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도 못 받고 숨진 아버지···“중대재해법, 이래도 미루자고요?”

조해람 기자

‘50인(억) 중대재해법’ 적용되기 5일 전 사고

아버지 떠나보낸 딸, “기초 안전조치도 없더라”

“이게 소규모 현장 현실···중대재해법 필요해”

문혜원씨(33)의 아버지가 미장 작업 중 사고로 숨진 서울 마포구 한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현장에 표지판이 놓여 있다. 조해람 기자

문혜원씨(33)의 아버지가 미장 작업 중 사고로 숨진 서울 마포구 한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현장에 표지판이 놓여 있다. 조해람 기자

문혜연씨(33)의 아버지는 공사금액 30억원 가량의 작은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숨졌다. 사고가 난 건 지난 1월22일.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현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5일 앞둔 날이었다.

간호사인 문씨는 비번으로 집에서 쉬던 중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문씨 가족은 경기 수원의 집에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까지 경황 없이 달려갔다. 머리를 크게 다친 아버지는 1월29일 세상을 떠났다.

문씨는 아버지를 잃기 전까지 산업안전이나 중대재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직접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법·제도를 알아보면서 문씨는 비로소 보게 됐다.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기 이전 소규모 건설현장 안전관리의 문제점이 문씨의 눈앞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전조치 없이 흔들린 발판···안전모도 미지급

문씨의 아버지는 72세 건설 일용직 노동자였다. 한 영세 건설업체가 시공하는 현장에서 주로 일했다. 사고 당시에는 서울 마포구 지상 5층짜리 근린생활시설 공사현장에서 미장을 했다. 미장은 벽이나 천장에 시멘트·회를 칠하는 작업이다.

아버지는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올라가는 비상계단 코너에서 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 2m 높이의 이동식 비계(임시 발판) 위에서 미장을 하다가, 발판이 흔들리면서 머리부터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이동식 비계는 제대로 고정돼 있지 않았다. 서로 높이가 다른 계단 두 칸에 걸쳐 설치된 탓이다. 사고 이튿날 문씨가 현장을 찾아 확인해보니, 비계 한 쪽 다리 아래에는 수평을 맞추기 위해 벽돌과 나무판자가 쌓여 있었다. 비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문혜연씨(33)가 아버지의 사고 하루 뒤 공사현장에서 촬영한 이동식 비계(임시발판) 일부분. 높이가 맞지 않아 벽돌로 수평을 맞췄다. 문씨 제공

문혜연씨(33)가 아버지의 사고 하루 뒤 공사현장에서 촬영한 이동식 비계(임시발판) 일부분. 높이가 맞지 않아 벽돌로 수평을 맞췄다. 문씨 제공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 제56조는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비계를 설치할 때 안전난간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난간 설치가 어려운 장소일 경우 추락방호망이나 안전대를 설치해야 한다. 문씨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곳은 추락 위험이 큰 공간이었지만 어떤 안전조치도 없었다.

사고현장에서 문씨의 눈을 잡아끈 장면이 또 하나 있었다.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씨 아버지도 안전모를 받지 못한 채로 작업하다가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안전모 지급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소규모 공사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문씨는 처음 알았다.

업체는 오히려 안전모 미지급을 은폐하려 했다. 동료 작업자들에게 ‘안전모를 지급받고 안전교육도 받았지만, 아버지가 안전모를 벗고 일하다가 넘어져 다쳤다’는 서류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한 것이다. 30여 년째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삼촌이 문씨 가족에게 털어놓았다. 업체 측은 노동청 조사 과정에서 안전모 미지급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7일 서울의 한 주택 재개발 현장. 조태형 기자

지난달 7일 서울의 한 주택 재개발 현장. 조태형 기자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달 업체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노동청도 사건을 곧 검찰에 넘길 전망이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아주 간단한 조치도 하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라며 “이동식 비계(임시 발판)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치하고 작업지시를 하거나, 하다못해 난간이라도 규정대로 설치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했다.

회사의 잘못을 인정받았지만, 문씨에게 그 과정은 상처로 남았다. 업체는 유족에게 유감표명 한 번 하지 않았다. 변호사 선임 후에야 회사는 뒤늦게 짤막한 사과문을 보내 “사고 원인은 낙상 또는 넘어짐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미흡한 안전조치에 대한 사과가 없는 사과문을 문씨와 가족은 반려했다. 유족에게 ‘부검을 하라’고 압박하고, 부검 결과를 제때 알려주지도 않는 수사기관에게도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작은 현장이 더 위험···중대재해법 꼭 필요”

문씨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고 5일 뒤,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공사현장과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22년 1월27일 법 시행 이후 소규모 현장에 대해 두었던 2년의 적용유예 기간이 끝나면서다.

문씨는 소규모 사업장·공사현장에도 중대재해법이 빠짐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법을 적용받지 못했지만, 이후 이어질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씨는 “우리 아버지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작은 건설현장 어디를 가도 아버지처럼 일하는 분들이 많다”며 “소규모 현장일수록 안전수칙을 더 잘 챙겨야 하는데, 안전모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안 지키는 인식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손 변호사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됐다면 아무래도 경각심을 갖고 (안전사고에) 대비했을 것이고, 그렇게 아주 기초적인 조치라도 했다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7일 서울의 한 주택 재개발 현장. 조태형 기자

지난달 7일 서울의 한 주택 재개발 현장. 조태형 기자

정부와 국민의힘, 경영계 등은 법 적용유예를 더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씨는 정부와 경영계가 ‘소규모 카페·빵집도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를 유포한 것이 특히 황당했다. 문씨는 “(우리가) 큰 위험 없는 곳들의 중대재해를 말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며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데 그런 (카페·빵집) 기사들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소규모 현장은 안전관리도 부족한데, 고령 노동자 등 열악한 노동자들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산업재해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사고사망자 598명 가운데 233명(39.0%)이 60세 이상이었다. 규모별로 보면 건설업 사망자의 59.7%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현장에서 나왔다. 제조업 사망자의 56.4%, 기타업종 사망자의 61.5%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문씨는 “큰 현장은 65세 이상은 잘 안 쓴다고 한다”라며 “사망자가 젊을수록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만 나이가 많은 분들은 그렇지 않고, 일용직은 단체도 없고 노조도 없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그런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그는 이어 “중대재해법을 시행해야 소규모 현장들이 경각심을 갖고 안전보건조치를 잘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일하다 죽는 일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그냥 안전관리 잘 하자’는 식으로는 안 돼요. 계속 이어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 사회가 합의한 게 중대재해법 아니었나요. 이 법은 필요해요.” 문씨는 말한다.


▼ 더 알아보려면

지난 1월27일부터 50인(억)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법 적용유예기간이 끝났기 때문인데요. 적용유예기간 연장을 놓고 노동계·시민사회와 정부·여당·경영계가 충돌했습니다.

법이 적용되고 닷새만에 50인 미만 폐알루미늄 수거 업체에서 사망사고가 보고되는 등 소규모 사업장의 위험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가 헌법소원을 내는 등 반대 목소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당시 상황을 담은 기사들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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