 부가가치세 없이 구입할 수 있다. 150달러 이하까지는 관세도 면제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직구가 활성화하면서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안전핀’들이 뽑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도매상(수입업자)들이 중국 제품을 들여와 국내에 판매할 때는 ‘KC’라는 안전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 도매상들은 제품 안전성에 대한 책임을 지고 KC 인증 비용도 부담했다. 하지만 테무를 통해 직구로 들어오는 제품들은 KC 인증을 거치지 않는다. 낮은 가격으로 살 수는 있지만 그만큼 안전성에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는 가격 경쟁에 밀려 매출이 줄어들고, 국내 온라인 오픈마켓 등에서 중국산 제품에 마진을 붙여 판매했던 상인들도 매출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마종수 교수는 “그동안 국내 온라인 오픈마켓이 활성화하면서 ‘오픈마켓 셀러(판매자)’로 창업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는데 (테무 등 중국 직구 플랫폼이 등장한) 작년에 처음으로 역신장(감소)했다”며 “테무가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공식 유튜브 채널 ‘경향티비’의 <세상의 모든 기업>에서는 테무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경향티비 <세상의 모든 기업: 테무>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1o08Kh22RU&t=26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