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과 친일 미화 논란 등이 불거졌던 대구 ‘순종황제 동상’이 7년여 만에 철거된다. 70억원이 넘는 혈세와 행정력 등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구 중구는 지난 17일 공공조형물심의위를 열고 ‘순종황제 어가길 조형물’ 철거를 최종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달 말까지 순종황제 동상과 안내 비석 등이 철거될 예정이다.
또 올해 안으로 4억원을 추가로 들여 순종황제 어가길 내 보행섬 등을 없앤다. 어가길을 닦으면서 2차로로 축소된 달성공원 진입로는 다시 4차로로 넓힌다.
달성공원 정문을 배경으로 중구 수창동에서 인교동까지 2.1㎞가 이어지는 어가길은 중구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의 하나로 2013~2017년 국비 35억원 등 70억원을 들여 조성한 곳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9년 1월 남순행(南巡行) 중 대구를 다녀간 것을 재현해 일대에 테마거리를 만드는 계획이었다. 어가길에 숨겨진 구국·항일정신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미래지향적인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취지였다.
낙후된 인근 공구 골목을 개선해 원도심을 재생하고 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중구 측이 2억5400만원을 들여 어가길이 끝나는 달성공원 진입로에 5.5m 높이의 순종황제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사업은 구상부터 친일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순종의 남순행이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앞세워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의 역사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순종황제의 대구 방문은 조선 왕조에서 처음 이뤄져 주목을 받았다. 다만 대한제국이 실질적인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의 의도가 깔려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한협회 대구지회가 남순행의 중단을 주장했고, 학생들이 철길을 점거하고 순종황제의 남행을 막으려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에 대구 지역에서는 어가길과 동상 조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대례복 차림으로 완성된 순종 동상이 군복을 입고 다닌 실제 모습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례복은 국가의 중대한 의식 때 입는 예복이다.
동상 철거 민원은 달성공원 인근에 3000가구가 넘는 공동주택이 들어서고, 상설 새벽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유동인구가 늘면서 급증했다. 교통혼잡 문제가 불거져 어가길을 없애 달라는 주민과 상인들의 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어가길 인근에서 2년째 공구상을 운영 중인 김모씨(60대)는 “차로가 적고 주차 공간도 부족해 주말마다 교통정체가 심했는데, 동상이 철거된다니 반길 일이긴 하다”면서 “다만 동상을 세우고 길을 닦는데 들어간 세금과 철거하는데 드는 돈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보행과 안전사고의 위험까지 생기자 어가길은 철거 쪽으로 기울게 됐다. 시민단체는 역사 고증이 필요한 사업을 지역사회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추진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구상 단계부터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컸는데, 지자체 주도로 일방적으로 조성한 게 문제”라면서 “결국 동상 등의 철거로 수십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게 됐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념사업은 추진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