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 잠깐 맡겨두셔야 입장하실 수 있어요.”
지난 26일 오후 6시쯤 서울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한 ‘팝업스토어’(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임시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말했다. 이 매장에 입장하려면 2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도파민 중독 테스트’를 하고, 휴대전화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직원에게 맡기고 ‘도파민 중독 테스트’ 설문지를 받아들었다. 설문지는 ‘하루에 커피 2잔 이상을 마신다’ ‘식사 시간 혹은 자투리 시간을 자주 폰과 함께 보낸다’ ‘하루 동안 휴대전화 없이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 10개 문항으로 이뤄졌다. 한 문항당 10점씩 도파민 중독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휴대전화를 돌려받으려면 이곳에서 스도쿠(숫자 퍼즐게임), 숨은그림 찾기, 명상, 독서 등 ‘도파민 디톡스 미션’으로 점수를 차감해 ‘0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매장을 찾은 손님 20여명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파민 디톡스에 열중했다. 한 20대 남성은 스도쿠를 풀며 “난 집중력이 안 좋은가 봐” “누가 먼저 푸나 내기할래?”라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체육복을 입고 온 고등학생은 가부좌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명상했다. 직장인 박모씨(30)는 “여기에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만지며 휴대전화를 찾곤 했다”며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이 커져서 도파민 디톡스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도파민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유행하며 ‘도파밍’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쾌락이나 즐거움 등을 느낄 때 체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과 수집한다는 의미의 ‘파밍’이 합쳐진 말로 ‘도파민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말한다.
중독에 가까울 만큼 관심이 증폭된 반면 피로감도 커지면서 도파민 디톡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스크린 타임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최근 유행하는 숏폼 콘텐츠(1분 내외의 짧은 영상) 등의 감상 시간을 스스로 제한하거나 휴대전화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취업 준비 중인 최나영씨(26)는 올해 초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휴대전화 이용을 종료시키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휴대전화를 3시간 미만으로 사용하는 스크린 타임 챌린지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최씨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숏츠 영상을 보다가 하루에 11시간까지 휴대전화를 사용하기도 했다”며 “할 일을 미루거나 흐트러진 자세로 휴대전화를 오래 보다가 몸에 통증까지 생겨 심각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번역가로 일하는 김희정씨(43)는 퇴근 후 휴대전화 대신 책을 손에 들었다. 김씨는 “직업상 글을 많이 본다는 핑계로 퇴근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숏츠를 봤는데 보고 나면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독서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한 달에 다섯 권 내외의 책을 읽는다.
도파민 디톡스를 활용한 마케팅 사례도 등장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북카페는 ‘디지털 디톡스를 통한 힐링’을 내세우며 매장 안에서 휴대전화와 노트북 사용을 금지했다.
전문가들은 “자제력 역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발적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욕구 억제를 도와주는 것도 마케팅의 소재가 되고 있다”며 “무언가가 유행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을 깨닫고 다른 대안을 찾는 소비 행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실 숏폼 콘텐츠 등을 보면서 단기간에 쾌락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챌린지 등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 역시 생물학적으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며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친 소비자들이 더 건강하게 도파민을 충족할 방식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